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청원 ‘파리장서’ 작성된 봉화 바래미마을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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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0   |  발행일 2015-08-20 제7면   |  수정 2015-08-20
해외기지 건설자금 모금해 김창숙에 건네기도
20150820

내앞마을처럼 경북에는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을 10명 이상 배출한 마을이 18곳이나 된다. 안동이 8곳으로 가장 많다. 내앞(18명), 하계(18명), 무실(16명), 부포(14명), 금계(14명), 법흥(11명), 오대(11명), 하회마을(10명) 등이 손꼽힌다.

안동 하계마을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자정순국한 향산 이만도와 동은 이중언이다. 이들의 순국은 마을 주민들이 항일투쟁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됐다. 이만도의 아들 중업은 파리장서의거를 주도했고, 손자 동흠·종흠도 군자금 모집에 앞장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이동봉, 김락(이만도의 며느리), 이비호, 이기호, 이용호, 이극호, 이호준 등은 3·1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또 만주 항일투쟁에 나선 이원일과 창씨개명에 저항하며 자결한 이현구 등이 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법흥마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일가가 자리 잡은 곳이다. 특히 석주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에서만 무려 9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안동뿐만 아니라 영덕 창수(28명)·신리(20명)·원황(11명), 의성 대사(19명)·쌍계(16명), 청도 신원(12명)·내호(10명), 봉화 바래미(14명), 예천 금당실(12명), 청송 덕천(10명) 등도 10명 이상의 유공자를 배출한 독립운동 마을이다.

봉화 바래미마을은 이 마을과 인연을 맺은 심산 김창숙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항일투쟁에 대거 뛰어들었다.

특히 만회고택은 1919년 제1차유림단 사건(파리장서 의거) 당시 심산이 유생들과 함께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1925년 2차 유림단 사건 때는 마을 주민들이 만주와 몽골 접경지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자금을 모금해 심산에게 건넸다가 발각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백승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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