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자포니즘 뛰어넘을 한류가 있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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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8   |  발행일 2021-06-28 제27면   |  수정 2021-06-2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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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세계미술사를 읽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감정이 요동친다. 묘한 부러움과 질투심이다. 19세기 말 프랑스는 세계 미술의 중심이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근대미술운동이 일어났다. 화가는 기존 미술을 탈피해 새로운 것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 발견한 게 일본의 우키요에(서민생활을 담은 풍속화)다. 우키요에는 화려한 색채와 단순한 구성, 입체감 없는 평면성 등이 특징이다. 이게 전통미술의 틀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줬다. 당시 화가 중 일본미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일본풍을 좋아한 모네는 기모노 입은 아내까지 화폭에 담았다. 말년에는 일본풍 정원을 만들고 이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그게 유명한 '수련' 연작이다. 고흐도 일본미술에 푹 빠졌던 화가다. 대표작 '탕기 영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등의 작품 배경에 일본풍 그림이 있다. 마네·고갱 등의 작품에서도 일본미술의 특징이 엿보인다. 미술을 넘어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샤를 보들레르의 작품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나라다. 청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와는 교류를 꺼리며 쇄국정책을 폈던 조선과는 달랐다. 서양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인 일본의 문화도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다. 특히 1867년 열린 파리만국박람회가 일본문화에 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들에게 동양은 신비의 대상이었다. 일본문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미술비평가 필립 뷔르티는 이런 일본문화의 대유행을 '자포니즘(Japonism)'으로 정의했다.

세월이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한류(韓流)가 150년 전 유럽을 사로잡았던 자포니즘을 넘보고 있다.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 바람이 시작돼 대중음악, 영화 등으로 확산 중이다. TV를 통해 유럽·남미 등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한국어로 부르는 현지인의 모습도 이젠 그리 낯설지 않다. 한류 열풍은 영화 '미나리'가 재확인시켰다. 한국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을 석권한 '기생충'에 이은 쾌거다. 방탄소년단이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신곡 '버터'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기록을 다시 넘어섰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세계 미술애호가들이 한국 단색화에 열광한다. 박서보, 정상화 등 단색화가의 작품이 세계적인 경매에서 고가에 팔린다. 한국 현대미술의 한 사조인 단색화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양 모노크롬의 아류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아트페어에서 누구나 'Dansaekhwa(단색화)'라 부르는 고유명사가 됐다. 조선백자인 '달항아리'도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빌게이츠재단에서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을 3점이나 구매한 것은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이 전시를 위해 18세기 달항아리를 구매해 문화재청이 영구 반출을 허가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흐뭇한 일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펴낸 '2020 지구촌 한류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 한류 팬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한류는 자포니즘과는 다르다. 먼저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유행한다. 자포니즘은 미지의 땅에 대한 신비감에서 시작됐으나 한류는 우수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다는 데서도 차별화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1800년대 일본이 아닌 조선의 그림이 서양에 먼저 전해졌다면 어찌 됐을까. 자포니즘에 대한 부러움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에 거는 기대가 커진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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