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이름만 갖다붙인 ○○길 명암] 단순히 '대구의 아들' 프레임으로 접근했다가 봉준호거리 무산 사례도

  • 박준상,이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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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1 16:44  |  수정 2021-07-13 13:59  |  발행일 2021-07-12 제5면
김광석길·이태원길·이중섭유원지 등 코로나19로 고전

대구는 문화의 도시답게 문화예술인들과의 인연을 갖고 있다. 대구에서 태어났거나,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대구지역 지자체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유명인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유명인과의 인연은 좋은 소재이다. 

 

대구 달성군은 유명 방송인 송해씨의 이름을 따 송해공원을 만들었다. 황해도 출신인 송해씨는 달성군의 명예군민이다. 유명인 거리도 있다. 가수 고(故) 김광석의 이름을 내건 중구의 김광석다시그리길과 칠곡 출신의 소설가 이태원의 이름을 딴 이태원길이다. 동구는 이중섭 화백 마케팅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구의 유명인 거리와 마케팅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묻지마 유명인 마케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일부 지자체의 낯 뜨거운 '대구의 아들·딸'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대구경북연구원 오동욱 박사는 "남구가 봉준호 감독이 살았던 집 등을 활용, 거리 조성을 구상했으나 시작도 못한 채 끝났다"며 "봉 감독 당사자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나 점진적 이해보다 단순히 '대구 출신'이라는 것만 앞세워 섣불리 '대구의 아들' 프레임으로 접근한 것이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이태원길1_이태원광장
대구 북구 강북지역에 조성된 문화재생거리 이태원길. 벽면은 '책가도'이다. 북구청과 북구문화재단이 기획한 예술작품이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 "대구에도 '이태원길'이 있다."
이태원길은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구에도 존재한다. 서울의 이태원길이 지명이라면, 대구의 이태원길은 사람의 이름을 땄다. 대구 칠곡 출신의 소설가 이태원씨이다. 대구 북구 동천동에 조성된 문화예술거리이다. 지난해 6월 오픈한 이태원길은 도시철도 3호선 팔거역에서 동천육교까지 720m에 이른다. 문화예술거리인 만큼 공연을 할 수 있는 2개의 광장과 4개의 버스킹 무대가 마련돼 있다. 입구는 물론 거리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들도 예술작품이다. 광장과 벽면을 포함해 이태원길 곳곳은 시민과 지역예술인이 참여한 공공미술 작품으로 채워졌다. '이태원문학관'은 작가 이태원의 생애와 작품을 조명하고 있다. 포토존은 물론 드라마화된 그의 작품 '객사'와 '개국'도 상영한다.


3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이태원길의 문제는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문화재생을 염두에 뒀지만, 칠곡3지구의 유흥가 이미지도 아직 바꾸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 이태원길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이태원길이라고 특별한 게 없다. 번화가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흥가와 접한 광장 끝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다. 또 다른 주민은 "이곳은 예전에 공원이었다. 산책하러 오는데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일부 주민은 "서울도 아니고 대구에 이태원길이 왜 생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역 출신의 소설가 이태원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안된 까닭이다. 실제 북구 이태원길에는 작가 이태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구간이 거의 없다. 북구청 관계자는 "유흥가에 거리를 조성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라며 "번화가 범죄 예방을 위한 '셉테드' 의도도 포함된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경북연구원 오동욱 박사는 "드라마로 만들어진 '객사'의 작가 이태원을 브랜드화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는 포인트가 필요한데, 소설가 이태원은 대중적 요소가 부족하다"면서 "단순히 '출신 소설가'라는 타이틀 만으로 명소화시킨다면 긍정적 정체성 형성에 저해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객사' 등 그의 작품을 웹툰이나 연극을 통해 먼저 알리고 거리를 조성했다면 효과가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광석길
대구의 대표 관광지인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코로나19로 관광객이 급감했다. 영남일보 DB
 

◆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가수인 고(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조성됐다.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했다. 2010년 방천시장 이루언 90m 구간으로 시작된 김광석길은 현재 350m에 이른다. 골목에 김광석 조형물이 있고, 노래 가사 등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기념관도 있다. 김광석길은 대구의 도심 관광지로 전국적인 인기를 모았다.
대구의 명물인 김광석길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김광석길 방문객은 75만명에 그쳤다. 2018년(159만6천여명)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재 김광석길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상태이다.


대구 중구는 김광석길 살리기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코로나19가 종식돼야 하지만,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김광석길의 정체성에 걸맞는 콘텐츠 보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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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동촌유원지. 한때 대구에 살던 이중섭이 이곳을 배경으로 그림을 남겼다.   동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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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동촌유원지를 배경으로 작품.  영남일보 DB
 

◆ 이중섭의 '동촌유원지' 만지작
대구 동구 효목동에 위치한 '동촌유원지'는 대구시민의 대표적인 휴식처다.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불리는 이중섭 화백은 1950년대 이곳에 들러 '동촌유원지' 라는 그림 한편을 남겼다.  이중섭은 대구를 배경으로 10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동촌유원지'가 포함돼 있다. 이중섭은 굵은 비가 내리는 날의 동촌유원지 풍경을 담았다. 진한 파란색 물감으로 빗줄기를 표현해 선명한 인상을 표현했고, 금호강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 또한 담았다. 이중섭의 작품 104점은 '이건희 컬렉션'에도 포함돼 있다. 이중섭 화백은 1955년 2~3월경 절친인 구상 시인의 권유를 받고 대구로 내려와 6개월 동안 대구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구는 동촌유원지 일대 관광 개발사업의 한 꼭지로, 이중섭의 스토리텔링을 고려했었다. 이미 지난해 12월엔 동촌유원지 그림으로 손수건 300개를 제작해, 구청 내방객에 홍보물품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동구청 동구대표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중섭 그림그리기 사생대회' 개최를 검토한바 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업 실시 여부는 불투명하다. 또 '동촌유원지' 외에는 이중섭과의 인연을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고민이다. 작품 '동촌유원지' 소유자와 소재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 영향도 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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