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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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3   |  발행일 2020-01-03 제38면   |  수정 2020-01-03
시속 40㎞ 달리는 대방어 외줄로 잡는 '채낚기'…당일바리 맛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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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낚시로 방어를 잡는 제주 마라도 신알목 방어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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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게 썬 방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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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잡아 온 대방어를 받고 있는 모슬포의 한 식당 주인. 미리 주문을 해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 강원도 삼척 한 어촌의 파도가 치는 거친 바다에서 큰 배가 크레인으로 대형 정치망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야 그 그물이 운이 좋을 때는 수백 마리 방어를 잡는 정치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해에서 방어를 잡는다는 말은 듣고 있었지만 직접 그물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통영의 미륵도 앞 가두리 그물에서 만난 방어들이다. 동해에서 잡은 방어들이 통영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살찌워져 대방어가 된다는 것이었다. 제주에서는 방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어민들이 울상이다. 정확하게는 대방어가 예전처럼 잡히지 않는다. 방어철을 맞아 한 몫 기대했던 모슬포 어민들의 실망이 크다.

방어는 갱이목 전갱잇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이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남해안 그리고 제주바다에 분포한다. 겨울에 따뜻한 남쪽바다에 머물다 5월 이후 수온이 올라가면 북상을 했다가 수온이 내려가면 남쪽으로 내려와 월동을 한다. 어린 시절 시베리아 동쪽 캄차카반도까지 올라갔다가 동해 연안에서 오뉴월에서 가을까지 머물다가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남서쪽으로 이동해 성어로 자란다. 방어는 정어리, 오징어, 멸치, 고등어, 전갱이, 꽁치 등을 좋아하는 육식성으로, 큰 것은 1m 크기에 20㎏까지 성장한다. 한국동물도감, 어류편(1977)에 따르면, 영덕에서는 크기에 따라 곤지메레미(10㎝ 내외), 떡메레미(15㎝), 메레기 혹은 되미(30㎝), 방어(60㎝)라고 했다. 이북에서는 마래미, 강원도에서는 마르미, 방치마르미, 떡마르미, 졸마르미 등으로 불린다. 경남에서는 큰 방어는 부리, 중간 크기는 야즈라고 했다.

외줄낚시로 잡는 자리방어
제주 소문난 어장 '신알목'…지형상 그물보다 낚시가 제격
힘 엄청난 녀석, 늦추고 당기며 힘겨루기해야 줄 안 끊어져

모슬포항에서 출항한 방어잡이 배들은 마라도 남서쪽에서 방어잡이를 한다. 이른 아침부터 50~60척의 배들이 해경의 보호를 받으며 조업을 하고 있다. 이곳이 제주도에서 소문난 방어어장인 '신알목'이다. '새로 찾아낸 마라도 아래쪽 물목'이라는 의미란다. 제주에서는 방어를 잡을 때 외줄낚시를 이용한다. 갈치낚시도 그렇지만 제주바다는 그물보다 낚시가 제격이다. 바다가 거칠기도 하고, 바닥에 돌과 날카로운 화산암이 솟아 있어 그물을 끌거나 둘러치기가 적절치 않다.

방어는 살아 있는 자리돔을 미끼로 해서 잡는다. 방어를 잡으러 가려면 해가 오르기 전 이른 새벽에 나서야 한다. 그 무렵 자리가 활동을 시작한다. 그 자리를 탐하는 방어를 잡아야 하니 어부는 바쁘다. 신알목은 제주에서 자리어장으로도 유명하다. 큰 모선에서 내린 작은 배 두 척이 그물을 끌고 가서 그물로 자리를 뜬다. 세 척의 배가 그물을 뜨니, '삼척들망'이라고 도 한다. 마라도 주변은 자리덕이 많다. '덕'은 깊은 혹은 높은 곳을 말하는 제주어다. 그런 곳에 자리가 많다. 마라도 주변 갯밭에는 자리덕, 물내리는덕, 알살레덕, 남덕, 올한덕 등 덕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지명이 많다. 모두 자리용 덕그물을 놓는 곳이다. 지금은 어탐기를 이용해 잡지만 옛날에는 모두 경험에 의지했다. 한때 미꾸라지를 미끼로 상용하기도 했다.

식탐이 강한 방어는 살아있는 멸치나 자리돔을 좋아한다. 제주도에서는 자리돔을 사용한다. 자리도 어군을 형성해 이동하고 방어도 무리지어 이동한다. 생명력이 강한 자리돔을 낚싯줄에 끼워 유인하는 것이다. 방어와 자리의 먹이사슬을 알아차리고 30여 년 전부터 방어잡이에 자리돔을 이용한다.

방어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마라도 해역에서 자리를 잡아먹으며 살을 찌운다. 하지만 인간이나 바다물고기이나 식탐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손끝에 전해오는 묵직함이란, 돈도 돈이지만 이런 맛 때문에 하늬바람에 맞서 방어잡이에 나선다. 어부는 재빨리 외줄을 낚아챈다. '채낚기' 방식이다. 큰 방어가 물게 되면 그 힘이 엄청나다. 시속 40㎞로 달리는 녀석들이니, 바로 끌어 올리다가는 줄이 끊어질 수 있다. 늦추고 당기며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장갑을 끼고 하지만 손가락 매듭이 쩍쩍 갈라진다. 이렇게 잡은 제주방어를 '자리방어'라고 한다.

