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세계 최초 사회주택 푸거라이 500주년을 맞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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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3   |  발행일 2021-03-03 제26면   |  수정 2021-03-03
유럽서 제일 부유했던 푸거
재단 세우고 사회주택 건립
그의 사후에도 명맥 이어져
집세도 설립 시기와 똑같아
저소득층 자립·회생 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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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1521년 8월23일 당대 유럽 제일의 부자라고 불리던 상인 야콥 푸거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시의 빈민을 위해 세계 최초로 사회주택단지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였다. 1516년과 1523년 사이 만든 52개의 주택에는 병으로 빈곤 위험에 처한 수공업자 혹은 날품팔이꾼 중에서 세간의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 입주할 수 있었다.

각 주택은 약 20평 정도로 생활조건은 수준급이었으며, 주로 젊은 가정이 아이들과 살았기 때문에 단지내에 교회와 학교도 존재했다. 입주민들의 의무는 푸거와 푸거 가족을 위해 하루 3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경제적으로 회생한 주민들은 단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푸거 이후에도 사회주택의 전통이 계속 이어져 왔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19세기에는 개인, 기업, 교회, 또는 노조를 중심으로 여러 사회주택 단지들이 만들어졌다. 1871년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도시 하층민들의 주거문제는 국가책임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했지만, 국가 차원의 사회주택 정책이 수립된 것은 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때부터였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기인 49년에는 신축주택의 71%를 차지할 정도로 사회주택의 건설이 정점에 달하였다. 그러나 전후 주거문제가 점차 완화하면서 사회주택 건설도 감소되었고 주택건설은 자유시장에 맡겨졌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급기야 사회주택건설의 비중이 전체 신축건설의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독일에서는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은 주택에 저소득자가 시장 가격에 비해 현저히 저렴한 월세를 내고 사는 것을 사회주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회주택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주택으로 전환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사회주택은 감소하는데, 신규로 사회주택은 건설되지 않으니 저소득자가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게다가 2010년대부터 주요 도시의 월세는 40% 이상 폭등하고, 도시에서 내집마련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주택난은 독일에서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아울러 2010년대 초 유로화 위기로 인한 남유럽 이주민 증가와 2015년 이후 시리아 내전에 따른 난민 수 급증 때문에 독일 대도시의 주택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연방정부는 2018년 가을, 2021년까지 150만개의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의 '주거공세'를 선언하였다. 이 공세에 따르면, 총 50억유로를 투자하여 10만개의 사회주택을 건설하기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1927년부터 2018년까지 평균 매년 약 12만5천개의 사회주택이 건설된 것에 비하면 4년 동안 10만개는 결코 많은 수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2월에 발표된 정부의 결과 보고서를 보면 약속했던 주택수조차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주거정책은 사회주택을 더 많이 건설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던 푸거의 회사는 그의 사후 곧 사라졌지만, 그가 설립한 푸거라이 단지는 142개의 주택과 입주민 150명으로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푸거라이의 집세는 설립시기와 동일한 금액인 0.88유로(연 기준)이며, 관리비는 실비인 월 85유로에 머물러 저소득층에게 여전히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듯 올해로 500주년을 맞이하는 푸거라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사회주택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한다.


이유재 독일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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