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눈물을 희망으로'] <3부·끝> 김설화 백두산 조선족 양로원장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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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3   |  발행일 2016-11-03 제7면   |  수정 2022-05-18 17:43
외할머니가 늘 ‘동포애’강조…의사 길 접고 조선족 어르신 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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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조선족양로원의 최장수 어르신은 올해로 103세다. 100세 생일 때는 특별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100세 생일을 맞은 한 어르신의 생일잔치에서 관계자들이 어르신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백두산조선족양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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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 의학원서 임상의학 전공
고국 그리워하는 어르신들 위해
어머니 이어 양로원 원장직 맡아
“고향의 흙을 한국서 보내줬으면”


일제강점기, 일본의 강압에 떠밀려 중국으로 온 이들의 손주뻘인 조선족 3세들이 중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세대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나 함께 중국으로 간 경우도 있지만, 3세대는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이들은 한국말을 할 수는 있지만 중국어가 더 편하다.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급하면 중국말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더욱이 조선족 학교가 점점 사라지다 보니 한국문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벅찬 상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조선족 3세대들은 한국의 문화를 지키며,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끊어질 것 같은 고국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중에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김설화 원장(39)도 그중 한 명이다. 김 원장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조선족 어르신을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모시는 백두산조선족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다. 구미가 고향인 김 원장의 외할머니는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있을 정도로 ‘배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일본의 강압은 더 견디기 힘들었고, 그렇게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도망쳤다. 중국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김 원장의 어머니는 8남매. 이 중 6명이 중국에서 대학 공부까지 마쳤다.

조선족 3세인 김 원장이 외할머니의 고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끊임없이 한국사람이라는 것, 같은 핏줄인 한국사람에 대한 동포애를 강조했던 것만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 교육은 연변대학 의학원에서 임상의학을 전공해 의사로 편하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를 조선족 어르신들을 모시는 양로원장으로 이끈 힘이 됐다.

백두산조선족양로원을 처음 만들어 초대 원장을 지낸 김 원장의 어머니 손옥남씨(66). 중국 내 한 사범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5년 정도 일한 어머니 손씨는 퇴직 후 사업자등록증 등을 발급하는 공사국으로 옮겨 부국장까지 올랐다. 이후 2002년 퇴직해 2006년 지금의 양로원을 설립했다. 그는 딸을 의대로 보냈지만 의사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의사인 딸이 양로원에 계신 동포 어르신들을 잘 치료해줄 수 있길 기대했으며 졸업하자마자 양로원장 자리를 넘겨줬다.

김 원장은 “조선족 1, 2세대의 경우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중국에서 생을 마감하는 수가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거나 혼자 남겨진 경우도 많아 외로운 말년을 보낸다. 이를 오랫동안 지켜본 어머니는 2년 동안 준비를 거쳐 양로원을 설립했고, 내가 의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이를 이어받게 했다”며 “나 자신만 생각하면 의학원 졸업 후 의사로 일하는게 더 좋지만, 어머니가 동포 어르신들을 이어받아야 한다며 원장직을 맡으라고 했고 나도 주저없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양로원에는 170여명의 조선족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 103세 할머니가 최고령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 없이 이곳에 사는 어르신들이 내는 돈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하고 있다. 100% 조선족만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홈페이지도 한글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추석, 단오 등을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고 김치, 송편 등의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고 있다.

이곳 어르신들은 고향의 풍경이 담긴 사진을 많이 찾는다. 김 원장은 신문사나 잡지사 등을 통해 어르신들이 살았다는 고향의 예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담은 사진을 구해 보여주기도 한다.

몸이 불편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하는 어르신들에게 사진으로나마 고국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사진이 모였고, 조금 더 모이면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어르신 중에 고향이 대구·경북인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고향 사진도 좋고 그 곳의 흙도 좋고 조금씩 양로원으로 담아 보내 주면 그들이 생을 마감할 때 외롭지 않게 함께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문사도 좋고 행정기관도 좋고 이를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80%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던 고향과 가족 이야기는 종종 합니다. 고국 땅을 밟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게 도와드리는 일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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