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국민 간식 "만두 예찬" (1)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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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1   |  발행일 2022-01-21 제33면   |  수정 2022-01-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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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의 발원지는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만두 비슷한 게 많다. 손바닥만 한 큰 고기만두는 '교자(餃子)', 현재와 같이 조그만 것은 '천진교자'라고 한다

만두(饅頭). 떡, 수제비, 국수, 때론 구절판 밀쌈 전병 같기도 하다. 중국에서 발흥한 만두가 일본과 한국에 상륙한 연대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이번 회는 한·중·일 만두 연대기의 속내를 알아본다.

만두의 유래 하나. 제갈공명이 남만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濾水)에 이르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 머리 49두를 수신(水神)에게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러나 공명은 사람 대신 양의 고기로 소를 넣고 밀가루 반죽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진설한다. 여기서 남만인의 머리란 의미의 '만두(蠻頭)'란 명칭이 생기고 훗날 지금의 만두로 바뀌게 된다.

중국에는 만두 비슷한 게 많다. 손바닥만 한 큰 고기만두는 '교자(餃子)', 현재와 같이 조그만 것은 '천진교자'라고 한다. 철판에 올려놓고 뚜껑을 덮어 바닥은 구워지고 위는 훈제(燻製)가 된 군만두는 '전교자(煎餃子)', 기름에 튀긴 것은 군만두가 아니라 '튀김만두'다. 그리고 물만두는 '수교자(水餃子)', 찐만두는 '증교자(蒸餃子)'다.

中, 소가 있는 것은 '교자' 없는 것은 '만두'

한편 교자를 우리나라에서는 '만두(饅頭)'라 하는데, 중국에서는 소가 있는 것은 교자, 만두 속이 없는 것은 만두로 구분해서 부른다. 역사상 최초의 만두 이름은 '교이(嬌耳)'다. 중국 동한 말기 의성(醫聖) 장중경(張仲景)이 300년간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양고기, 고추와 일부 한기를 몰아내는 약재를 솥에 넣고 잘 끓인 후에는 다시 이것들을 건져내서 잘게 자른 다음에 면으로 만든 피로 귀모양으로 싸며 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을 솥에 넣고 익힌 다음에 병자들에게 나눠줘 먹게 했다. 한 사람당 2개의 교이와 한 그릇의 탕을 나눠 주었는데 사람들은 이 '거한교이탕(去寒嬌耳湯)'을 먹고 나면 온몸에서 열이 나고, 혈액이 잘 순환되었으며 두 귀가 따뜻하게 바뀌었다. 동지 때부터 설날까지 먹었다. 이를 통해 장중경이 약을 나눠주고 병자를 치료해준 날을 기념한 것이다.

탕으로 먹다가 당나라 때 건져내서 먹어

교자가 세상에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미 1800년 전의 일이다. 그때 교자는 익힌 후에 건져내서 단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탕과 함께 그릇에 담아서 같이 먹었다. 당나라 때가 되어서야 현재의 교자와 거의 같아져 건져내서 접시에 담아 단독으로 먹었다. 당나라 때의 교자는 '뇌환(牢丸)', 수교(水餃·물만두)는 '탕중뇌환(湯中牢丸)', 증교(蒸餃·찐만두)는 '농상뇌환(籠上牢丸)'이라 했다.

그런데 송나라 이후 부르는 명칭이 어지러워진다. '분각(粉角)' '편식(扁食)' '수각(水角)' '교아(餃兒)' '수점심(水點心)' 등으로 불린다. 이러한 음식을 통칭해 교자라고 부르게 된 것은 청나라 말기쯤이다.

고려사 충혜왕 조에 '내주(內廚)에 들어가서 만두를 훔쳐먹는 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고려 때 이미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중국어 발음과 뜻을 한글로 옮긴 어휘 사전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만두는 우리 나라 풍속의 상화병(霜花餠)이다'고 하였다. 한자 뜻을 풀어보면 '상 위에 놓인 꽃, 하얀 서리꽃 같은 떡'.

음식디미방, 메밀 만두피에 꿩고기 넣고 빚어


고려 때 유행한 '쌍화점(雙花店)'이라는 노래가 있다. 충렬왕 때 가요로 알려졌는데 노래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쌍화점에 쌍화를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 쌍화점의 쌍화가 만두나 떡을 뜻하고, 회회아비는 서역 출신의 무슬림을 말한다.

훈몽자회(訓蒙字會)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서는 만두를 '상화'라 했다. 가장 오래된 한글 음식 서적인 '음식디미방'(1670)에서는 메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고 삶은 무와 다진 꿩고기를 볶아서 소를 넣고 빚었다고 한다. 1800년대의 '주찬(酒饌)'이란 책에는 소 내장인 양과 처녑 그리고 숭어 살을 얇게 저며 소를 넣은 만두가 나온다.

한국에서 만두란 말이 처음 기록된 것은 1643년 '영접도감(迎接都監)'.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김자고가 만두를 보내 오자 시(詩)로 사례한다.

조선 후기 학자 윤기(1741~1826)의 '무명자집(無名子集)' 제3책 주(註)에 '변씨만두(卞氏饅頭)'가 등장한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만두소를 넣고 네 귀로 싸서 닭 국물에 삶은 만두를 말한다. 이 만두는 '편수'와 비슷하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소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국민 간식 "만두 예찬"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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