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한식 현대화<下>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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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6   |  발행일 2019-12-06 제41면   |  수정 2019-12-06
한글조리서 ‘시의전서 부빔밥’…명품맛으로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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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중동면 백강정에서 팔고 있는 ‘시의전서 비빔밥’. 육전 같은 떡갈비가 비빔밥 고명으로 들어가고 뽕잎장국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안동에 ‘수운잡방’이 있다면 영양에는 ‘음식디미방’이 있다. 음식디미방은 한글로 된 국내 최초의 고요리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얘기거리가 많은 고조리서 중 하나다. 한동안 이 책은 ‘X-Book’이었다. 담겨있는 진짜 의미를 풀려면 한 명의 학자만으로는 곤란했다. 당시 한글은 한자보다 더 어려웠다. 그 방면 전문가가 아니면 손을 댈 수가 없었다. 17세기 경상도 요리 용어에 능한 식품사학자, 식품영양학자, 역사학자, 보학자, 궁중요리전문가 등이 팀워크를 이뤄야 제대로 해제를 할 수 있었다.


한글 첫 고요리서…영양 ‘음식디미방’
면병류 18, 어육류 74, 주류 51…146품 수록
빈자병, 앵두편, 조개탕, 어만두 46가지 재현
감향주 등 전통주 54종, 식초 복원사업 성과
영양 두들마을 한옥체험관 다양한 메뉴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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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필사본으로 발견된 ‘시의전서’ 영인본.

국내에 한권밖에 없는 음식디미방 원본은 현재 경북대 고문서 보관실에 보관돼 있다. 원래 장씨부인의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李玄逸)의 후손이 보관하다가 도난을 우려해 1960년 경북대 도서관 고서실에 영구기증한 것이다. 이 책의 존재를 맨 처음 알린 사람은 경북대 김사엽 박사. 그는 1960년 ‘고병간 박사 기념논총’에서 ‘규곤시의방과 장씨부인의 아들 존재 이휘일의 전가팔곡(田家八曲)’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이어 김형수 박사, 1966년 손정자 교수, 1999년에는 안동대 윤숙경 교수가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조선중기 음식법에 대한 조리학적 고찰에 대한 논평’을 정부인 안동장씨 추모학술대회 발표 논문집에 발표한다. 황혜성의 딸 한복려, 한복선, 한복진은 ‘다시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 한복진은 다시 그해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조선시대 중기 음식법에 대한 조리학적 고찰’을 펴낸다. 2006년 경북대 국어국문화 백두현 교수는 당시 어원을 거의 정확하게 추적한 끝에 ‘음식디미방 주해’(글누림 刊)를 낸다.

책 크기는 가로 26.5㎝ , 세로 18㎝.

장정한 표지 제목은 음식디미방이 아니고 ‘규곤시의방’. 표지를 넘기면 권두서명은 음식디미방. 두 제목의 상관관계는 별로 없어 혼동을 야기할 수 있다. 백두현 교수 등 학자들은 음식디미방은 장씨부인, 규곤시의방은 후손들이 격식을 갖춰 첨가한 것으로 본다. 계선도 없고 그냥 황색 저지에 붓으로 28장 146가지 음식의 레시피 등을 정리했다.

