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중·고등부 최우수상(대구시교육감상) 김가빈(경북여고 1년)‘페인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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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5   |  발행일 2019-12-05 제25면   |  수정 2019-12-05
“낳았다고 부모 아냐…가족은 서로가 만들어가는 것”

갓 태어난 아이의 삶은 하얀 도화지와 같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물음을 던진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제 인생을 어떤 색으로 칠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가?

NC센터는 고아들을 기르고 입양시키는 곳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아이들의 입양은 충분히 자랐을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입양의 선택권은 아이들에게 있기 때문에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짓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NC센터의 아이들을 입양할 때 따라오는 연금 등의 혜택을 노리고 아이들을 입양해 가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NC센터 출신이라는 낙인을 떼기 위해 입양을 간다. 그렇게 형성된 ‘가족’은 사실상 서로의 이해타산에 맞춘 동거인이나 다름이 없다고도 말한다. 주인공은 1월(January)에 센터에 들어온 삼백 한 번째 남자아이, 올해로 열일곱 살의 제누 301이다.

제누를 비롯한 NC센터의 10대 후반을 달리는 아이들은 다소 현실적이고 우울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 예비 양부모(pro fostor parents, 이하 ‘프리 포스터’)들의 의도 따위는 한 눈에 파악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NC센터에서 지내며 부모를 만나기 위해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 이하 ‘페인트’)을 하면서도 속물 예비 부모를 보며 애써 비웃음을 참는다던가 하며 말이다.

물론 그런 부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누의 룸메이트이자 센터에 들어온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열두 살 배기 남자아이 ‘아키’는 군살 없고 맑은 아이이다. 자신의 첫 페인트가 잡혔다는 소식에 기대어린 모습을 보이는 아키에게 제누는 배가 불룩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할지도 모른다. 네가 좋아하는 윈드 보드는커녕 걷기조차 싫어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아키를 놀려먹지만 내심 생각이 깊은 센터장 박이라면 아키처럼 다정한 아이에게 좋은 분들은 소개시켜 줄 것이라 생각한다. 제누의 짐작은 틀리지 않아 아키를 위해 윈드 보드를 배우기까지 하는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난다.

제누는 아키의 페인트가 잘 성사되어 나가는 것을 보며 티는 내지 않지만 흐뭇해하는데, 그 즈음 제누에게도 또다른 페인트가 들어온다. 젊은 예술가 부부인 하나와 해오름이었다. 여태까지 웬 정장 차림에 한껏 꾸며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던 예비 부모들과는 달리 여기저기 물감이 묻은 차림새라거나, 가식없는 말씨에 흥미를 느낀 제누는 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페인트를 승낙한다.

하나는 친부모와의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인물로 제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약 우리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자신은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NC출신에게 문제가 많은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어느 날 가족이 되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를 써 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지나치게 솔직하다면 솔직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 제누는 마지막 페인트까지 성사시키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누는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입양을 가지 않고 하나, 해오름과의 페인트 이후 마음을 굳혀 더 이상의 페인트는 하지 않겠다고 박에게 말한다. 제누가 입양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NC센터를 떠나고 싶지 않아서였으며, 그럼에도 면접을 이어나간 이유는 둘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수긍하며 제누에게 뒷면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집 주소가 적힌 해오름의 그림을 선물한다. 제누를 그린 것이었다. 그들은 결국 NC센터를 나오게 되면 부모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며 헤어진다. 제누에게 하나와 해오름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단 한번도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제누였지만 하나와 해오름에게 만큼은 다른 가디 또한 의아하게 여길 만큼이나 마음을 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와 해오름에게 필요한 것은 장성한 아들보다는 동거인 내지는 친구였고 제누 역시 부모보다는 사회에 나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하나와 해오름과의 페인트를 끝내고 더 이상 페인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제누는 박의 이름을 묻는다. 박은 아이들이 가디언을 편의상 부르는 호칭이니 말이다. 박은 말해주지 않는 대신 네가 NC센터를 나가 사회에 발을 들이면 자신은 이제 센터장도, 박 가디도 아닐 것이라 말하고 책은 끝이 난다. 나는 이 박의 말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와 해오름처럼 부모 이상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뜻일 수도, 아니면 긴 시간을 봐 온 박이라면 제누에게 그 부모와 비슷한 것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제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현실의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공감이 될 법한 말들이다. 제누는 자기가 할 말은 분명히 하고, 제 의사를 분명히 피력한다. 다소 진지하면서도 열일곱 살 나이의 막무가내 기질을 가졌으니 말이다. 한편 좋은 부모를 고르기 전에 자신이 좋은 아들이 될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등 평범한 청소년의 심리를 무섭도록 잘 표현한 것만 같다. 특히 제누가 NC의 낙인을 떼고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길 원한다는 박에게 제누가 대꾸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회는 원산지 표기가 분명한 것을 좋아하잖아요.” 그 말에 박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그는 내가 열일곱 살이라는 것을 잊은 것 같다며, 이 정도 농담에 씁쓸해할 나이가 아니라며 자조하는 것은 마치 내 생각을 읽힌 듯 했다. 이러한 제누 덕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결코 생각해 볼 요소가 적지 않았다.

아이들 삶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년기가 어떤 색이 될지는 부모라는 ‘페인트’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NC센터 아이들은 그 페인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NC센터의 센터장 박은 꽤, 아니. 이 사회에서는 드물 정도로 좋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뚝뚝하고 까칠하지만 사실 유년기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작중에 등장한다. 자신과 같은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를 이겨내고 센터장의 자리까지 올라 이제는 자랑스럽게 아이들을 지켜내고, 도와주고 있으니 더없이 좋은 어른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박과 같은 어른들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예쁜 색으로 제 유년기를 칠해나간 것은 아닐까.

우리네 현실의 어떤 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좋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자라지만, 어떤 아이들은 말 그대로 15점, 혹은 그 이하의 부모에게서 고통 받으며 산다고들 한다. 하지만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 돈이 많으면 좋은 부모이고 가난하면 나쁜 부모인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 무조건 좋은 부모이고, 일이 바빠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면 나쁜 부모인가? 우리는 모두 처음으로 부모가 되었고, 처음으로 자식이 되었으며 처음으로 가족이 되었다. 단지 아이를 낳는다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 아이와 함께함으로써 부모가 되어간다고 하는 편이 옳다. 우리 삶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페인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20191205

“책읽기 쉽지않은 시기, 동감의 계기 되길”
수상 소감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책을 펼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해요. 제 감상문을 보신 분들이 제가 이 책에서 느낀 것들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쓴 글입니다. 부족한 게 많음에도 큰 상을 받게 돼 놀랍고 기뻤어요. 자만하지 않고 더 나아가라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출품을 추천해주신 삼촌, 좋은 공모전을 열어주신 영남일보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날이 쌀쌀해 지고 있는데 모두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아무쪼록 따뜻한 하루 하루를 보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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