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음식점 총량제의 경제학

  •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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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2   |  발행일 2021-11-02 제22면   |  수정 2021-11-02 07:17
이재명의 '음식점 총량제' 논란
비대한 구조의 한국 자영업계
사회서비스·일자리 부족 원인
과잉경쟁과 모순의 시장 형성
총량제 및 집합적 해결책 모색
인간중심 복지국가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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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북대 명예교수

요즘은 선거의 계절이라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다. 매일 이 문제 저 문제로 시끄럽고 때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쟁점이 된 것이 이재명 후보가 이야기한 음식점 총량제다. 우리나라의 음식점 숫자는 외국에 비해 훨씬 많아서 인구 대비로 따져 일본의 2배, 미국의 7배라고 한다. 이재명 후보는 백종원씨의 국회 발언을 인용했는데, 백씨는 총량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음식점 허가받기가 한국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말했다.

사실 이런 특징은 음식점뿐만 아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발급을 보자. 미국에서는 개인의 신용을 철저히 조사한 뒤에 과거에 불법·반칙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카드를 발급해준다. 기준이 꽤나 엄격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에 비해 한국은 카드가 금방 나온다. 심지어 1997년 말 IMF 사태 때는 경기 살린다는 명분으로 길거리에서 대학생들에게 신용카드를 즉석 발급해주는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수년 뒤 카드채 부실 문제가 터져 참여정부는 크게 애를 먹었다.

우리나라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자영업이 전반적으로 과잉, 비대한 구조를 갖고 있다. 몇 년 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갔을 때 생수를 한 병 사려고 꽤 먼 길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가까운 곳에 반드시 가게가 있을 텐데. 또 그때 코펜하겐에서 택시를 타니 젊은 기사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왜 그렇게 기분이 좋으냐고 물어보니 기사는 신혼인데 덴마크 경제가 좋아서 택시 손님이 많고, 그래서 머지않아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덴마크 경제성장률을 물어보니 겨우 3%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3%라면 아무도 고성장이라 하지 않을 것이고 택시 기사가 수입이 좋아서 내집 마련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덴마크 택시 기사는 행복한데, 한국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들의 민생고가 피부로 느껴진다. 덴마크와 한국의 차이는 택시 숫자가 한국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오래전 통계를 본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택시 숫자는 인구 대비 다른 나라에 비해 대체로 2배 정도다. 그러니 손님이 적을 수밖에 없고 택시 기사는 콧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전국에 택시가 많지만 그중 특히 많은 도시가 내가 사는 대구다. 대구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하는 이야기인즉 과거 아무개 시장이 개인택시 허가를 너무 많이 내주는 바람에 택시가 과다하고, 그래서 대구에서 택시 영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제학에는 부분의 진리가 반드시 전체의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는 '구성의 오류'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는데, 개인택시 허가 문제가 바로 그렇다. 개인택시 면허를 쉽게 내주면 그것을 획득한 개인은 기쁘지만 택시업계 전체는 오히려 불행하다. 한번 삐끗한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대구역 앞에는 오늘도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의 긴 줄이 서 있다.

한국의 자영업이 선진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과잉인 이유는 오랜 기간 한국의 보수 정권들이 복지국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토건국가 중심의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육, 보육, 의료, 요양 등 소위 사회서비스에 큰 투자를 하고 거기에 많은 인력이 종사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복지국가를 기피하는 걸 지나서 일종의 불온한 좌익 사상으로 보아 탄압하는 극단적 경향이 박정희 독재 시절에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복지국가 연구자를 당국이 삐딱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심지어 잡아가는 일도 있었다. 복지국가를 멀리하고 오로지 토건국가 중심의 성장제일주의에 반세기 동안 매몰되다 보니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분야는 과거에 비하면 물론 크게 성장했지만 아직도 미발달이고, 종사 인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보육·간병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힘든 노동과 박봉에 시달린다. 보육교사들의 노동의 가치, 헌신적 노력을 생각하면 그들의 월급이 초중등 교사들보다 낮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본다. 야간 근무를 밥 먹듯 하는 간호사들이 받는 보수도 의사에 비해 너무 낮다. 이런 데에서 사회적 균형이 맞아야 선진국이 된다.

사회서비스 분야가 빈약하니 그곳에 일자리가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몰려간 곳이 음식점, 카페, 택시, 미장원 등 자영업이다. 따라서 자영업은 몽땅 공급과잉이고 자영업자들은 고생을 피할 수 없다. 이재명 후보는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음식점 주인들의 고통을 줄여보고자 허가 총량제라는 고육책을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일부 논객들은 경제원리에 어긋나는 양 공격을 퍼붓는데 별로 이치가 있는 공격은 아니다. 총량제는 최선은 아니지만 한국 자영업의 역사적·구조적 모순, 제살깎아먹기식 과잉경쟁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부작용이 적게 구체적 설계를 잘해야 하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경제의 장기비전을 종래의 성장지상주의, 토건국가식 개발 대신 인간 중심의 복지국가 지향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이런 노력은 도무지 하지 않고 여전히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기계적으로 '퍼주기'라고 반대하는 나쁜 버릇을 갖고 있는데, 한국 자영업자들이 고생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책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본인 책임이 아니다. 역대 정부당국의 보수적 경제철학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크고,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므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총량제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자영업 전반에서 고려할만한 응급처방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그냥 각자도생하라고 방치하면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이리저리 끝없이 내몰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방임은 곧 무책임이므로 총량제든 무엇이든 집합적 해결책을 모색함이 옳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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