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 국가, 균형발전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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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8   |  발행일 2020-06-09 제25면   |  수정 2020-06-08
이시철
이시철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제공

2020년, 지구의 화두는 안전 최우선, 국가의 부상, 세계화의 역전이다. 개인과 나라의 건강을 앞세워 우리가 아는 세계화가 '장벽의 세계화'로 바뀌었다. 봉쇄와 거리 두기로 인해 일상이 사라지고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리면서 각국 정부가 역량을 넘는 역할을 강요당한다. 방역과 경제에서 전례 없는 비상조치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의문과 저항이 뒤따른다.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세계를 휩쓰는 전염병으로 인해 계층·집단·지역 간 불평등이 더 선명해졌다. 바이러스는 물리적 경계를 존중하지 않으니, 취약지에서 출발해도 중심부로 빨리 전이된다. 계층·지역 격차가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번 팬데믹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기대가 비정상으로 달라진 데 대해 이코노미스트 매거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적으로 국가의 힘이 확장되는 모습"이라 했다.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 유례없는 재정·통화 정책 등 정부의 역할과 범위에서 '금기가 하나씩 하나씩' 깨지며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의 감염병 직접 관여보다 주·지방정부의 역할이 더 강조되는 분권의 강화라는 변이도 나타나긴 하지만, 어쨌든 범공공부문의 역할 재편성은 불가피하며, 규제와 공공재 공급 양쪽에서 상반되게 나타난다.


규제 분야에서는 그간 안전의 명분 또는 관료집단의 이익 추구로 첩첩이 쌓여왔던 각종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규제파괴 인식이 폭증했다.


코로나 공공재 공급은 국가 부문의 팽창을 전제로 한다. 많은 나라가 2008년 경제 위기를 훨씬 뛰어넘는 재정·통화 확대와 함께, 현금 지원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로나는 공간 계획의 패러다임도 강력히 공격한다. 밀도를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와 집적 효과를 강조하는 '압축도시' 신화에 도전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에서 최대 승리자가 뉴욕이었는데 요즈음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집중형 발전이 아니라 고른 분산이 낫다는 주장이 갑자기 힘을 얻고 있다.


대구나 서울 역시 꽉 들어찬 도시인데,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지난 반세기,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담는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경제, 안보, 사회 등 여러 관점에서 비판받아 왔다. 코로나 이후, '소멸 위험' 지역이 오히려 살기 좋은 동네라며 인식이 바뀔까? 전염이 덜한 청정지역으로 인구와 기업이 옮겨갈까?


행정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등 약 20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9년 말 수도권 인구가 전국의 50%를 넘었으며 기업·고용·조세·서비스 등 경제적 가치의 집중은 70% 언저리로 훨씬 심하다. 현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은 혁신도시, 생활 SOC, 지역발전 투자협약, 도시재생 등으로 요약되는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공무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멀다. 지역 차원의 혁신적 노력을 전제로, 기업·대학·공공기관의 추가 분산과 결정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


쇠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 하나가 전체 쇠사슬의 강도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상식이다. 계층 양극화와 공간 불평등은 대한민국의 기저질환으로 대위기 때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이다. 경제·사회 격차의 완화, 국토의 동맥경화 치료용 균형 발전은 계속 이어질 '역병의 세계화'에도 사전 대응하는 안전판이다. 비정상 코로나의 위기를 낭비하지 말고, 비정상 아이디어를 더 만들어 내면 어떨까. 국격·국력·국익을 함께 키울 기회이다.
이시철<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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