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간병인 시인 최영 첫 시집, '바람의 귀' 출간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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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6   |  발행일 2020-05-07 제18면   |  수정 2020-05-06
대구 간병인 시인 최영 첫 시집, 바람의 귀 출간
"스물다섯에 혼자되어/ 70년 동안 수절했지만 마지막까지 여자이고 싶어/ 안개꽃 무늬 블라우스 입고, 스카프 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죽비가 되어/ 내 가슴을 탁 친다"(최영 시 '202호실의 죽비' 중)

20년 넘게 시를 공부해온 대구의 한 시인이 60이 넘은 나이에 첫 시집을 펴냈다. 최영 시인의 시집 '바람의 귀'(문예미학사)가 올 봄 세상에 나왔다.

시집에는 '선인장' '휴지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시' '봄날은 간다' '별이 없는 밤' '성당못' '뿌리에 대하여' 등 108편의 시가 실려 있다.
대구 간병인 시인 최영 첫 시집, 바람의 귀 출간
25년 만에 첫 시집 '바람의 귀'를 펴낸 최영 시인.
시인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그냥 시를 읽어도 시인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으며, 또 그가 얼마나 많은 고단한 삶들을 지켜보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힘든 시절을 살아온 60대 시인은 '성당못'이란 시에서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인양 "가난했지만/ 사라진 것들은 그리움이 된다"고 읊조린다.

시인의 또다른 직업은 간병인이다. 늙고 병든, 혹은 기억과 정신을 놓은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는 힘든 직업. 그가 보살핀 환자들의 모습과 병실의 풍경이 시 속에 담겼다. 때론 애처롭고, 때론 따뜻하게.
"문이 활짝 열려있어도/ 살아서는 저 문으로 나가지 못하는 환자들, 하지만 삶은/ 죽음 앞에서도 치열합니다"('202호실 4' 중)

실제 시인은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3월, 간병하던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마음 고생을 겪기도 했다.
최 시인은 "돌보던 어르신이 병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는 검사에서 음성을 받았지만, 혹시 몰라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며 "어르신이 잘못될까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가격리 기간에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시집 앞부분 '시인의 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 가랑이가 째진다고 속담으로 충고하는 친구에게, 나는 어떻게 돼도 쫓아갈 거라고 했더니, 친구가 웃음을 빵 터트렸다… 25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 꿈을 쫓아가다 마음이 째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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