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사라진 마을의 안부를 묻다

  •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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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07  |  발행일 2025-07-07 제21면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가로등은 켜지는데, 그 빛 아래엔 사람이 없습니다." 한 마을 활동가의 이 말은, 사람이 떠난 집이 마을의 심장을 멎게 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직 중인 연구원의 세미나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때 북적였던 그 공간은 불이 꺼진 채 조용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빈집관리사 양성과정'을 준비 중인 협회가 교육 장소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주저 없이 유치를 결정했다. 생소하게 느껴졌던 '빈집관리사'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사실 '빈집'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빈집은 약 150만호에 달하며, 2030년에는 300만호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체 주택의 약 10%가 비게 된다는 의미다. 대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원도심과 외곽을 가리지 않고 빈집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고령화와 저출산,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도시 균형 붕괴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빈집은 단지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지역에서 빈집 주변은 인구 유출, 치안 불안, 쓰레기 투기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 상속 분쟁, 철거비 부담, 재산권 문제까지 얽히며 빈집은 쉽게 손댈 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결국 도심 속 외딴 섬처럼 고립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런 방치된 공간을 어떻게 다시 '사람이 머무는 공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국내외 사례들은 그 해답을 보여준다. 일본은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자 '아키야뱅크(Akiya Bank)' 제도를 도입했다. 각 지자체가 빈집 정보를 공개하고, 이주자에게 수리비와 임차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주택 거래를 넘어 지역 정착을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창의적인 재생 사례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경북 문경의 '화수원'은 그 대표적 사례다. 예술가와 주민의 협업을 통해, 버려진 빈집이 문화와 공동체를 잇는 따뜻한 거점으로 되살렸다. 이제 우리는 빈집을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 창업 공간, 예술 창작소, 공유주택, 다문화 커뮤니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숨쉴 수 있다.


우리나라도 2018년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통해 실태조사, 등급 분류 등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할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실에서 대구에서 시작된 '빈집관리사 양성과정'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현장의 문제를 읽어내며, 빈집의 새로운 쓰임을 기획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이 과정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선다. 이는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끄는, 실천적 전환의 기반이 되고 있다. 실제로 시민들은 이 과정을 통해 빈집을 '문제'가 아닌, 지역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 변화의 물꼬를 우리 연구원이 텄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공간은 단지 구조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기억이 스며 있고, 관계가 자라고, 공동체가 깃든다. 빈집을 되살린다는 것은 사람을 다시 머물게 하고, 함께 살아갈 희망을 회복하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빈집의 시대'를 넘어, 사람으로 채우는 '공동체의 시대'다. 그렇게, 다시 불이 켜지는 집이 하나둘 늘어날 때, 마을의 심장도 다시 힘차게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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