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일상의 시선] 적에게 안부를 묻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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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4   |  발행일 2020-04-24 제22면   |  수정 2020-04-24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서로 '적'이 되어버린 존재
세계와 인간 보는 관점 변해
인간의 한계 재점검하고
실존 각성의 계기 맞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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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대구문학관장

-적

김수영 시인은 '우리는 무슨 적이든 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적'에 관한 인식을 꽤 한 듯하다. '적'이란 제목의 시가 두 편이나 있고, 그 외의 시들에서도 적에 대한 인식과 적의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아픈 몸이')라는 시구에는 우리 사회가 투쟁 속에서 조화를 찾아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적의는 각자의 셈법이나 욕망으로 인한 다툼으로 일어나지만, 그 다툼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조정되어서 조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더운 날/ 적이란 해면(海綿)같다/ 나의 양심과 독기를 빨아먹는/ 문어발 같다'('적')에서 적은 '나'의 양심을 지켜나가지 못하게 하는 존재나 사회적 구조다.

그런 적은 '내' 안에도 있고 이웃들의 살아가는 방식 속에도 있다. 다만 살아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나'의 양심과 독기를 빨아먹는 '해면'이나 '문어발' 같은 존재다.

김수영은 이런 비양심적이고 비윤리적인 인간을 미워하고 그 상황을 힐난한다. 그리하여 '나를 노리는 적'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강인하게 저항하는 자세를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윤리관을 확립해 보여준다.

-그리운 적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그 적은 결코 적의로 바라볼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김수영의 적과 다르다.

서로 경계하고 거리를 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결코 적이 될 수 없는 친한 이웃인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서로가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바라본다. 뭐든 만진 다음에는 손을 씻는다. 극단적인 예로 애인 간을 들 수 있겠다. 두 사람 중 누가 확진자가 되면 그 만남 자체는 감염의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그 관계마저 다 불어야 하기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랑마저 '곁에 둘 수 없는' 모순적인 현 실태인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곁'을 없애 버렸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사람들은 '이상한' 경계심, 짜증, 적의를 서로 느낀다. 결코 만나선 안 될 적처럼,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거리를 두고 대하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이로 인해 세계와 인간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불가피하겠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주장이 새삼 생각난다. 고통·타락·질병·죽음 등의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이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 된다는 주장도 그렇다. 코로나19의 경험은 새삼 실존에 대한 각성을 하게 만드나 보다. 자연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재점검의 욕구를 높이기도 한다.

어쨌든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서로는 소통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이 고맙다. 최근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했다. 그걸로나마 '그리운 적'들에게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다. 안녕? 안녕?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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