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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택 논설위원 |
대선 후에 친구들끼리 모여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될지를 두고 내기를 했다. 한 친구가 "석 달 가겠나"라고 했다. TK 본산에서 불경스러운 평가였다. 주위에서 "에이 설마"라며 핀잔을 줬다. 불행하게도 친구의 예언이 적중했다.
문재인 정권에선 민변 출신들이 주류였지만 이번엔 검사 출신들이 핵심 요직을 꿰찼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성적표는 이들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20% 후반대 지지율. 어느 여론조사에선 향후 56%가 잘못할 거라고 봤다. 최근 기자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기자협회 여론조사에선 무려 85.4%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법률가들은 상대방을 제압하려 든다. 지는 것은 곧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으로 간주한다. 법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성향이 있다. 직업병이다. 비법률가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오냐 네가 잘났다"거나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한마디 할 뿐이다. 법률가들은 대개 협량하다. 넓게 보지 못한다. 상대를 품을 줄 모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딱 여기에 속한다. 한번은 실수라지만 상습적이다. 그런데도 비상대책위에 들어갔다. 대통령 외가 강릉의 죽마고우란다. 친구가 성공하면 바로 2선으로 물러나야 했다. 한술 더 뜬다. 윤핵관과 윤핵관 호소인들이 호가호위하다가 당이 내홍에 빠졌다.
이준석 전 당 대표를 몰아내고 차기 총선 공천권을 쥐려고 했다. 그를 주먹만 한 고슴도치 정도로 여겼다. 예사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젠 체중 30㎏에 온몸을 가시로 무장한 '호저'가 됐다. 가시에 찔리면 사자도 죽는다. 윤핵관 입장에선 그를 '산미치광이'로 키운 셈이다. 온 동네가 나서도 힘에 부친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은 '민들레' 모임에 가입했다. 당이 난장판인데도 공천을 위한 눈도장 찍으려고 안달이다. '민심을 들어 볼래'라는 취지라면 당내 정풍·쇄신 모임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게 옳지 않은가.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해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 동류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래선지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엔 손이 오그라드는 모양이다. 잘못 있으면 바로 내쳐야 한다. 사사로운 정에 못 이겨서 망설이면 파국이다. 당·정·대통령실의 자살골을 열거하는 것은 지면 낭비다. 민생 대신 제 식구만 챙긴다는 비난에 조금 손봤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
작금의 국내외 상황이 임진왜란 당시와 비슷하다고 했다. 누가 뭐래도 선조 임금의 책임이 가장 크다. 덜 떨어지게 굴었고 판단을 잘못한 탓에 왜놈들에게 침탈당했다. 그런데도 몽진(蒙塵) 도중 반찬 타령을 했다고 야사에 전한다. 백성들은 도륙당하고 있는 판에. 왜군은 칼로 자른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염장처리해서 전리품으로 가져가질 않았나. 정치 지도자와 관군은 죄다 내뺐다. 노비와 기생은 물론, 살생을 금하는 승려가 목숨 바쳐 나라를 구했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을 이기려고 해선 안 된다. 져주기도 하란 소리다. 어찌 보면 국민은 진상 고객이다. 그런데 어쩌랴. 까탈스러운 국민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이게 지도자의 숙명이다. 국민은 단단히 화가 났다. 호저가 될 태세다. 이제라도 야당과 정적 모두 품어라. 대통령에겐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 안에 있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살펴야 할 책무가 있다. 협치하란 소리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장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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