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평해 월송정 솔숲, 황씨시조 정원 내 정자 넣어 찍으면 '한폭 동양화'

  • 입력 2012-06-08   |  발행일 2012-06-08 제35면   |  수정 2012-06-08
울진 평해 월송정 솔숲, 황씨시조 정원 내 정자 넣어 찍으면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 입구 평해황씨 시조정원 정자에서 바라본 솔숲. 장대한 소나무와 연못이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한다.

흥덕왕릉 솔숲은 육통리 뒷산의 솔숲과 이어져있다. 왕릉 뒤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은 것도 볼 수 있다. 이곳의 솔숲 풍광은 삼릉 못지 않으나 주변 환경은 삼릉에 미치지 못한다. 삼릉은 남산과 이어져있기 때문에 보호가 각별한 반면, 경주시내에서 뚝 떨어진 이곳은 보호라기보다 방치에 가깝다. 소나무 마니아나 역사탐방객을 제외하곤 찾아오는 이도 드물다. 숲이란 가꾸지 않으면 파괴된다. 농로 사이로 난 좁은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안강읍 육통리 마을을 들어서자마자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냄새가 코를 찌른다. 냄새는 왕릉까지 따라온다. 솔숲 속으로 들어서면 악취대신 개사육장에서 들려오는 울부짖는 개 소리가 심신을 피곤하게 한다. “끙끙, 멍멍” 거리는 소리에 솔바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문명과 공해로부터 찌든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솔숲을 찾았건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말없는 소나무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식물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면 열매도 더 많이 맺는다는 실험결과도 있지 않은가. 눈은 즐거우나 코와 귀가 불편한 솔숲이 흥덕왕릉 도래솔이다.

울진 평해 월송정 솔숲, 황씨시조 정원 내 정자 넣어 찍으면
흥덕왕릉 내 소나무는 키가 작고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대부분이다. 석상 부근에 있는 고송은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울진 평해 월송정 솔숲, 황씨시조 정원 내 정자 넣어 찍으면
안동 내앞마을을 수호하는 개호송. 지금은 임하댐 보조호수에 잠겨 섬처럼 고립됐으나, 한때 조선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 비보림(裨補林)이었다.


울진 평해 월송정 솔숲, 황씨시조 정원 내 정자 넣어 찍으면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 인근 구산해수욕장에 식재된 방풍림은 해송이다. 논과 소나무,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 안동 내앞(川前)마을 개호송(開湖松)

안동의 천전리는 명문혈족인 의성김씨의 집성촌이다. 마을 앞에는 현재 안동독립기념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의 역사는 500년이 넘는다. 기록에 따르면 솔숲은 마을을 연 입향조 때부터 조성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학봉 김성일을 비롯해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 월송 김형식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이 이 마을 출신이다. 경술국치 후 이 마을에 사는 22가구 50여명이 엄동설한에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갈 만큼 지조 있고 뼈대 있는 마을이다. 내앞마을은 독립운동가의 산실이요, 개호송은 내앞의 자존심이다.

지금은 임하댐 보조호수 섬 한가운데 키 큰 소나무가 50그루 남짓 보이지만 댐이 생기기 전까지는 강을 낀 모래톱 둔덕에 200그루가 넘는 노송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 솔숲은 일종의 비보림(裨補林·풍수지리상으로 기운이 약한 곳을 채우는 숲)으로 조성됐다. 안동 하회마을의 만송정이나 예천의 금당실 솔숲처럼 조선시대 양반가문이 자리 잡은 터에는 이렇듯 비보림을 조성했다.

개호송 군락지에서 상류쪽 1㎞까지 500그루가 넘는 노송이 즐비했다니 그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백운정 맞은편 제방 위 둔치에 100그루 정도의 노송만이 하늘을 찌를 듯 남아있다. 내앞마을 사람들은 이 솔숲을 일러 ‘쑤’라고 한다. 쑤는 ‘숲(藪)’을 의미한다. 노송의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 어른 혼자서 팔을 둘러도 감싸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까지 본 솔숲 중 가장 수령이 오래됐다. 노송마다 정령이 깃들어있는 듯하다. 2007년 문화재청은 백운정과 개호송 솔숲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했다. 소나무 한 그루마다 이 마을 출신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붙여도 좋을 듯하다. ‘일송정 푸른 솔’의 선구자 일송(一松) 김동삼도 개호송을 생각하며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졌으리라.

