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프롤로그: 경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 이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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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9 13:15  |  수정 2021-05-3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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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시인)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태초에 얘기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인류 역사의 시원은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인간이 말을 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무성해졌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자신을 드러내고 남과 소통하는 양식이 됐다. 이야기를 찾아내고 남기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나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이루고, 그 이야기는 차츰 자라면서 또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의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그리하여 경북지역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사람 사는 일이 온통 이야기여서, 산과 강, 들과 마을들이 이야기의 안개 속에 싸여있다. 경북은 그런 이야기들의 총화로 피어있는 꽃밭과도 같다. 봄이면 가장 먼저 바람 앞에 미모의 얼굴을 드러내는 노루귀처럼 이야기들이 심심산골은 물론, 사람 사는 마을 어귀 어디에나 피어나 빤히 내다본다.
 

때로 깊은 밤 먼 데서 외따로 깜박이는 불빛처럼 이야기들은 가물거리면서 나그네를 유혹한다. 그 이야기를 찾아가면 길이 생기고, 그 길은 또 다른 이야기의 곁가지로 뻗고.... 이야기는 사람 사는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전설이 되고, 설화가 되고, 소문이 되어서 안개처럼, 꽃처럼,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란다면

흥미 있는 이야기는 흥미 있는 삶을 들려준다. 영웅의 모습을 그려내고, 선비의 사랑이 저승과도 이어지게 한다. 물과 불과 같은 장애도 쉽게 통과한다. 무소불위이며 만사형통이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해학적이며, 때로는 교훈적이다. 이야기는 말이 퍼렇게 살아있는 시대의 역사적 서사이기도 하다. 경북지역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삶만큼 널려 있다.
 

이야기는 생성하고 변화하며 무수히 가지를 쳐나간다. 옛 이야기는 오늘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다시 내일의 이야기로 넘겨진다. 이곳의 이야기는 저곳의 신화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힘이고, 욕망이며, 꿈이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과서이고, 어른들의 참고서이며, 정치인들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몽상가, 예술가들은 특히 많은 이야기를 꿈꾼다.
그런 이야기를 찾아내려는 욕망이 새롭게 불붙기 시작한다.


이야기 찾기, 또는 이야기 만들기

경북도의 각 시.군들이 최근 들어 열을 올리는 게 이야기다. 스토리텔링의 발굴과 구현, 그리고 그 구체적인 관광자원화는 이야기의 힘을 실감하기 때문에 시도되는 게다. 문화콘텐츠를 스토리텔링화하여 관광산업으로 확대하는 게 대세를 이룬다. 스토리텔링 시대라 할 만하다. 각 시.군에 깃들여 있는 전설과 이야기들이 잠재된 문화콘텐츠로 둔갑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재미로 되살아 난다. 이를 활용하여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 그것이 새로운 힘이 되어 지역사회의 발전에 일대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경북지역에서 각 지자체들이 스토리텔링화하여 관광과 연계시키려는 사례들은 많다.
청송의 주왕산을 중심으로 한 설화들은 아름다운 경관과 정치적인 사건들이 얽어짜여진다. 봉화의 청량산 관련 이야기도 웅숭깊다. 예천의 회룡포를 감도는 물길을 따라 전해내려온 얘기들도 재미있다. 고령의 우륵이야기는 가야금과 망국의 설움이 버무려진 관련되어 있다. 김천의 방초정과 최씨담의 지극한 사랑이야기, 의성의 금성산과 조문국 이야기, 성주의 조선왕조 태실이 품은 기원의 얘기, 구미 도개면과 도리사 일대에 깔린 아도화상의 불교 전래와 관련된 얘기, 경산의 갓바위의 영험과 관련된 이야기, 영주의 청다리 전설, 군위의 인각사와 삼국유사 이야기...
 

그리고, 최근 들어 관심이 커지고 있는 영천의 보현산 천문대를 중심으로 별의 이야기, 칠곡의 낙동강 철교와 다부봉 전투와 관련된 전쟁이야기, 문경의 탄광촌의 애환들, 영양의 반딧불이 축제, 청도와 상주의 감 관련 이야기들. 동해지역의 각 시.군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산재한다. 그리고, 안동의 원이엄마 이야기도 최근 갑자기 유명해졌다. 4백20년 전 미라(남편)와 그 시신에서 나온 아내의 지극한 사랑의 편지로 스토리텔링, 소설, 창작오페라로 확대되고 있다.

 

공감의 힘의 직접성
이야기의 힘은 세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설득과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힘도 이야기를 통하면 더 강력해진다. 과거 이야기가 삶의 전부를 이루다시피 하던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소통부재의 폐해는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야기가 힘이 센 것은 그만큼 공감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감하는 이야기의 현장을 보고 싶어 하고, 그 이야기의 실재를 그 곳에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성공한 스토리텔링의 경우 그 현장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벨기에에는 오줌 누는 아이의 동상이 유명하다.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을 찾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많다.


그러나 실제로 찾아가서 오줌 누는 아이 상을 보면 목이 좋은 곳에 당당하게 세워져 있는 것도 아니고, 구석진 데 위치한 데다 초라하고 빈약한 볼거리에 실망을 하기 십상이다. 인어공주 동상도 막상 바닷가에서 대하면 그 소박하고도 특별난 것 없는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이것들을 찾아오는 이들이 해마다 엄청나다. 왜 그러할까?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얘기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오줌 누는 아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얘기가 전해진다. 그곳 시장의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어 찾느라 난리가 났는데, 막상 찾았을 때 그 아이는 길모퉁이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 또는 프로방스 지역이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한 소년이 적을 향해 유유히 소변을 보았다는 얘기. 또는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한 소년이 그 사이에서 오줌을 누는 바람에 잠시 동안 전쟁이 중단됐다는 얘기 등등. 인어공주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안데르센 동화의 주인공이다. 이 얘기들은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유명해졌다. 그리하여 생각보다 작고 구석진 곳에 있거나 바닷가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찾는 세계인들이 끊이지 않는다. 관련 상품과 축제들도 푸짐하고 성대하게 치러진다.


스토리텔링은 꿈으로 이어진다
경북지역에 산재하는 이야기들도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것들이 많다. 신화와 설화, 우화, 떠도는 이야기 등등. 경북지역은 예부터 큰 고을이 많고, 산하 곳곳이 깊고 그윽하여 숱한 얘기들을 피워왔다. 이들 얘기들은 역사적이면서 사람살이의 두께와 깊이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얘기들을 발굴하여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면서 그 쓰임새를 최대한 높일 여지가 충분하다. 출판으로, 또는 애니메이션과 공연, 전시,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하여 유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얘기들이 공감의 폭을 넓힌다면 축제화하거나 문화적인 상징물로 제작하여 관광객을 불러올 수 있게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꿈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상품이든 관광지든, 심지어는 각 지자체의 행정적인 시책까지 스토리를 입히지 않으면 어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설득하고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게 새로이 대두되는 서사시대의 추세다. 스토리텔링은 이런 서사시대의 가장 강력한 감성 유혹장치(크리스티앙 살몽)라 말해지기도 한다. 이제 스토리텔링의 바람은 기업경영이나 마케팅 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각종 선거에서도, 심지어 군인들의 훈련용 게임에서도 이를 이용할 정도다.
 

우리가 스토리를 찾아 경북지역을 뒤지고 다니는 것은 각 지역이 꿈처럼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의 그 꿈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지금도 여전히 생성하며 꿈틀대는 그 힘을 밝혀내어, 우리 시대를 사는 이들의 새로운 공감과 동력을 얻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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