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하루 물 '8잔' 마시기 기적은 통할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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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2   |  발행일 2020-05-22 제35면   |  수정 2020-05-22
물 사용법
물은 부족해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마셔도 몸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물의 연장으로 잘못 알고 있는 커피와 차, 그리고 술까지도 수분을 빼앗아가는 이뇨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걸 먹을 때 수분도 함께 보충해줄 것을 전문가는 조언한다.
석유는 '블랙 골드(Black Gold)'라 하고 물은 '블루 골드(Blue Gold)'로 불린다. 산소만큼이나 곁에 있으면서도 소중한 줄 모르고 사는 게 있다. 바로 '물'이다.

금세기 들어 물과 관련된 두 가지 큰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수질 오염, 또 하나는 물 부족. 1991년 봄은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인해 전국민적으로 수돗물 불신문화가 팽배하게 된다. 수돗물은 못 먹는 물이란 인식으로 곧바로 정수기와 생수 특수로 이어진다. 코웨이는 98년 4월부터 정수기 렌털 마케팅을 실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정수기는 정기적인 필터 교체의 불편함 등으로 인해 점차 야외에서도 이동하며 먹기 편한 페트병 생수한테 주도권을 빼앗긴다.

일반에 생수 판매가 허용된 것은 88년 서울올림픽 때다. 외국인들이 한국 수돗물 안전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시 허가했는데, 올림픽이 끝나자 다시 금지됐다. 그러다 94년 '생수 판매금지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전환점을 맞는다. 이듬해 정부는 '먹는물 관리법'을 제정해 생수 판매를 합법화했다.

지금 세계는 좋은 물 찾기를 넘어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세계물총회'. 2018년 대구에서 그 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현재 물 부족 국가로 분류돼 있다.

하루에 얼마만큼 마셔야 하는가
美 전문가, 음식통해 필수 수분 섭취
하루 8잔이상 효능, 과학적 증거 無
사과 한개, 물 한잔 마시는 것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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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함께 부족하게 되면 당장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는 물. 소금처럼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하루 필요한 음수량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하루 물 섭취량은 '8잔' 정도로 권장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물 섭취량 1~2ℓ, 물 7~8잔이 기준이 된 탓이다.

그런데 이 기준에 비판을 가한 의사가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의대 소아과 교수인 애런 캐럴 박사다. 그는 2009년 동료 레이첼 브리먼 박사와 함께 집필한 책 '내 남친은 발 사이즈가 크다'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건강 상식을 폭로하며 '하루 물 8잔' 조언도 비판했다. 이 책에 불편한 진실이 잘 언급돼 있다. 8잔 기준은 1945년 나온 한 발표가 왜곡된 결과다. 당시 미국 국립연구위원회의 식품 및 영양 부서는 '성인은 하루에 2.5ℓ의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하면서 '필요한 수분의 대부분은 하루 동안 먹는 음식에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뒤 문구는 사라지고 앞 문구의 소수점 뒤 숫자도 사라지면서 하루에 물 2ℓ를 마셔야 한다는 건강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캐럴 박사 등은 "물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8잔 이상 마셔야 한다는 주장의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2012년 봅 퀴글리 뉴질랜드 공중보건 전문가는 물을 하루에 8잔 마시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다. 퀴글리는 "하루에 2ℓ의 수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과일과 채소 등 음식물로부터 많은 수분을 섭취한다"며 "하루에 사과 하나를 먹으면 물 한 잔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조심해야 될 물 중독
수분 과다할때 저나트륨 장애 경고
의학계, 음료기업 상술 결과 지적도
웰니스 염원…과학과 무관한 마케팅



'물 중독'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2012년 7월 영국의학회 회보에 실린 케이프타운대학 팀의 연구 결과는 '수분이 과다할 때 저나트륨 뇌장애가 일어나 의식 장애, 발작,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수분 중독은 물을 지나치게 마실 때 나타나는 증상을 일컫는데, 체액이 묽어져 나트륨 같은 이온 농도가 떨어지면서 경련이 생기고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다. 조현병 환자 가운데 병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수분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는 김장할 때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원리와 비슷한데 이는 '물을 과도하게 많이 마시면 혈액 속의 염농도와 포도당 농도 등이 묽어지고 이에 삼투압을 맞추기 위해 몸이 짜고 단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하루 물 8잔을 의학계에서는 '음료 기업의 상술'의 결과로 꼽기도 한다.

호주의 스페로 신도스 보건학 교수는 2012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양의 물을 마시도록 권장하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이익집단이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3년 영국 BBC도 '하루에 물 8잔 마시기는 생수 회사 등 거대 자본들에 의한 마케팅의 하나'라고 보도한 바 있다.

