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한글가사 '춘풍감회록'

  •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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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12   |  발행일 2021-08-12 제22면   |  수정 2021-08-17 17:49
일제강점기下 엄혹한 시대
식민지 청년의 고난과 시련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기록
한글가사 '춘풍감회록' 통해
역사속 희생자들 추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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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어느새 76주년 광복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다시 광명을 찾은 날이 광복절이다. 코로나19의 맹위 속에도 광복절을 맞이하여 일제에 항거했던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들의 위훈을 기리는 여러 행사들이 국내외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복절이 가지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보다는 대체공휴일이 언제인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더 많다. 지금 우리는 민족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수많은 이들을 너무 빨리 잊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를 살아내었던 이들 중에는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우국지사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라 잃은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던 다수의 사람들도 존재했다.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 땅의 여성들, 강제 징용과 징병에 의해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희생되었던 이름 없는 이들이 그들이다.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백두현 교수에 의해 최근 발굴된 한글가사 '춘풍감회록'은 일제강점기 강제 징병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갔던 식민지 청년의 고난을 전통적 문학 양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의 작자이면서 실제 주인공인 김중욱은 경북 봉화 출신으로 조선인에 대한 강제 징병이 본격화되었던 1944년 7월, 평양의 일본군 군영으로 징집되어 얼마 후 중국으로 떠난 인물이다. 그는 만주에서부터 장강 이남 지역까지 여러 전장을 옮겨 다니면서 일본군의 일원으로 치열한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군들이 저지르는 잔인한 만행을 직접 목도한다. 이후 1945년 3월 그는 목숨을 걸고 일본군 진지에서 탈출하여 고생 끝에 중국군에 귀순하고, 중국군의 선무조(宣撫組)가 되어 다시 일본군과 싸운다. 그리고 그해 8월 광복을 맞이하여 배편으로 서해를 건너 고국으로 돌아온 후, 약 2년 뒤인 1947년 이 작품을 완성한다.

이렇듯 '춘풍감회록'은 일제강점기 말 약 1년간 강제 징병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간 김중욱이라는 청년의 시련과 고난을 사실적으로 그린 기록문학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강제 징병 관련 기록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징병 당사자가 직접 남긴 한글가사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일제강점기 식민지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근현대 기록문화유산 자료라는 점에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김중욱은 '춘풍감회록'의 말미에 "이 노래를 고 이수호, 고 김춘섭 두 영전에 고하며 동시에 우리를 보호하여 주었던 중국군 장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여기에서 언급한 '이수호'와 '김춘섭'은 강제 징병된 조선인으로서 그와 함께 일본군을 탈출한 동지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중욱이 광복 이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것에 비해, 그들은 결국 타국의 땅에서 불귀의 객이 되어 버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까닭으로 김중욱은 함께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자신이 창작한 '춘풍감회록'을 통해 기억하고자 한 것이다.

다가오는 76주년 광복절에는 수많은 순국선열과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역사의 기록에 남겨지지 못한 다수의 희생자들 또한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대구의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나, 부산에 위치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과 같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갔던 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우리가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조유영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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