내앞마을 선조들은 쑤를 목숨만큼 아끼고 가꿔왔다. 개호송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나 문장으로 결의문을 만들었다. 솔숲이 없어지면 마을도 사라진다는 선조의 가르침에 따라 가문의 흥망을 개호송의 성쇠와 동일시했다.

천전리에 살고 있는 김시용씨(67)는 “어릴 적 단오명절 때 동네어른들이 쑤에서 그네를 타고 놀기도 했다”면서 “땔감을 구하러 이산 저산을 다니던 힘든 시절 어른들이 마을 앞에 있는 쑤는 놔두고 멀리까지 가서 나무를 해오라고 하는 바람에 원망스럽기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 울진 평해 월송정(越松亭)솔숲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제1경으로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해변에 있다. 월송정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자 주변에는 대규모로 조성된 소나무 숲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다. 월송정으로 가는 들머리에는 평해황씨의 시조 정원이 있다.

평해황씨의 시조는 후한 광무제 때 황락이다. 베트남(옛 월나라 영토)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지금의 평해읍 월송리 부근에 상륙해 신라에 귀부했다고 한다. 그의 후손인 황온인이 고려시대 평해에 들어오면서 입향조가 됐다. 그래서 월송정의 ‘월(越)’은 ‘달(月)’이 아니다. 월송정의 소나무씨가 월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전설은 그래서 생긴 듯하다. 일각에서는 신라시대 4명의 화랑이 달빛 아래 솔숲에서 놀았다고 해 월송(月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여간 월송정은 정철의 송강가사에도 나오듯 유명한 정자다. 울진은 조선시대 귀양지였다. 선조 때 서인이었던 정철과 동인이었던 이산해도 이곳에 귀양을 왔다. 그들은 월송정의 풍경을 감상하며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월송정은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당시 그림에도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하지만 지금 월송정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는 수령이 100년은커녕 50년도 채 안 됐다. 키도 10m가 안 된다. 하지만 월송정 휴게소 부근에 식재된 소나무는 80년~100년은 족히 돼 보인다.

실상 월송정 솔숲의 백미는 황씨 시조 정원 안에 있다. 조롱박처럼 생긴 커다란 연못 주변에 높이 20m가 넘는 낙락장송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연못을 건너갈 수 있도록 나무다리를 놓아 이곳에서 사진의 구도를 잡을 수 있다. 이 숲의 소나무는 대부분 키가 큰 붉은 소나무로 기상이 넘친다. 안강송처럼 휘지 않고 금강송처럼 ‘쭉쭉빵빵’이다. 이곳의 촬영 포인트는 정자와 누각을 넣으면서 노송을 함께 찍어야 느낌이 온다. 솔숲만 덩그러니 찍으면 재미가 없다. 황씨 정자에서 카메라 프레임으로 본 솔숲은 한 폭의 동양화다. 이곳은 사유지라서 청도 운문사들머리 솔숲처럼 오솔길을 내지 않았다. 바다 쪽으로 걸어갈수록 소나무의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솔숲은 대개 해송(곰솔)으로 방풍림 또는 방사림 목적으로 조성됐다. 작은 소나무이지만 논과 소나무,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월송정 앞 구산해수욕장에는 파도소리에 새소리, 솔바람 소리가 장단을 맞춘다.

월송정 숲은 2007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주최한 제8회 아름다운 숲 경진대회에서 대상인 누리상을 받았다.

영덕을 비롯해 동해안 지역을 주로 촬영하는 풍경사진가 정해유(64)씨는 “이곳을 찾는 탐방객은 월송정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솔숲을 자연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후손의 의무”라고 말했다.

▨알림= 김현남의 ‘관상’은 지면사정으로 이번주 쉽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