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죽이는 이야기

  • 현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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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9   |  발행일 2022-06-09 제22면   |  수정 2022-06-09 06:52
수많은 드라마·예술의 원천
문장예술성 강조하는 韓문학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독자들 단순하고 쉬운 문장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에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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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2022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콘텐트LA' 행사에서 스튜디오드래곤과 유니버설인터내셔널 스튜디오가 김언수의 '설계자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공동 제작하기로 발표했다. 2010년 발표된 소설로 암살자들과 그 설계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25개국에 번역판권이 수출되었고 2019년에는 NYT의 베스트 윈터 스릴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추천사만 봐도 인상적이다. '킬 빌'이 무라카미를 만났다고 하는가 하면 쿠엔틴 타란티노와 카뮈가 현대의 서울에서 만났다고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킬 빌보다는 존 윅에 가깝고, 카뮈나 하루키보다는 헤밍웨이가 떠오른다.

김언수 작가는 올해 개봉한 누아르 영화 '뜨거운 피'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소설가 천명관의 입봉작으로 관객수 40만명을 못 채우고 내려갔고 평가도 아쉬웠지만 김언수 작가의 이야기가 영화적 문법과 궁합이 잘 맞는 작품이라는 것은 증명했다.

김언수 작가는 2002년 진주신문 가을문예공모에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로 등단하였고 장편 '캐비닛'으로 2006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2016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문학은 문장을 워낙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도 한때 그것이 문학의 전부인 줄 알았다고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문학은 내면에만 빠져있다. 충무로적 사건을 소설에 집어넣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문장도 중요하고, 때때로 고상함과 예술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문학과 그 지망생들이 그것에 굉장히 몰입되어 있다는 것도 동의가 된다. 신춘문예 등단 작품집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때때로 현미경을 집어넣고 집요하게 관찰한 기록들을 어려운 단어를 움직여 치열하게 끄집어내려고 한다. 현대 시는 어떤가. 그들은 대개 페르시아 무덤 입구의 비문처럼 누군가에게 '해독'되어 자신들의 뜻이 널리 알려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나는 그들이 조금 더 능동적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래퍼들은 비트 위에 시를 쓴다고 하는데, 시인들도 백지 위에 랩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기원전 2000년의 길가메시 서사시 이후,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OTT 서비스 가입자의 수 만큼 증가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그 이야기들의 원천을 인출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이미예 작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종에 종사했다. 그녀는 텀블벅을 통해 2020년 7월 한 권의 책을 출판했고 그것이 그녀의 생애 최초의 소설이었다. 그리고 1년4개월 만에 1, 2권 통합 100만부를 달성했다. 그 소설이 바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다. 서사는 단순하고 문장도 가볍지만, 독자들은 그 이야기에 열광했다. 100만부가 팔린 작품이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더 뛰어난 작가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된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9년 GQ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되도록 쉬운 단어로, 가벼운 문장 안에 심오한 스토리를 담아 내고 싶어요. 어려운 단어를 조잡하게 조합해 어려운 문장을 만들었는데 스토리는 텅 비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비극이에요." 반면, 보르헤스의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문장도 내용도 난해하고 어렵지만 오히려 8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맥스트의 오픈예정인 개방형 메타버스 서비스는 '틀뢴'으로 명명되어 보르헤스 세계를 현실로 가져왔다. 그러니까 그 무엇도 정답은 아니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는 조금 더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

현영희 (경북대 강의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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