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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를 그리는 화가는 많지만 차규선 화백(44·사진)처럼 그리는 사람은 없다.
차규선은 소나무의 도시 경주 출신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경주 남산 근처에서 살았다. 태어나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삶과 생활 속에서 늘 마주쳤던 풍경은 남산의 소나무와 삼릉의 솔숲이었다. 어릴 적 삼릉솔숲으로 소풍을 가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거나 누워있기도 했다. 등·하교를 하면서 솔숲을 가로질러 걸어가기도 했다.
그에게 소나무는 특별한 게 아니다. 마치 묵은 된장 같은 나무다. 그는 지금까지 25회가 넘는 개인전을 한 역량 있는 중견화가다. 차규선이 젊은 시절 주로 그렸던 소재는 삼릉솔숲을 비롯해 계림, 오릉, 반월성 등 경주의 풍경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소나무를 멋있게 그릴 수 있을까’하는 화두를 지금까지 붙들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수백장의 삼릉의 소나무 사진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사진작가 배병우씨보다 삼릉 소나무를 먼저 찍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 솔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그는 삼릉솔숲에 가면 생명감이나 신성한 기운을 느낀다고 했다. 나무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키 큰 그의 모습이 낙락장송을 닮은 듯하다. 그는 삼릉소나무의 특징을 “휘어질 듯 끊어질 듯하다”면서 “좋은 나무는 다 베어가고 천지에 쓸데없는 열성 소나무만 남았지만, 그 보잘 것 없는 소나무가 처절하기에 예술적으로는 아름답다”고 말했다
차규선이 그린 소나무 숲은 조선백자와 마찬가지로 흰색바탕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린 소나무는 함박눈이 덮인 설송을 닮았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눈보라에 솔잎이 흩날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소나무는 겨울이 돼야 독야청청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는 “소나무를 자주 그리다보니 성격도 소나무를 닮아가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소나무의 지조와 절개 같은 게 아니라 성정이 자꾸 직선적으로 바뀐다”고 둘러 말했다.
그는 과거 종종 어린 두 아들을 삼릉솔숲에 데리고 갔다. 공원의 놀이시설에 가기보다 솔향기와 솔바람을 느끼고 솔방울을 만지는 게 더 교육적이라고 믿어서다. 이는 ‘자연이 곧 스승’이라는 페스탈로치의 교육관과도 일치한다. 그는 지금도 눈만 내리면 무작정 삼릉솔숲으로 달려간다. 삼릉솔숲은 그에게 고향의 품이나 마찬가지다.
차규선의 작품 속 색채는 크게 컬러와 모노크롬이다. 소재는 주로 꽃과 나무다. 개념으로는 심상의 풍경과 자연의 풍경으로 나눌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서양화도, 동양화도 아닌 그만의 독특한 그림이다. 그는 삼릉 소나무를 그리면서 회화에 분청사기제작기법을 도입했다. 물감에다 분청사기 재료인 흙을 섞었다. 그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뿌리거나 긁어낸다고 했다. 그는 소나무를 자연 그대로 모사하기보다 직감으로 재해석해 표현하기를 즐긴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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