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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문화 이사장 |
요즘 인문학이란 유령이 대학 망토를 두르고 전국을 배회한다. 인문학의 나라 조선을 보자.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도주하면서 어영대장 윤두수에게 “적병의 숫자가 얼마냐”고 하니 “절반이 우리 백성입니다” 하고 아뢴다. 노비들은 노비 문서가 있는 형조와 장례원에 불을 지르고 일본군에 가담해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들을 짐승으로 대우한 조정의 개들과 싸웠다. 그런데 서애의 지략으로 면천법을 실시하자 노비들은 의병으로 모여 겨우 나라가 망할 길을 벗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류성룡은 파직당하고 면천은 없던 일로 번복되며 의병장 김덕령은 참수됐다. 당시 대학이랄 수 있는 성균관과 서원은 침묵한다.
인문학적 기업이 되고자 몸부림친 소니를 보자. 1980년대 소니는 세계적인 첨단 제조기업의 대명사였다. 가장 인문적인 4대 CEO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취임하면서 몰락한다. 영화, 음악, 게임과 같은 콘텐츠가 미래를 결정한다며 문화산업에 뛰어들었다. 핵심 기술과 연구소는 소홀해지기 시작하며 창조와 혁신의 소니는 사라져 갔다. 유럽에서 경제 위기 때 가장 먼저 몰락하는 나라들의 대부분이 문화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였던 것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속담에 ‘말이 그렇지 뜻이 그런가’란 말이 있다. 이것을 몸소 실천한 인문학 장사꾼이 스티브 잡스다. 직원을 해고할 땐 쓸모없는 인간이란 독설과 함께 해고한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 끝까지 냉정하고 인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입만 열면 인류애와 평화를 말한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신제품 발표때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소크라테스와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겠단 말을 한다. 인문학으로 자기를 상징하고 마케팅하는 것이다.
인간적 교양이 넘치는 기업가들은 훗날 아이팟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니 파델을 모두 거절하지만 그 기술이 곧바로 돈이 된다는 걸 알아본 사람은 잡스뿐이었다. TV에서 요즘 스타가 된 인문학 교수가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는 대가로 전 재산을 주더라도 그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봤다. 그건 명백한 사기다. 동아시아 사상의 근본인 논어를 남긴 인문학의 천재인 공자도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뿌렸지만 구직에는 실패했다.
유네스코에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두 개가 세계 기록 유산으로 선정받을 만큼 세계를 해석한 마르크스도 돈을 버는 것엔 철저하게 무능했다. 그럼에도 인문학의 화두는 쓰잘머리 없이 소중하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가 하는 일과 삶, 모두 무용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시장에 내놓으면 똥값도 못 받는 것이 인문학이어야 한다. 정말 귀한 것은 보석같이 비싸지 않고 공기처럼 공짜로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법이다.
사대부의 글쓰기를 검열하고, 과거시험 답안지가 주옥같이 뛰어나도, 당시 유행하는 자유로운 문체가 있으면 여지없이 탈락시킨, 성리학 근본주의자 정조가 과연 개혁군주인가? 천방지축마골피를 천계(賤系)의 대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다. 조선 중기까지 판서 이상의 벼슬을 했고, 청나라에 끝까지 항거한 명나라의 성씨이기에 조선의 비열한 아첨의 결과란 야사는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인문학은 보편과 기준이 된 가치를 파괴한다. 불온할 때 인문학이다. 발견한 답을 내려놓고 미아가 된 수많은 답을 찾으며 앎을 차별 않고 이념과 신념을 경계하는 것이 인문의 태도다.
대학사회는 현실의 치열한 긴장감에 비켜 있고, 인문학에 가장 중요한 변화와 용기DNA를 잃어 버린 집단이다. 로버트 드니로의 뉴욕대 졸업축사인 “여러분은 완전 엿 됐습니다”란 말을 미국 언론은 최고의 축사로 평가했다. 리허설 없는 처절한 몸부림과 끈적한 피와 땀이 젖어 있는 변화무쌍한 세상이 인문학 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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