[출판화제] '아나키스트의 초상'

  • 입력 2004-08-20   |  발행일 2004-08-20 제1면   |  수정 2004-08-20 09:57
'아나키스트' 그들이 꿈꾼 자유로운 세상의 모습
폴 애브리치 지음
[출판화제]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나키즘'하면 무정부주의 혹은 테러리즘을 떠올린다. 물론 국어사전에도 '아나키스트'가 무정부주의자로 간략히 소개돼 있듯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목표했던 자유로운 세상을 위한 사상의 다양성이나 철학의 깊이가 완전 배제됐다는 점에서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한 묶음으로 쉽게 규정해 버리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아나키스트에 대한 추상적이고 고정된 잣대가 일반인들의 무지에서 비롯됐건, 자본과 권력을 앞세운 엘리트 지배계층의 음모에서 비롯됐던 간에 언제까지나 그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다는 것은 분명 떳떳지 못한 일일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처럼 새로운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부활이 현실이 되고 있는 암울한 상황에서 과거를 풍미했던 아나키스트들의 반전과 저항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 운동가인 폴 애브리치가 집필한 '아나키스트의 초상'은 인류 역사상 가장 역동적 시기라 일컬어 지는 19~20세기 러시아, 미국, 유럽 등에서 활약했던 대표적 아나키스트들의 발자취와 사상을 재조명한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파리 코뮨, 스페인 시민 혁명 등 숨가쁘게 진행됐던 대변혁기에 전쟁의 허구와 기만을 폭로하고, 온몸으로 맞서 반전 투쟁을 펼쳤던 일에 중심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들은 비록 육체적으론 죽어 버린 과거의 인물들이지만 완전 소멸한 것은 아니며, 그들의 열정은 국가와 자본이라는 괴물에 맞선 사람들에게'유령'으로 되살아 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여전히 지속되는 반세계화 운동이나, 지역자치·교육·환경·반전·코뮨 운동 등 전 지구적 자본을 공격하는 자율적이고 다양한 움직임이 바로 억압과 권위주의를 반대하는 이들 '유령'의 업적이라고 평가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선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을 다루면서 가장 원조격이며 영향력 있는 인물로 미하일 바쿠닌을 꼽고 있다. 1848년 유럽을 휩쓸었던 대봉기에 직접 뛰어 들었던 바쿠닌은 당시 카를 마르크스와 쌍벽을 이룰 만큼 노동자와 급진적 지식인들의 숭배 대상이었다. 그는 이론가라기 보다는 당시 체제와 권위에 맞섰던 혁명가로서 명망이 높았고 또 뛰어난 예언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100년 후에 등장하게 될 대량 파괴 및 생화학 무기를 경고하며 '과학의 지배에 대항하는 삶의 반란'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사상은 크로포트킨, 네차예프, 젤레즈니아코프, 마흐노 등으로 이어져 러시아 아나키즘의 흐름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책은 1900년대 중반 미국을 들끓게 했던 프루동과 터커, 모브레이, 슈타이머 등 아나키스트들의 삶의 궤적과 사상도 다채롭게 조명한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전쟁광들과 군산(軍産)복합체의 발호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며, 전쟁은 어떤 대의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야만적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책은 유럽 및 브라질 등에서 펼쳐지는 개인적 테러행위에서부터 공동체적인 코뮨 운동 등을 조명한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도 많이 제기되는 '대안운동'은 유대인과 이탈리아인들의 '코뮨주의'에서 지향점을 찾아도 무방할 것 같다. '직접행동'과 '실행에 의한 선전'을 중심축으로 한 이 운동은 진정한 아나키스트의 삶이란 강요되거나 재단된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해 직접 맞서 싸우는 것이라는 교훈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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