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동해안 일천리 이야기 세상 <4> 이하석의 ‘울릉도 성하신당 童男童女神 이야기’

  • 입력 2021-05-26 17:58  |  수정 2021-05-3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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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를 무릉도(武陵島)라 부르던 때의 이야기다)
이상한 꿈이었다.
짙은 해무(海霧) 속에서 문득 나타났다. 생김새가 용을 닮았다고 할까? 고기비늘 같은 도포를 입고 있었다. 해무가 온몸을 휘감아서 다리 아래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흰 수염이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김인우 안무사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동해의 신이니라.”
 

“……”
 

“그대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면 이 섬이 비겠군.”
 

해신은 노기를 띤 듯했다. 안무사는 간신히 대답했다.
 

“임금의 명입니다. 섬주민들을 육지로 옮기라 하셨습니다. 육지에서 부역을 피해 이 섬에 도망온 이가 더러 있습니다. 또한 왜의 노략질이 심해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래? 그래도 섬을 다 비울 수는 없지.” 해신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둘만 남겨두어라. 어린 총각과 처녀 두 명이니라. 이들이 섬을 지킬 것이다.”
 

“모두 옮기라는 명인데…….”
 

“내 말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이 섬을 나갈 수 없다.”
 

안무사가 뭐라 말하려 하는데, 짙은 해무가 앞을 막았다. 눈을 비비며 해무 속을 헤쳐 봐도 아무도 없었다. 파도 소리만 해신의 노기 띤 음성의 여운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안무사는 잠자리를 떨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다는 잔잔했다. 지금이야말로 배를 띄울 적기였다. 며칠 동안 바닷바람을 가늠해 파도가 없는 오늘을 잡아 떠나려던 참이었다. 간밤 꿈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내 꿈에 대한 생각을 떨쳤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다보니 그런 이상한 꿈을 꾸는 거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애썼다.
 

삼척의 만호인 그는 태종 17년 무릉도 안무사로 명을 받아 험한 뱃길을 열어 힘겹게 섬으로 왔다. 병선 두 척을 태하 황토구미 바닷가에 정박시켰다. 무릉도의 해변은 험한 벼랑 투성이라 배 대기가 어려워, 비교적 해안이 완만한 이곳을 잡은 것이다. 해안 가까운 곳에 유숙지를 정하고, 바로 섬 순찰에 나섰다. 나라에서 그에게 내린 명은 거주민의 쇄환(刷還)이었다. 섬에 거주하는 이들이 꽤 됐는데, 육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라의 통제 밖에 버려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더러 육지에서는 부역을 피해 이 섬으로 도망하는 이가 있었다. 또한 수시로 출몰하는 왜의 노략질이 심했다. 이런 이유로 섬사람들을 모두 뭍으로 옮기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날이 밝자 서둘러 사람들을 모았다. 짐들을 먼저 배에 실었다. 이어서 사람들이 승선하여 곧 떠나려했으나 조금 전까지 괜찮았던 바다가 갑자기 심한 너울 파도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표정에 불안함이 역력했다.
 

“이상한 일이네. 그 좋던 바다가 왜 갑자기 사나워지지? 전에 없던 일이야.”
 

이런 심한 너울 위에 배를 띄울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바다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사람들이 배에서 내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파도는 더욱 심해져만 갔다.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하루를 보냈으나 바다의 동요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갔다. 안무사는 문득 며칠 전 배 띄우려 하던 전날 밤의 꿈이 생각났다. 설마, 싶었지만, 지금의 이런 상황은 예삿일이 아니어서 자꾸만 꿈속의 해신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려 되씹혔다.
 

“해신의 위협이 정말일지도 모르겠군.”
 

그는 섬 주민들을 다시 모았다. 배에 물건들부터 실었다. 그런 다음 그 중 어린 머슴애와 계집애 둘에게 말했다.
 

“얘들아, 유숙지에 필묵을 두고 왔구나. 발 빠른 너희 둘이 빨리 가서 가져오너라.”
 

“네.”
 

