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일산화탄소, 캠핑족·귀농인 특히 주의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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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6 07:54  |  수정 2021-10-26 07:55  |  발행일 2021-10-26 제21면
색깔·냄새 없어 누출돼도 알아채기 어려워…폐로 유입되면 산소공급 막아
겨울캠핑 때 잘못된 화로 사용·노후 농가주택 리모델링했다가 사고 가능성
장기노출시 인지기능 저하·보행장애 등 유발…경보기 갖추고 환기 신경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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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겨울. 대부분의 가정에서 빠지지 않고 하던 일이 있다.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시간에 맞춰 새로운 연탄을 갈아주는 작업이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연탄을 이용해 겨울 추위를 이겨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 바로 일산화탄소 중독 사건이었다. 탄소 연소가 완전히 이뤄지면 이산화탄소가 나오지만, 산소 부족 등으로 완전히 타지 않을 경우 유독성 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나오게 된다. 일산화탄소는 색깔과 냄새도 없어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기도 한다. 일산화탄소가 폐로 들어가면 산소보다 250배 더 빠르게 헤모글로빈과 결합, 산소 공급을 가로막아 저산소증을 유발하고, 혈액량 감소 쇼크가 발생해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일이 크게 줄었고,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도 줄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캠핑 인구가 늘어난 데다 은퇴 이후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또다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철 캠핑을 하다 숯불화로, 기름 난로를 이용해 추운 밤을 보내거나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해 찜질방을 만들었다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침묵의 살인자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초기에는 가벼운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다행히 환자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응급실을 찾는다면 치료 가능하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경증의 환자들은 고농도의 산소를 투여하고, 약 6시간 정도의 경과 관찰을 통해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 퇴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식 저하와 장기부전을 동반한 경우 또는 소아나 노인, 임산부, 심장질환 등의 기왕력이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일산화탄소 농도(COHb-카복시헤모글로빈)를 확인하거나, 적응증에 따라 고압산소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압산소치료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연탄난로를 사용하던 1970년대 병원에는 많았지만, 지금은 갖춘 곳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연탄가스 중독 사례가 많이 사라진 데다 비용 대비 수가가 적어 고압산소치료기를 비치해두고 있는 병원이 많이 줄었다. 대구에서도 고압산소치료를 보유해 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지만, 중증 환자이거나 대량으로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타지역으로 전원을 보낸다.

◆장시간 노출될 경우 후유증 우려

최근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대표적인 사건은 △2020년 5월 개인 황토방 소방관 2명 사망 △2019년 1월 개인 황토방 부부 사망 △2018년 12월 강릉펜션 고등학생 4명 사망 △2019년 4월 연천캠핑장 일가족 3명 사망 등이다.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젊고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소방관까지도 피할 수 없는 무서운 게 일산화탄소 중독이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사람마다 자각증상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산화탄소에 노출될 경우 400PPM에서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고 1천PPM에서 1~2시간 노출 시 두통과 메스꺼움, 정신 혼란이 일어난다. 2천PPM에서는 1~2시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환기가 잘 안되거나 밀폐된 공간에서 연소기구 사용 시 일산화탄소 농도는 증가하지만 산소 농도는 반대로 감소하게 된다. 대기 중 정상적인 산소농도는 21%인데 18% 미만이 되면 인체에 산소결핍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16%에서 두통을 느끼고 호흡과 맥박이 증가하며 매스꺼운 증상을 보이는데, 10%에서는 안면이 창백해지고 의식불명과 구토 증상을 보인다. 8%가 되면 치명적으로 실신하거나 7~8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일산화탄소에 장시간 노출된 경우 고압산소치료기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가 된다 해도 인지장애 등 장기적인 신경학적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가장 큰 후유증은 '지연성 신경학적 후유증'으로, 급성기 치료 이후 인지기능 저하, 기억상실, 기억장애, 보행장애 등의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통상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이후 30일 전후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일산화탄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이고, 다음이 조기발견이다. 일단 일산화탄소 중독이 의심될 경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이에 앞서 창문 등을 열어 실내공기를 환기시키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 직접 환자를 병원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평평한 곳에 눕히고 다리를 높게 해두는 게 도움이 된다.

대구파티마병원 최규일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많은 분이 귀농을 하고 있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고, 또 아이들과 캠핑을 다니고 있다. 사회의 여러 시스템이 이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모든 사고를 시스템만으로는 100% 막을 순 없다"면서 "개개인이 일산화탄소 중독의 무서움과 초기인지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해 적절한 경보기를 준비하고, 환기에 조금씩만 더 신경 쓴다면 불행한 사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주위에 자녀와 캠핑을 가는 친구들, 귀농한 부모님이 계실 경우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갖추도록 조언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 2019년 한국소비자원에서 시행한 일산화탄소 경보기 안전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출시된 14개의 경보기 중 일부만 기준을 통과했고, 유럽기준을 통과한 경보기는 하나밖에 없었던 만큼 성능을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도움말=최규일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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