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39] 충북 괴산 선유구곡(下)...선인은 떠났어도 바위문 들어서니 세속이 저절로 멀어지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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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7 08:11  |  수정 2021-07-06 14:47  |  발행일 2019-02-07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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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선유구곡 중 7~9곡이 몰려 있는 계곡 풍경. 오른쪽이 7곡 기국암(바둑 바위)이고 왼쪽이 8곡 귀암(거북바위)이며, 뒤쪽에 보이는 큰 바위가 9곡 은선암이다. 바위마다 굽이 명칭이 새겨져 있다.

문경 가은의 선유구곡에 대한 시를 남긴 정태진(丁泰鎭·1876~1956)은 괴산의 선유구곡 풍경을 읊은 시 ‘외선유구경(外仙遊九景)’도 남겼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선유구경의 명칭은 좀 다르다. ‘외선유구경’의 명칭은 석문(石門), 경천벽(擎天壁), 학소대(鶴巢臺), 연단로(煉丹爐), 와룡폭(臥龍瀑), 귀암(龜巖), 기국암(碁局巖), 난가대(爛柯臺), 은선대(隱仙臺)의 순으로 되어 있다. 상편에서 다룬 괴산 선유구곡의 명칭은 1곡 선유동문, 2곡 경천벽, 3곡 학소암, 4곡 연단로, 5곡 와룡폭, 6곡 난가대, 7곡 기국암, 8곡 귀암, 9곡 은선암이다. 명칭이 약간 다르기도 하고, 순서도 일치하지 않는다. 정태진이 괴산의 선유구곡 풍경을 읊은 시를 보면 곳곳에 서린 전설과 풍광, 그곳이 주는 가르침 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 신선세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005년에 출간된 ‘문경의 구곡원림과 구곡시가’(김문기 지음)의 관련 내용을 토대로 정태진의 ‘외선유구곡시’를 소개한다. 서시 ‘외선유동(外仙遊洞)’에 이어 구경(九景)을 읊고 있다.

◆정태진 시‘외선유구경(外仙遊九景)’

‘옛 사람 이미 가고 나 지금 와서(昔人已去我來今)/ 안개 덮인 선유동 차례로 찾아본다(洞裏煙霞取次尋)/ 선생의 당일 자취 사모해 우러르니(景仰先生當日蹟)/ 이 몸의 말년 마음 슬프게만 하네(偏傷小子暮年心)/ 이곳 산수를 품으니 진흔의 밖이고(懷玆山水塵 外)/ 깊은 곳엔 신선이 사는 듯하네(疑有神仙窟宅深)/ 한 길로 점차 나아가면 진경의 경계이니(一路漸窮眞境界)/ 높은 대에 기대어 한 번 길게 노래하리(高臺徙倚一長吟)

동천은 쓸쓸해 돌이 문이 되고(洞天寥廓石爲門)/ 늘 구름 안개 끼어 밝은 해를 가리네(常有雲霞白日昏)/ 우리는 여기서부터 신선처럼 노니나니(吾輩仙遊從此始)/ 세상 어느 곳에 진훤이 있겠는가(世間何處有塵喧) <석문>

아름다운 이름 옛날 언제 시작되었나(嘉名肇錫昔何年)/ 한 벽이 높이 솟아 하늘에 닿네(一壁 嶢擎九天)/ 곧게 솟아 진실로 기상을 이루니(矗立眞能成氣像)/ 몇 번이나 강산이 변했지만 홀로 푸르네(幾經桑海獨蒼然) <경천벽>


정태진이 읊은 구곡시
전설과 아름다운 풍광
교훈이 생생히 드러나

쌍곡마을의 쌍곡구곡
괴산의 3대 구곡 꼽혀



붉은 산꼭대기 흰 학 옛날부터 둥지 틀고(丹頂皓衣昔此巢)/ 바위 틈 소나무 가지 끝만 보이네(巖 惟見古松梢)/ 이를 잡고 곧바로 신선길 좇고자 하지만(秉渠直欲追仙路)/ 벽이 끊어지고 구름 가리어 만날 수 없네(壁斷雲悠不可交) <학소대>

단약 만드는 비결 지금 어찌 없는가(成丹要訣奈今無)/ 바위 위에 노닌 신선 화로 남겼구나(巖上遊仙遺煉爐)/ 세상 사람 흰 머리 많다 하며 탄식하나(堪歎世人多白髮)/ 헛된 도구 의지하며 부질없이 전하네(只憑虛器浪傳呼) <연단로>