많은 이가 ‘디미’의 뜻을 궁금해 한다. 김사엽 박사는 ‘지미(地味)’, 황혜성은 ‘지미(知味)’로 풀었다. 백두현은 디미를 至味, 至美, 旨美 등으로 봤는데 ‘至’와 ‘旨’의 고음이 ‘지’여서 지미(知味)를 가장 적합한 것으로 봤다. 따라서 음식디미방의 뜻은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 즉 요리비법(料理秘法)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수록된 음식 종류는 모두 146품. 면병류는 18품, 어육류는 74품, 술은 51품, 식초는 3품. 당시 요리 용어는 현재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만두는 상화, 수제비는 나화, 빈대떡은 빈자, 물만두는 수교애, 닭찜은 수증계로 표기돼 있다. 1613년에 편찬된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처음 등장하는 고추가 음식디미방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천초, 후추, 마늘, 파 등을 고추 대용으로 사용했다. 고추는 임진왜란 직후 들어왔고 경북 북부지방에는 새로운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과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현에 가장 앞장선 사람은 역시 조선왕조 궁중음식 분야 기능보유자가 된 황혜성(2006년 87세로 별세). 그녀는 국내 요리전문가로선 맨 먼저 1965년 음식디미방을 만난다. 1982년 해제본을 내고, 1986년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음식디미방 음식 72품을 발표한다. 1990년 장씨부인이 살았던 석계고택이 있는 두들마을은 경북도 민속자료 제91호로 지정된다. 2006년쯤 태동된 영양군 음식디미방보존회는 빈자병, 앵두편, 조개탕, 어만두 등 모두 46가지의 음식을 재현했고 아울러 수록된 54종의 전통주 및 식초 복원사업에도 나선다. 전통주 복원의 경우 영남대 서정순 교수가 초빙돼 음식디미방 회원 26명을 대상으로 감향주를 비롯해 이화주, 유화주 등 3종의 술을 음식디미방에 쓰인 조리법대로 복원했다. 영양군은 2006년부터 음식디미방에 수록된 146종의 음식조리법의 재현작업이 성과를 거둬 두들마을 전통한옥체험관에서 다양한 메뉴를 일반에 실비(예약)로 선보이고 있다.

재령이씨 석계파 13대 종부인 조귀분 음식디미방 보존회 회장이 디미방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5년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종가의 맛 음식디미방 시식회’에서도 외국사절 등 국내외 귀빈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시의전서
국내 최초의 비빔밥 ‘골동반’ 레시피 소개
1800년말∼1900년대 초 상차림·음식 구성
400여종 음식…구첩·칠첩·오첩·술상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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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시의전서 전통요리경연대회’에서 일반부 1등을 차지한 ‘더다음팀’이 만든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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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시의전서’ 명품화 프로젝트 덕분에 낙동강변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시의전서 음식 체험관 구실을 하는 백강정의 야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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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의전서연구회 발족을 앞두고 상주농업기술센터와 대구한의대가 개최한 ‘제1회 시의전서 전통요리경연대회’ 시상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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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음식디미방체험관 입구

‘밥을 정히 짓고 고기 재여 볶아 넣고 간랍부쳐 썰어 넣고 각색 나무새 볶아 넣고 좋은 다시마 튀각 튀여 부숴 넣고 고춧가루 깨소금 기름많이 넣고 비비어 그릇에 담아 위는 잡탕거리처럼 계란부쳐 골패쪽 만치 썰어 얹고 완자는 고기 곱게 다져 잘 재여 구슬만치 비비어 밀가루약간 무쳐 계란 씌워 부쳐 얹나니라.’

간랍은 간납이라고도 하며 제사에 쓰는 저냐로 소의 간이나 처녑 또는 생선 살 따위로 만든다. 저냐는 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 푼 것을 씌워 기름에 지진 음식으로 일명 전유어라 하기도 한다.

이 레시피는 시의전서에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빔밥, 일명 골동반(骨董飯)에 대한 것이다. 시의전서는 저자 미상의 한글 조리서이며 현존하는 것은 1919년의 한글 필사본이다. 심완진이 경상도 상주군수로 부임하여 양반가에 소장돼 있던 음식책을 빌려 상주군청의 괘지에 필사한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원본은 1800년대 말엽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두 권의 영인본이 있다.

