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길 ‘줌인’] 350m 벽화길 ‘낮보다 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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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2   |  발행일 2019-02-22 제33면   |  수정 2019-02-22
사통오달로 뻗는 ‘전국구 골목문화특구’
비약적 발전 속 청사진 마련 숨고르기중
주황색 가로등 불빛 1988년으로 가는 타임머신
20190222
김광석길은 낮보다 밤이 더 진국이다. 그 길은 남쪽존과 북쪽존으로 나눠져 있다. 최근 옹벽 상단 신천 둔치에 음표로 치장된 김광석산책로가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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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다시그리기 벽화길은 처음에는 몇 단계로 나눠 참여한 50여명의 예술가와 문화기획가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통영 동피랑 벽화길보다 더 디테일한 감각을 표출, 단번에 전국적 명소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메인 테마는 김광석의 주요 노래를 오브제로 작가별 존을 정해 벽화로 이어져 더없이 멋진 포토존으로 자릴 잡을 수 있었다.

대구 중구 대봉1동 김광석길. 한때는 행인 한 명 없는 지옥의 골목이었다. 지난 10여년 예술인과 행정가, 상인과 주민의 관심 덕분에 지금은 천국 같은 ‘전국구 골목문화특구’로 변해버렸다. 미식가에겐 신 먹거리특구로도 주목받는다.

‘웨딩패션쇼핑가’로 불리는 대백프라자권까지 합치면 중구 대봉1동은 허리가 잘록한 모래시계 같다. 그 잘록한 구역에서 대봉1동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복합문화공간 떼아뜨르분도와 송죽미용실이 ‘문화등대’처럼 서 있다. 그 골목길 초입에 2017년 6월 오픈한 ‘김광석스토리하우스’가 김광석길에서 조금 비껴서 있다. 북쪽 대봉1동은 남북으로 뻗은 5개 에비뉴, 동서로 이어진 12개 스트리트로 짜여 있다. 그 길이 모두 38개의 주거존을 만든다. 그 맨동쪽 신천 옹벽존이 365일 매일 김광석의 노래만 옹달샘의 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뮤직로드(Music road)’. 김광석의 동서남북을 온갖 벽화톤으로 형상화해놓은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 바로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다.

처음엔 방천시장이 주인이고 그 옆에 붙은 김광석길은 객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3년 시점부터 주객이 전도된다. 김광석길이 방천시장 상권을 압도하며 슈퍼존으로 비약적으로 용틀임한다. 평당 가격이 수천만원대로 치솟을 정도로 상업자본이 거세게 몰려들었다.


350m, 곧추 뻗은 벽화길은 낮보다 밤이 더 진국이다. 이 거리의 어둑함은 무척 ‘사색적’이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은 타임머신이다. 사람들을 1988년 1월로 데려가준다. 거기서 포크그룹 ‘동물원’의 히트곡 ‘거리에서’를 듣게 해준다. 거리에~ 가로등불이~, 고혹하고 우수 가득한 음색의 김광석.

1982년 9월, 명지대 1학년생인 김광석을 위해 포크싱어 임지훈이 서울 중구 무교동에 있던 라이브카페 ‘코스모스 코러스’를 소개해준다. 96년 1월6일 저승으로 가기 전까지, 그는 14년 만에 소극장 공연 1천회를 돌파하는 등 ‘전설의 포크전사’로 우뚝해진다.

국내 통기타 가수한테 가장 사랑받는 미국의 통기타 제작사인 ‘마틴’도 김광석을 인정했다. 2016년 12월 오직 김광석만을 위한 기타를 제작한다. 그의 사인과 육필이 적힌 ‘M-36 김광석 트리뷰트 에디션 모델 ’을 52대 제작, 그중 2대를 유족에게 전한다. 동아시아 뮤지션 중 마틴 헌정모델을 갖게 된 최초의 뮤지션이 된다. 김광석스토리하우스 2층에 그 기타가 전시돼 있다.


김광석길은 점차 김광석을 넘어서는 형국이다. 방천시장을 넘어 신천과 대백프라자 등 대봉1동 전 구역을 향해 비약적으로 확장 중이다. 올해 5회를 맞는 ‘방천아트페스티벌’은 물론 지난해 제1회 ‘레코드페어’까지 론칭한 ‘방천문화예술협회(BACA)’, 대봉문화마을축제를 이끄는 ‘대봉문화마을협의회’, 국내 첫 골목오페라를 선도한 대봉골목오페라축제위원회, 김광석스토리하우스 등도 골목에 문화를 입히고 있다. 이 밖에 방천시장상인회와 김광석길상인회, 웨딩거리상점가상인회, 대봉1동주민자치위원회 등도 중구청과 손을 잡고 향후 청사진 마련을 위해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느슨해진 구두끈을 더 조여매고 찬바람이 일렁거리는 김광석길의 모든 골목을 걸었다.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경기 탓에 이 골목을 떠난 이도 적잖다. 관계자들은 저마다 리더라며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만 보고 있다.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이 골목을 왜곡시킨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갑자기 그리스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는 ‘산토리니섬’이 생각났다. 주민들은 이 섬만의 미학적 울림을 위해 컬러를 통일했다. 표준조색안에 맞는 화이트와 블루만 사용한 것이다. 그게 빅뱅을 일으켰다. 색도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김광석길만의 일체감을 줄 수 있는 컬러는 뭘까.

현재 관람객의 동선은 김광석길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이어지질 않는다. 옹벽을 뚫어 신천과 소통하면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다. 파리 센강변 명물이 된 포켓형 예술상점 같은 걸 김광석길 상단 산책길에 조성해도 좋지 않을까. 동서로 이어지는 12개 골목마다 디자인팀을 실명제 형식으로 배정해 알록달록 집과 골목을 치장하면 어떨까. 주민의 애장품, 녹물 가득한 철대문 등을 살린 ‘골목전시관’을 민간 주도로 설치한다면. ‘볼 게 이것뿐이냐’는 불만의 대상이 된 김광석길이 머잖아 섬 전체가 미술품이 된 일본 나오시마 못지않은 ‘골목박물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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