긴 폭포는 흰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고(瀑布長看臥白龍)/ 큰 소리 내고 흰 눈 뿜으며 날마다 떨어지네(轟雷噴雪日撞春)/ 온전히 옮겨 놓은 장관이 이렇게 지극하고(全輸壯觀玆焉極)/ 시원한 기운 따르니 마음도 차갑네(心目冷然爽氣從) <와룡폭>

거북을 구워 치는 점 해석할 이 없어(無人解古灼神龜)/ 이를 방치하니 황량하여 기괴하게 되었네(放置荒閑等怪奇)/ 마땅히 폭포 용과 더불어 길이 칩거하며(應與瀑龍長蟄伏)/ 신령한 기운 쌓아 밝은 때 기다리네(蓄他靈異待明時) <귀암>

바위 위 늙은 신선 바둑 두기 사랑하여(巖上老仙愛看碁)/ 나무 하는 초동과 어울려 바둑을 두네(欄柯樵者也相隨)/ 한가한 마음 좋은 곳에서 기심 사라지니(閒情適處機心息)/ 바둑 두지만 승부엔 관심 없다네(局外輸 不知) <기국암>

바위 위 신선 바둑 마치니 물소리 요란하고(巖仙碁罷水聲多)/ 누대 위 그 누가 옛날에 도끼 자루 불살랐나(臺上何人昔爛柯)/ 진경은 깊은 곳에 있다는 것 알게 되고(眞境方知深處在)/ 시내 너머에서 자지가 들리는 듯하네(隔溪如聞紫芝歌) <난가대>

선인은 이미 가고 바위는 아직 남아 있어(仙人已去尙餘巖)/ 한 번 바위 문 들어서니 세속에 멀어지네(一入巖門謝俗凡)/ 세상 욕심에 사로잡혀 어찌 가벼이 말하는가(紛拏世機那管說)/ 예부터 말할 때는 신중히 하라고 하였네(古來金口戒三緘) <은선대>’

서시에서 ‘선생’은 퇴계 이황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8곡 난가대를 읊은 시에 나오는 자지가(紫芝歌)는 중국의 상산사호(商山四皓) 고사에서 유래된 노래다. 진(秦)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 里) 네 노인은 상산(商山)으로 들어갔다. 수염과 눈썹이 모두 희었기에 상산사호라고 불렸다. 네 노인은 상산에서 영지버섯 등을 따먹으며 지냈다. 유방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했을 무렵에는 이미 천하에 현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래서 한(漢) 고조 유방이 사호를 불렀으나 네 노인은 ‘자지가(紫芝歌)’를 부르며 거절했다. 자줏빛 버섯인 ‘자지(紫芝)’는 선가(仙家)에서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치던 영지버섯을 뜻한다.

◆쌍곡구곡

괴산 대표적 구곡으로 이 선유구곡 및 화양구곡과 함께 쌍곡구곡(雙谷九谷)이 있다. 괴산 3대 구곡으로도 불린다. 쌍곡구곡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쌍곡구곡은 괴산군 칠성면 쌍곡마을에서 제수리재에 이르는 쌍곡계곡에 있는 구곡이다. 보배산·군자산·비학산에 둘러싸인 구곡이다. 맑은 물과 기암절벽, 노송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괴산팔경의 하나로 손꼽혀온 곳이다. 구곡의 이름은 1곡 호롱소, 2곡 소금강(小金剛), 3곡 병암(餠岩:떡바위), 4곡 문수암(文殊岩), 5곡 쌍벽(雙壁), 6곡 용소(龍沼), 7곡 쌍곡폭포(雙谷瀑布), 8곡 선녀탕(仙女湯), 9곡 장암(場岩:마당바위)이다.

1곡 호롱소는 계곡물이 꺾이며 생긴 소와 바위,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근처 절벽에 호롱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호롱소라 불리었다. 제2곡 소금강은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 제3곡 병암은 바위 모양이 시루떡을 자른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기근이 심했던 시절에 떡바위 근처에 살면 먹을 것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살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제4곡 문수암은 소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노송과 조화를 이룬다. 옛날에 바위 밑으로 나있는 동굴에 문수보살을 모신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5곡은 쌍벽으로 계곡 양쪽에 높이 10여m, 너비 5m 정도의 바위가 늘어서 있다. 제6곡 용소는 암석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바위웅덩이를 휘돌며 장관을 이룬다. 제7곡 쌍곡폭포는 반석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지고, 제8곡 선녀탕은 작은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제9곡인 장암은 반석 모양이 마당처럼 넓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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