400여 종의 음식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의 뒷부분 두 면에는 ‘반상식도’라는 제목으로 구첩반상, 칠첩반상, 오첩반상, 술상, 곁상, 신선로상, 입맷상의 음식 배치도가 그려져 있다.이를 통해 1800년대 말~1900년대 초기 상차림의 종류에 따른 음식 구성과 차리는 배치 형태가 확인된다. 하지만 시의전서의 원형은 연구 대상이다. 이에 앞서 노명희씨가 시의전서전통음식연구회를 만들었고 조만간 시의전서연구회도 법인체로 문을 열 전망이다. 고조서리에 대한 다양한 제약조건을 분석하지 않고 천편일률적 고조리서 마케팅을 하면 이명박 대통령 때 거국적으로 진행되다 유명무실 하게되고 만 한식세계화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는 걸 관계자들이 유념해야 될 것이다.


시의전서 현대화
비빔밥·풀코스 한정식 복원 푸드스토리텔링
전통요리경연대회 마련…48개팀 요리 공개
70여종 표준 레시피 보급…명품관 1호점 탄생


요즘 상주시와 상주농업기술센터는 상주만의 푸드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해주는 한 권의 고조리서에 엄청난 애정을 쏟고 있다. 상주지역 요리 관계자들은 시의전서 부빔밥을 염두에 둔 ‘시의전서 비빔밥’과 풀코스 한정식 메뉴 등을 체험할 수 있게 관련 메뉴를 복원 중이다. 이를 위해 시의전서 전통요리경연대회를 펼쳤다. 상주농업기술센터와 대구한의대는 지난달 9~10일 상주시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에서 ‘2019년 상주시 시의전서 전통요리경연대회’를 개최했다. 학생과 일반 참가자 48개팀이 본선 경연을 펼치고 관련 요리를 일반에 공개했다. 대상에는 일반부 ‘더다음’팀(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이, 학생부는 ‘아따아따’팀(경북도지사상)이 선정됐다. 이 대회에서는 시의전서에 나오는 음식 중 주 요리 1점과 부 요리 3점으로 구성된 코스요리 48세트를 일반 관람객에게 선보여 조선시대 전통음식이 현대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메뉴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앞서 상주시는 2017년에 한국식품연구원 공동으로 시의전서 전통음식을 고증·복원했다. 이 과정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70여종의 표준화된 레시피를 만들어 보급했다. 덕분에 시의전서 전통음식명품화사업 제1호 명품관 1호점 창업 식당이 탄생할 수 있었다. 시의전서 체험관이랄 수 있다. 바로 지난해 10월 개점된 ‘백강정(白江庭·상주시 중동면 갱다불길 145)’이다.

백강정이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회상나루터였다. 낙동강 1천300리 중에서 백사장이 아름다워 백강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주메뉴는 시의전서 한상차림, 뭉치구이정식, 상주비빔밥, 깻국국수, 낭화정식, 천리찬도시락 등이다. 상주비빔밥 위에 올리는 ‘곶감약고추장’이 눈길을 끈다.


시의전서 경연 대상 ‘사백반과 약선중탕간장’
상주특산물 오미자·맥문동·인삼 넣은 비빔밥
새롭게 해석한 진피 연계찜·새우잣죽도 인기


일반부 1등팀인 더다음은 시의전서 내용을 토대로 음식을 새롭게 해석했다.

‘사백반과 약선중탕간장’은 상주의 특산물을 이용해 네가지 하얀 재료로 만든 비빔밥이다. 기를 도우고 폐에 좋은 생맥산(오미자, 맥문동, 인삼)을 이용하여 오랜 시간 중탕하여 만든 약선중탕간장이 양념장으로 사용된다. ‘진피 연계찜’도 인기를 끌었다. 연계찜을 약선과 함께 응용하여 소화기능에 도움을 주는 진피를 함께 사용하고 닭의 뼈를 발라내고 찹쌀을 뿌려 쪄낸 후 색다른 식이감으로 다양한 채소와 함께 먹을 수 있다. 시의전서의 잣죽을 기반으로 새우의 감칠맛과 오이의 식감을 넣은 새우잣죽은 지금도 인기가 좋을 메뉴로 보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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