우리나라 어류양식의 출발은 '방어축양'에서 시작되었다. 1964년 포항 감포·통영 한산도·미륵도 삼덕 어장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60년대 후반까지 포항·통영·여수 일대에서 방어 축양이 시도되었다. 방어 가두리 양식이 본격화된 것은 75년 일본으로 방어 종묘를 수출하면서다. 당시 일본은 방어양식이 활발했는데, 종묘가 부족해 경남 욕지, 산양, 거제, 곤리, 봉암, 한산, 그리고 여수와 여천에서 치어를 길렀다. 그리고 79년 처음으로 수산통계에 방어 양식량이 18곘으로 기록되었다. 80년대 우리나라 어류양식의 중심은 방어였다. 넙치, 조피볼락, 참돔 등 양식이 본격화되기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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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방어회에 좋은 양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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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방어회를 먹을 때 곁들이는 미나리와 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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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어

방어회는 두툼한 게 좋을까
회로 바로 먹을땐 넓고 얇게 칼질, 숙성후는 두툼하게 조절
모슬포-된장에 다진 마늘, 삼척-초장, 부산-미나리 곁들여


제주도 모슬포에 가파도 해녀가 운영한다는 허름한 방어 식당을 찾았다. 벽에는 낚시인들이 잡은 대물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안주인은 함께 먹을 인원을 물어 본 후 방어를 꺼내 익숙한 솜씨로 나무망치로 머리를 내리쳤다. 바로 아가미 안쪽에 칼을 꽂아 피를 빼냈다. 회 맛을 결정하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다음은 칼질. 얇고 넓게 칼질을 하려면 피를 빼낸 후 즉시 칼질을 해야 한다. 숙성해서 먹으려면 두툼하게 칼질을 하는 것이 좋다. 잡은 후 곧바로 먹으려면 넓고 얇게 써는 것이 좋다. 언제 먹을 것인가에 따라 두께가 결정된다. 숙성이 된 후에는 두껍게 썬다. 식감을 고려해 두께를 조절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방어김치였다. 방어김치는 방어와 매실로 육수를 내어서 양념과 버무렸다고 한다. 그사이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대방어 한 마리와 중방어 세 마리를 잡았다. 다른 배는 중방어만 세 마리가 전부였다. 이렇게 잡아서 기름값이나 하겠느냐고 투덜거린다. 방어도 참치처럼 뱃살, 띠살, 등살, 꼬리살, 아가미살, 가슴살, 배꼽살, 그리고 구이, 탕, 조림 등 부위와 조리 별로 맛이 다르다. 추자도에서는 방어탕을 끓일 때 파김치를 넣어 끓인다. 무엇보다 방어내장수육이나 내장볶음이 특별하다. 물론 대방어일 때라야 가능하다.

방어를 먹을 때는 소스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초장, 된장, 양념간장 등 지역에 따라 먹는 방법도 다르다. 모슬포에서는 된장에 다진 마늘을 기본으로 만든 소스를 이용한다. 삼척이나 강릉은 초장이 기본이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부산이다. 겨울철 싱싱한 미나리를 썰어 그 위에 소스를 얹는다. 소스는 그냥 초장은 아니다. 전라도에서는 양념장을 넉넉하게 만들어 올려 먹는다. 양념장을 만들 때 기본은 파와 고춧가루. 같은 방어를 먹을 때도 이렇게 지역마다 먹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왜 그럴까. 제주도에서 조미의 기본은 된장이다. 전라도는 갖은 양념이 기본이다. 부산음식은 섞임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원초적인 맛을 즐기는 강원도에서는 초장이다.

당일바리로 승부를 걸다
제주 방어값도 예전 같지 않아…맛집은 여전히 인기행렬
바람·파도 거센날 활발하게 먹이 활동…거친바다서 입질

넙치 값이 바닥을 치면서 제주 양식업계가 휘청거렸다. 설상가상으로 제주 방어값도 예전 같지 않아 대책을 마련하느라 제주도가 부산하다. 실제로 모슬포 방어식당은 그 전에 비해서 한산하다. 그만큼 방어를 먹기 위해 산지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생선조림 식당이나 보말칼국수 등 맛집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마라도에서 조업을 마치고 식당으로 들어온 고 선장은 제주방어의 맛은 외줄낚시로 잡은 당일바리 맛이라고 강조한다. 신알목에서 건져온 방어를 바로 경험할 수 있는 맛이라는 것이다. 바로 잡아서 숙성한 방어라 신선도가 높다. 그 이면에는 그물에 가두어 기르는 축양방어를 견제하며 자리방어를 따라올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그물대신 낚시 방어라 가격도 좋다. 소비자가 이런 차이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항변이다.

불과 한두 시간 전에 태평양의 거친 바다에서 자리를 쫓던 그 방어다. 낚시로 방어를 잡는 것은 낚시꾼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가 센 날, 방어가 입질을 한다. 낚시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날씨, 배를 타고 나가기 적절치 않은 그런 날씨가 방어가 활발하게 먹이활동을 하는 때이다. 어쩌면 그 경험도 함께 식탁에 오른 것이리라.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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