둘은 얼른 대답하고 안무사의 유숙지로 내달렸다. 그들이 사라지자 안무사는 재빨리 주민들을 배에 태우고 출항을 서둘렀다. 그러자 거짓말 같이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순풍까지 불었다. 안무사는 병사들을 재촉하여 배를 포구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 다음 돛을 올리고는 순풍을 타고 빠르게 섬에서 멀어져갔다.
 

“아이고, 쟤들을 어떡하노?”라는 탄성이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바라보니, 섬에 남은 동남동녀가 해안에서 팔을 저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안무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배를 돌릴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조금 전의 그 심상찮았던 파도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라의 명을 수행하는 게 급하기도 했다. 그는 애틋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부디 둘이서 잘 살아라. 다시 들릴 때까지 버텨다오. 해신이여 저 어린 애들을 도우소서.”

2
모처럼 순풍이라 배는 빠르게 물살을 갈랐다. 그러나 배보다 그의 마음이 더욱 빨리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다.
 

벌써 수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김인우는 무릉도에 다녀온 이후 언제나 마음에서 두 아이를 지우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당장 가서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쉬운 게 아니었다. 그가 있는 삼척에서 곧장 동쪽으로 나가면 되지만, 험한 파도의 망망대해를 건너야 했다. 나라의 명이 없이는 병선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마음만 매일 바다 위를 내달려갈 뿐이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죄스러운 일이었다.
 

“해신이 두 아이를 원했으니, 잘 지켜주겠지”라고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그런 가운데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세 해가 지났다. 세월이 가도 두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 마음의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던 차에 몇 해가 지나 무릉도에 갈 일이 생겼다. 조정으로부터 무릉도 안무의 명을 다시 받은 것이다. 버려진 섬이긴 했으나 그래도 우리의 국토이니 몇 년에 한 번 씩은 들러서 살펴봐야 했다. 그는 출항하기 전부터 들뜬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파도가 잔잔한 날을 잡아 뱃길을 열어갔다. 그는 뱃전에 기대서서 먼 수평선을 향해 설레는 마음을 지그시 눌렀다. 수평선상에 작은 점이 나타났다. 무릉도였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온통 바위로 에워싼 섬에 다가서서 태하 해안으로 향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해안의 바위와 숲 속을 기웃댔다. 혹 두 남녀의 모습이 보일까 해서였다.
 

태하에 정박했다. 서둘러 배에서 내렸으나 섬은 조용하기만 했다. 병사들을 집결시킨 다음 섬의 수색을 명했다. 두 아이를 우선 찾아야 함을 강조했다. 소식은 의외로 빨리 왔다.
 

“사람이다!”라고 한 병사가 소리쳤다.
 

전에 유숙했던 자리 부근이었다. 두 사람의 시신이 있었다. 살은 다 삭아 내리고 흰 백골뿐이었다. 크기로 봐서 두 동남동녀가 틀림없었다.
 

“아아, 이럴 수가.”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시신 앞에 주저앉았다.
 

두 사람은 꼭 껴안은 채였다. 뼈만 남은 걸로 봐서 죽은 지 몇 해나 된 듯했다. 공포와 추위에다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은 것이다. 서로 꼭 껴안고 떠나간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리워하면서 죽어간 것이다. 안무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빌었다.
 

“해신의 해코지를 어찌할 수 없어 두고 가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잘못이다. 나의 잘못이다.”
 

“원한이 사무쳤을 텐데. 풀어주어야지요.” 병사들이 말했다.
 

안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혼들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시신이 있던 자리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 다음 돌아왔다.
 

그 후 이 섬에 다시 바람처럼 스며든 사람들로 인해 마을들이 생기면서 두 동남동녀를 모신 사당은 신당으로 바뀌었다. 성하신당이라 불렸다. 눈망울 초롱초롱한 동남동녀상도 밀랍으로 조성, 사당에 안치됐다. 풍작과 풍어, 바다일의 안전을 지켜주는 신으로 모셔져 매년 음력 2월 28일에는 제사를 지냈다. 지금껏 그러하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 생활인만큼 누구나 바다에 삶이 메이게 마련이다. 그 바다생활의 안전을 성하신당은 지금도 책임지고 있다. 배를 건조하여 진수(進水)할 때 이 신당에 특별히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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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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