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아카데미 4개부문 석권 '기생충' 봉준호 감독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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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4   |  발행일 2020-02-14 제43면   |  수정 2020-02-14
오스카 영광속 '블랙리스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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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상 4관왕에 오른 뒤 출연진 등 '기생충'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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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사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기생충'은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일컫는 제77회 골든글로브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여기서 수상한 작품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아카데미에서 늘 국제영화상을 수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충'이 지난해까지 외국어영화상으로 불리다 올해부터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는 아카데미의 의지를 담아 이름을 바꾼 국제영화상뿐 아니라 각본상과 감독상, 작품상까지 무려 4개 부문이나 수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까지 아카데미는 비(非)영어권 영화에 작품상을 준 전례가 없었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최초이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 된 '기생충'은 이채로운 기록들을 많이 세웠다. 한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일도 처음이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는 것도 1955년 '마티' 이후 64년 만이다. 아시아계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것은 이안 감독 이후 두 번째이고,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쓴 작품이 수상한 것도 놀랍고. 영국 기네스 월드 레코드는 '기생충'을 가장 많은 아카데미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로 기네스북에 등재했다. 이전에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한 '화니와 알렉산더' '와호장룡'과 함께 공동 1위이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또한 화제였다.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 직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제가 영화 공부할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신 분이 있었는데요. 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가 한 말이었습니다)." 이어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제가 학교에서 마틴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던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도 영광인데 제가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었고요."

이 소감을 마틴 스콜세지 바로 옆에 앉아 지켜본 딸 프란체스카 감독은 "(그 순간이) 아버지가 오스카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었다"며 "2020년 오스카는 정말 기억될 밤"이라고 했다. 마틴 스콜세지를 거의 울게 만든 이 장면은 여러 매체에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인상적이었던 순간들' 중 하나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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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구청이 봉준호 감독이 살았다고 밝힌 봉덕동 집.

분명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한 것은 감독과 영화를 아꼈던 이들에게 기쁜 소식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를 사적 욕망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대구의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봉준호 팔이'에 들어갔다. 봉 감독이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나 대명9동에서 살며 남도초등을 다니다 3학년 때 서울로 이사 간 이력 때문이다. '대구 중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한 대부분의 예비후보들이 내건 공약들은 대략 이렇다. 봉준호 영화 거리 조성,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 설치, 봉준호 기념관 건립, 봉준호 명예의 전당 건설, 봉준호 아카데미 유치까지. 생각할 수 있는 공약은 다 나온 거 같은데, 여기서 대구 남구청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봉 감독이 살았던 집까지 찾아내 문화관광 사업을 하겠다며 지난해 예산확보에 실패해 무산된 바 있는 재생영상콘텐츠산업 인프라(지식산업센터) 건립까지 재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점입가경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아카데미 작품상
1955년 '마티' 이후 64년 만에 동시 석권
어려운 시기 한국에 전해준 기쁨과 위로

국정원개혁위 밝힌 '문예계 좌성향' 포함
봉 감독 "악몽같은 기간 트라우마 시달려"
정치권 봉준호 거리·기념관 숟가락 얹기
'기생충' 흑백판 개봉앞 한편의 블랙코미디



다들 잊고 있는 모양인데 봉준호 감독은 한 때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예술가다. 2017년 10월 국정원개혁위원회가 내놓은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정부 국가정보원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고, 그 가운데 '문예계 주요 左(좌)성향 인물 현황'이란 문건에 봉준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봉 감독은 같은 해 프랑스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일을 두고 "대단히 악몽 같은 기간이었다. 한국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영국 가디언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을 전하며 "몇 년 전만 해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인물의 굉장한 반전"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봉 감독을 포함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 9천473명 대부분은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했고 이로 인해 정부 기금에서 배제됐다"고 보도했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여전히 책임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같은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봉 감독을 악몽 같은 시간에 몰아넣은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지금 '봉준호 팔이'에 혈안이 된 이들이 속해 있던 정당 아니었나. 이들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솔직히 역겹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후안무치.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정말 제2, 제3의 봉 감독이 나오길 원한다면 지금 여기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제대로 된 생태계 조사와 그들이 지역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게 무언지 귀를 열어 제대로 된 문화예술 정책부터 세우고 꾸려라. 대구에는 여전히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대구의 아들' '달구벌의 아들'을 운운하는 것에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것 없이 대구는 '봉준호의 부모'가 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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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봉하는 영화 '기생충' 흑백판 포스터.

이번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20대 80으로 대표되는 불평등과 계급 문제 같은 전 세계적인 현상을 다루면서도 장르적인 재미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삑사리 예술)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생충'에 숟가락 얹는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의 행태가 얼마나 '기생충' 못지않은 블랙코미디 소동극 같은가. 부디 올린 숟가락 조용히 내리시고 봉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한장면 한장면 콘트라스트와 톤을 조절하는 작업을 거쳤다는 26일 개봉 '기생충' 흑백판을 보면서 왜 이번 수상이 워싱턴포스트의 표현처럼 '민주주의의 승리'인지 잘 생각해보길 진지하게 권한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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