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26) 김홍곤] 영문학자이자 극작가로 대구 연극발전 주춧돌 놓다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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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0   |  발행일 2022-01-10 제20면   |  수정 2022-01-10 08:06
지역 원로 연극인 대부분 "그의 제자" 자청할 만큼 한국적으로 푼 셰익스피어 강의·연극 조언 지대한 영향
각 대학 공연엔 연출가로 참여해 소통…1958년 공모 당선 '우물' 국립극장 초연 이어 지금도 무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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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들과 함께한 김홍곤(아랫줄 가운데) 교수. 김홍곤 교수는 지역 대학에서 열리는 공연에 연출가로 참여해 학생들과 교분을 나눴다. <최현묵 저 대구연극사 발췌>


김홍곤(1926~1976)은 1955년부터 1976년까지 경북대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대구 연극 발전에 기초를 제공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셰익스피어 등 영미 문학에 관심이 커 직접 희곡을 쓰고 연극 연출을 했으며, 대학 강단에 서는 동안 박상근(대구경북연극협회장 역임) 등 지역 연극 발전에 힘쓴 연극인들에게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김홍곤은 1960년대 대구만의 연극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 젊은 연극인들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분석과 연극에 대한 조언을 통해 긍정적 영향을 미친 인물로 지역 연극사에서 기억되고 있다. 지역 연극계 원로 김삼일 전 대경대 연극영화과 석좌교수는 "김홍곤 교수의 연극 정신은 대구가 연극과 오페라의 도시가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상근 외에도 지역 원로 연극인 대부분이 김 교수의 제자나 다름없으며 저 역시 경북대 출신은 아니지만 그의 제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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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포항시립중앙아트홀에서 김홍곤 작 김삼일 연출의 연극 '우물'이 공연되고 있다. <김삼일 제공>


◆희곡 '우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다

1958년 김홍곤의 희곡 작품인 '우물'이 서울신문과 국립극장의 공모에 당선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우물'은 1958년 3월27일부터 일주일 동안 국립극장 제10회 공연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우물'은 친일파가 득세하고 자유당 독재가 한창이던 1950년대의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당시의 뒤틀린 정치 풍토와 사회상을 무대 위에서 압축한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 최재수가 예부터 물이 부족한 청석골이라는 마을의 민선 동장에 당선되기 위해 집 뒤편에 우물을 파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을종합시장 조합장의 건달 아들에게 딸을 주기로 하고 우물 공사비를 빌려 우물을 파는 과정에 일어나는 갈등이 주요 줄거리다. 연인이 있는 주인공의 딸이 우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택한다는 안타까운 결말이 눈길을 끈다. 딸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고 딸을 둘러싼 인물들의 비도덕적 행동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상징한다.

◆학생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교수 연출가

지역 연극계 원로들에 따르면 김홍곤의 경북대 영문학 교수 재임 전까지 행적은 그가 부산 출신이라는 것 외에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김홍곤은 6·25전쟁 탓에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 국립극장 전속 극단인 '극단 신협'의 주축인 이해랑 선생 등 여러 연극인과 교분을 나누고 연극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며 예술적 깊이를 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김홍곤의 희곡 '우물'은 국립극장 공연 직후인 1958년 10월24일 영남대 극회 출신 연출가 최현민 선생에 의해 대구 키네마 극장에서 막을 올려 호평받았다.

이후 김홍곤은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각 대학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연출가로 참여해 지역 대학생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1960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서 코톤 작 '죽은 아버지'를, 같은 해 경북대 사범대학 극회에서 존 골드워스 작 '작은 사랑'을, 1956년 영남대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작 '줄리어스 시저' 공연을 연출했다. 이 밖에도 1968년 경북대 극장에서 유진 오닐 작 '고래' 공연을 연출했으며, 작고한 해인 1976년에도 헨리 지크 작 '5일간'을 계명대 극장 무대에 올리는 등 삶의 마지막까지 희곡작가와 연출가로 살았다.

◆문학과 연극에 대한 깊은 열정

김홍곤 교수와 학생들의 일화에서 연극을 사랑했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매년 경북대에서는 복현예술제의 행사 중 하나로 연극이 공연됐다. 1968년 5월에도 복현예술제가 열렸는데 문리대 학생들이 연극반을 조직한 상태였다. 연극반의 최종현·남경석 학생은 당시 KBS 성우로 일하던 김삼일에게 김경옥 작 '산여인'이라는 작품의 연출을 의뢰했고, 김삼일은 한 달여 동안 작품을 준비해 경북대 학생회관 무대에 올렸다. '산여인'은 인적이 드문 깊숙한 산골에 노인과 딸이 함께 살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산속을 표현하기 위해 아카시아 나무를 꺾어 무대를 꾸몄고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때마침 '산여인'을 보게 된 김홍곤 교수는 공연이 끝난 다음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홍곤은 김삼일과 학생들을 불러놓고서는 "이 작품에서는 굳이 아카시아 나무를 꺾어놓을 필요는 없다. 복잡한 무대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공연이 가능한 작품이다. 다음 공연에서는 보다 창의성에 신경 써 작품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김삼일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 일을 계기로 저도 김홍곤 교수의 제자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젊은 연극인들 상당수가 김홍곤의 강의를 듣지 않았음에도 직간접적으로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김홍곤의 셰익스피어 강의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쉽게 설명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이는 셰익스피어 등 영미문학에 대한 김홍곤의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홍곤은 '햄릿'을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와 비교하는 등 한국적으로 작품을 해설해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김홍곤의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김홍곤은 교수 재임 시절 때 연극 평론가 여석기 선생과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활동하던 셰익스피어연구회에 참여했는데,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에 나서곤 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

김홍곤은 학생들에게는 다정다감했지만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술을 좋아하고 형식적인 것을 싫어했다. 제자의 석사 논문 심사 때도 형식을 배제하고 학생들의 말을 신뢰하는 등 늘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안타깝게도 김홍곤의 강직한 성품은 그의 예술 인생이 좌절을 맞이하는 원인이 된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마련된 유신체제가 김홍곤의 발목을 잡았다. 유신정권은 정부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교수들의 재임용을 막았는데 김홍곤이 독재정권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사석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한 것이 원인이었다. 감히 유신체제에 대해 비판할 수 없었던 시절 김홍곤의 강직한 성품이 그를 강단에서 내몬 것이다.

김홍곤의 희곡 '우물'은 2012년 포항시립연극단에 의해 다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우물'을 연출한 지역 연극계 원로 김삼일은 "김홍곤 교수는 대구경북 연극의 큰 기둥이며 정신적 지주였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 해석에 능통해 그것을 직접 무대에 올려 연출하는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연극인 중 한 분"이라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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