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휴스턴 영화제 금상작 '시계' 조현준 감독 "끼 못 감추고 결국 영화인의 길…대구 국제다큐영화제도 구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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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5 07:43  |  수정 2022-05-25 07:54  |  발행일 2022-05-25 제14면

조현준
조현준 계명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영화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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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덕분에 다시 주목을 받는 영화가 있다. 덩달아 감독도 재조명됐다. 조현준 (40·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감독 영화 '시계'. 주연 배우가 류경수이다. 류경수는 2020년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최승권 역으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유지 사제로도 등장했다. 상영 예정인 연상호 감독의 SF영화 '정이'에서 강수연,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다. '정이'는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다. '시계'는 류경수가 무명일 때 찍은 독립영화이다. 2018년 제71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았고, 올해 55회를 맞은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오리지널 영화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휴스턴 국제영화제는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뉴욕 영화제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영화제다. 조 교수는 휴스턴 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지난해 '마더 아야'로 장편영화 부문 백금상을 받았다. 조 교수는 2020년 영화 '조지아'를 제작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단편영화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8일 계명대 성서캠퍼스를 찾아 조 교수를 만났다. 서울 출신으로 캐나다 국적인 조 교수의 계명대 정착 과정이 독특하다.

▶영화 '시계'는 어떤 영화인가.

"일단 청소년 관람불가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이병으로 나오는 류경수가 괴롭힘을 당한다. (류경수가) 휴가 나올 때 군대 선임으로부터 몰래카메라가 달린 시계와 함께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찍어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류경수는 실패한다. 성매매 여성에게 걸려 몰래카메라가 달린 시계도 부서진다. 결국 빈손으로 복귀하면서 선임으로부터 더욱 괴롭힘을 당한다. 마지막 장면에 류경수가 초소에 잠들어 있는 선임을 향해 총을 장전한다. 총을 쏠 것인지, 안 쏠 것인지는 관객의 해석으로 남겨놨다.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얘기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영화를 찍고 나서 '미투 운동'이 벌어졌다. 영화 '시계'는 군대의 미투 운동으로 보면 된다."

▶영화 '시계'의 스토리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좀 답답했다. 캐나다나 미국과 달리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았다. 인터뷰도 되게 힘들다. 별것 아닌 일에도 자기방어적인 성향을 보였다. '영어울렁증'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남을 너무 의식해 자존감이 낮아진 데서 나온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생각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이다. 대학교수의 갑질, 몰카 범죄, 군대 총기난사 사건 뉴스도 영향을 미쳤다."

시계에 몰래카메라를 넣은 것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조 교수는 2013년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와 경성군을 1주일간 여행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캐나다 국적이라 북한 여행이 가능했다. 조 교수는 몰래카메라가 숨겨진 시계에 주민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조 교수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삐라'를 만들었다. '삐라'는 2015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조 교수는 자신의 북한 여행기인 '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를 영남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한국서 학생 가르치고 인터뷰 해보면
별 것 아닌 일에도 자기방어 성향 보여
남을 너무 의식해 자존감이 낮아진 것
그때 든 생각이 '시계' 만들게 된 배경

차기작으로 범죄다큐스릴러 작업 중
올초 경험한 웹드라마 제작 사기 바탕
경찰의 실망스러운 대응 등 모두 담아
'그것이 알고 싶다'도 관심 가질 내용

영진위 지원 외 제작비는 사비로 충당
다큐영화 '삐라'도 OTT에 올렸는데
北이 미사일 쏘면 수익이 좀 생기기도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학창시절을 캐나다 빅토리아 근처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서 보냈다. 중고등 시절 '끼'가 넘쳤다. 무대 체질이었다. 고등학교 방학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열린 댄스경연대회에서 3등을 했다. 또 한국의 한 기획사 측의 요청으로 오디션에도 참여하며 밤새도록 외운 랩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연습생을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는데, 불같이 화를 내시는 바람에 캐나다로 돌아갔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토론토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에서도 '끼'를 감추지 못했고, 주위에서 '너는 경영학 공부할 애가 아니다. 개그 쪽으로 진출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결국 토론토대학 2학년 때 중퇴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으로 들어가게 됐다.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연기를) 잘하고 잘 생기고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아 쉽지 않았다. '나 자신을 캐스팅하자'는 생각으로 연출 공부에 포커스를 맞췄다."

▶미국 ABC방송국에서 PD로도 활동했는데.

"중앙대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예술대학원에 진학했다. 영화 연출을 선택했는데, 방송으로 전공을 바꿨다. 영화와 달리 방송은 결과물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하면 됐다. 그게 좋았다. 영화의 경우 시나리오 작업도 해야 하고, 스태프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대학원에 다닐 때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에서 주관한 전국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3등을 했다. 당시 미국 LA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WBC(World Baseball Classic) 결승전을 취재했다. 상금으로 500달러를 받았다. 대학원에 재학 중 무작정 ABC방송국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했다. 공모전에서 3등상을 받은 것을 기억한 중국계 여성 PD에게 발탁돼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뉴스부에 있다가 교양부로 옮겼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입양 등 미국의 가족 문제를 다루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연출을 하게 됐다."

▶어떻게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됐나.

"2009년 미국의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직장을 잃었다. 방송국을 알아보다 쿠바로 여행을 가게 됐고, 다큐멘터리 '얼라이브 인 하바나(Alive In Havana)'를 찍었다. 보스턴 국제영화제 등 미국 4곳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얼라이브 인 하바나'가 관심을 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좀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독립영화를 하는데 굳이 미국에 있을 필요를 못 느꼈다. 이후 태국에서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트랜시엄(Transiam)'을 찍고 동국대에서 영화영상제작 박사 과정을 밟게 됐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계명대에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교수직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시간강사를 하면서 가르치는데 재미를 느꼈다. 강사 자리를 얻기 위해 이력서 몇 장 들고 영화 관련 학회를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대안의 블루'를 연출한 이현승 중앙대 교수의 요청으로 중앙대에서 다큐멘터리 강의도 했다. 계명대 교수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했고, 대구에서 생활하게 됐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이 있나.

"범죄다큐스릴러이다. 올초 유명 걸그룹 멤버 주연의 웹드라마에 PD로 참여하게 됐는데, 사기를 당했다. 금전 피해를 입으면서 웹드라마 제작 과정에 대해 녹취를 하기 시작했다.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경찰의 움직임도 다 기록했는데, 정말 실망스러웠다. 경찰을 믿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관심을 가질 법한 내용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독립영화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일단 영화진흥위원회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모자라는 부분은 사비로 충당한다. '시계' '삐라' 등의 영화를 OTT(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서비스)에 올리는데 수익은 크지 않다. '삐라'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수익이 좀 생기기도 한다. 물론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대구에서 활동 계획은.

"총장님께서 미션을 주셨다. 내후년이 계명대 설립 125주년인데, 영화제를 하나 만들면 어떻겠나라는 제안을 하셨다. 대구시와 정부의 지원까지 받는 영화제가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대구 국제다큐영화제 같은 특색있는 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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