'셀러브리티 문화와 과학이 부딪칠 때(When Celebrity Culture and Science Clash)'란 책을 쓴 캐나다 앨버타 대학의 팀 콜필드 교수는 물 산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과학과는 무관한 마케팅에 기인한 것으로 건강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중의 웰니스(Wellness) 염원과 결합한 결과'로 분석한다.

만병통치 기능성 물 주의보
생수·성수 별별 기능성 유혹에 빠져
식약처, 수소수 광고 허위·과대 지적
미네랄 성분도 음식물로 충분 섭취


페놀 사태 등으로 인해 수돗물은 정수기 물로 대체된다. 그 물도 안심이 안된다고 믿는 소비자는 생수한테 고개를 돌린다. 더 물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성수(聖水) 정도로 홍보되는 별별 기능성 물에 혹한다. 그것을 파는 이들은 신흥종교 교주처럼 자신이 개발한 물을 먹으면 영생불사할 것처럼 강조한다. 그런 욕망의 연장선상에서 약수, 광천수, 육각수, 지장수, 자화수, 이온수, 알칼리수, 산소수, 수소수 등이 태어났다.

지난해 3월28일 식약처는 시중에 유통·판매되는 '수소수' 제품의 광고 내용을 검증한 결과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수소수를 마시고 활성산소 제거 항산화 효과, 아토피나 천식 등 질병치료, 미세먼지 축적 억제효과, 노폐물 배출 등에 도움이 된다는 광고 내용을 검증한 결과 현재까지 임상적 근거나 학술적 근거가 부족해 '허위·과대광고'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알칼리수'도 돌풍을 일으켰다. 2002년 스코틀랜드 출신 대체의학자인 로버트 영은 'pH 기적(pH Miracle)'이란 저서에서 '산성 재 가설'을 통해 알칼리 식단(Alkaline Diet) 열풍이 일어났다고 당시 상황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알칼리 식단을 통해 소화불량에서부터 암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고민(Alternative Medicine Practitioner)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간주돼 고발을 당하게 된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혐의가 인정돼 2017년 3년 실형 선고를 받는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는 "음식물을 통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미네랄 성분을 일부러 물에 넣어 먹을 이유도 없다. 물은 우리 체내에서 용매의 역할 외에는 별로 하는 게 없다. 어떤 기능을 기대하고 마시는 것은 잘못이며 되레 화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 가장 좋은 물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물"이라며 신비의 물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 물 먹는 팁

식사 30분전, 식사 2시간 후 한잔 '3·2·1 건강법'
위산 희석 되지 않고 소화 돕는 '밥 따로 물 따로'

여전히 자기 몸을 믿는 수밖에 없다. 소금처럼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하루 필요한 음수량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하루 8잔, 이걸 유아한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미 세계 의학계에서 하루 8잔의 불편한 진실을 경고했건만 우리의 방송과 신문은 여전히 8잔을 고수한다. 막 마신 물은 아직 위에 들어 있을 뿐 혈관에 흡수되지 않은 상태다. 마신 물이 흡수돼 체액에 완전히 반영되는 데는 50분 정도 걸린다. 만일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 체액 균형이 회복될 때까지 갈증이 사라지지 않아 계속 물을 마신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태초먹거리학교 교장인 이계호 충남대 화학과 교수는 3·2·1 물 건강법을 설파하면서 '식사 30분 전에 물 한 잔, 그리고 식사 2시간 후 물 한 잔'을 강조한다. 음양의 원리를 물과 식사에 적용시켜 자연 건강법을 주창한 '밥 따로 물 따로'의 저자 이상문씨가 추천하는 물 섭취 방법은 이렇다. 그는 "밥을 물에 적시지 말아야 위산이 희석되지 않고 완전 소화를 돕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찬 성질의 몸을 지닌 사람은 가능한 따뜻한 물을 마시고 더운 성질의 몸을 지닌 사람은 찬물을 마셔야 몸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면서 "특히 손발이 남보다 차가운 사람은 가능한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찬물을 마시지 말라"고 조언한다.

커피와 차를 물의 대용물로 생각해도 좋을까?

커피나 차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콩팥을 자극해 흡수한 수분보다 더 많은 수분을 소변으로 배출시킨다. 이뇨작용이다. 술도 알코올 속의 이뇨성분 때문에 더 많은 수분이 소변으로 배출된다. 그러니 커피나 차, 심지어 술까지 수분 섭취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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