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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재경 안동인들을 지탱하는 정신은 조상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다.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상황에 처했건, 그들의 맘에 면면히 흐르는 이 자부심 때문인지, 그들은 '바른 생활'에 대한 의식이 유달리 강하다. 정계·재계·관계 등 각계각층에 안동출신들이 두텁게 포진해 있고, '양반 고장' 출신들이라 대중적인 모임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재경 모임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 거주하는 안동출신은 2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여러가지 형태로 서로 긴밀히 교유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영가회'는 가장 오래된 재경모임으로 30년 역사를 자랑한다. 각계에서 비교적 성공한 재경안동인들이 결성한 '원로모임' 성격으로, 이 모임에서 재경 안동인 전체를 아우르는 안동향우회를 출범시켰다.
안동향우회 류창식 사무국장은 "호남쪽이 잘된다고 하는데, 안동향우회도 체계적으로 잡혀가고 있다"며 "청계상가 6층에 회관을 보유, 향우회가 자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자랑했다. 류 국장은 "안동인 기질의 특성상 초기에는 모임이 좀 어려웠는데 지금은 화합이 잘된다"며 "유료지로 창간된 지 15년이 된 '재경 안동향우신문'도 안동인을 묶어주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경 안동출신들은 공직과 학계 진출이 두드러진다. 안동출신 교수들의 모임인 '동연회'는 회원이 200여명 되고, 또 공직자 모임으로 사무관 이상이 모이는 '상락회'는 회원이 5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경제계쪽도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다. 특히 기업을 일으킨 안동인들은 돈을 버는 가운데서도, 개인적인 치부보다는 유독 국가 산업발전, 사회 기여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대표적인 곳이 풍산그룹. 풍산의 창업주 고 류찬우 회장은 조선시대 명 재상인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다. 그는 68년 순수민족자본으로 창업, 세계적인 방위산업 기업으로 발전했다. 류 창업주가 애당초 방위분야로 뛰어든 것은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재는 그의 4남인 류진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류 회장은 1년에 절반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 경영은 안동향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류목기 부회장이 총괄하고 있다.
2006년 타계한 권영우 전 국회의원도 안동출신의 대표적 기업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세명대학교 설립자이기도 한 권영우 전 의원은 어린시절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단 1대의 버스로 운수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3천800대가 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운수회사인 경기고속, 대원고속, 대원관광 등 8개 회사 회장과 서울 동대문구에서 제11·12대 국회의원 및 국회 건설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교육사업에 내놨다. 제천에 있는 세명대에는 김광림 전 재경부차관이 총장으로 있다.
대현그룹 손현수 대표이사 회장도 안동이 배출한 탁월한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 회장은 1976년 창업이래 국내 최초로 민자유치 지하공간개발사업에 참여하여 20여년간 끊임없는 연구와 노하우 축적으로 우리나라 지하상가개발을 선도했다. 특히, 70년대초 서울을 시작으로 80년대 부산, 청주에 이어 90년대 마산, 2001년 9월에는 대구에 대현프리몰을 개장했다. 또한 호텔경영과 관광레저 분야, 그리고 광고대행업에 이르기까지 사업다각화에 힘써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불교에도 조예가 깊은 손 회장은 이제 70대 후반의 고령으로 2세경영체제를 갖추고 있다.
허동진 풍림섬유 대표이사는 기자 출신으로 사업에 성공한 케이스이다. 섬유에서 출발해 현재는 베트남에서 사료공장을 인수하는 등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현재 영가회장을 맡고 있다.
대보마그네틱주식회사 이준각 대표는 창립초기부터 지금까지 30여년간 오직 자석응용기기 한가지만 전문제작,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아시아에서도 동종업계의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한국의 PC대중화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삼보컴퓨터의 김종길 부회장도 안동사람이다. 한라산업 개발 권형기 대표 이사, 한성자동차 류인하 대표이사, 류종묵 (주)흥국 대표이사, 해주건설의 김철현 사장 등도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재경 안동인이다. 금융계에도 굵직한 인사들이 많아 유동천 제일상호저축은행장, 송보열 전 제일은행장 등이 주목을 받았다.
전문경영인으로 재직 중인 재경 안동인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은 현재 무역협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무역관련 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고, 김종갑 전 산자부 차관은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에 취임해 일하고 있다.
LG에서 패션업체인 (주)보끄레머천다이징으로 자리를 옮긴 이창구 대표이사도 안동 출신이다. 마취제 전문회사인 명문제약의 이규혁 사장은 제약업계의 마당발로 꼽힌다. 그는 40대 초반에 한 제약회사 CEO로 발탁된 이후 18년간 몇개의 회사에서 사장을 맡아 회사를 성장시켰으며, 멀미약 키미테로 유명한 명문제약으로 옮긴 뒤에는 연간 매출을 100억원대에서 1천억원대로 늘리는 등 경영수완을 보여주었다.
이규혁 사장은 "안동사람들은 거짓말 않고, 돈 욕심과는 무관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다"며 "안동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어 일하기가 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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