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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 정치칼럼 서울본부장 |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적폐청산"을 입에 달고 살았다. 촛불 민심에 올라타 정권을 잡은 김에 한국사회의 주류를 확 바꿔 보자는 의도를 엿보이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정권 출범 두 달 후인 2017년 7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기안한 공문이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법무부를 제외한 19개 정부 부처와 기관에 발송됐다. 내용은 '적폐청산을 위한 부처별 TF 구성 현황을 보고하고 향후 운영계획을 마련하라'라는 특별지시였다. 집권 민주당도 당내 기구로 '적폐청산위원회'(위원장 박범계)를 뒀다. 서슬이 시퍼런 정권 초 청와대에서 특별지시가 떨어지고 집권당이 전면에 나섰으니 각 부처로선 없는 적폐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부처마다 문재인 정권에 우호적인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사람들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여 적폐청산TF를 설치했다. TF들은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보수정부 시절에 시행한 업무를 고강도로 조사해 징계하고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각 부처에서 넘어온 의뢰 건과 별개로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어온 사건을 계속 파헤치며 이른바 '적폐몰이 수사'를 했다. 그때 보수야당은 적폐청산을 가장한 정치보복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으나 뾰족한 저항 수단은 없었다.
당시 죽은 권력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수사했던 '윤석열 검찰'은 일정 시간이 흐르자 살아 있던 '문재인 권력'을 파헤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일부터 수사가 이뤄지고 좀 지나고 나면 현 정부 일도 수사가 이뤄지고 하는 것이지, 민주당 정부 땐 안 했나?"라고 쏘아붙였던 바로 그 패턴이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의 패턴을 감내하기는커녕 아예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려다가 실패하고 정권까지 넘겨줬다. 지금 윤석열 정부 검찰은 권력수사의 패턴대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있었던 '과거 일'부터 수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과거 일을 수사하지 미래 일을 수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말속엔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현 정부 일도 수사할 수 있을 거란 의미도 포함돼 있다. 정리하면 "정상적 사법 시스템을 자꾸 정치 논쟁화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윤 대통령 말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문재인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은 그런 패턴을 인정하지 않고 5년 전 보수진영에서 했던 "정치보복" 구호를 똑같이 꺼내 들었다. 당내에 위원회를 설치하고 모든 행정부에도 전파했던 '적폐청산' 구호였는데, 자기들이 대상이 되자 당내에 '정치보복' 대응 기구를 만들겠다고 한다.
5년 전 적폐청산의 선봉에 섰던 임종석과 백원우는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불법개입 사건 연루 의혹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백원우는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에도 개입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적폐청산을 한다며 칼질을 하는 사이에 안에선 새로운 적폐를 쌓고 있었던 셈이다. 이 외에도 문재인 정권은 각 부처 블랙리스트,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여성가족부의 민주당 후보 공약개발 등 무수한 의혹을 남겼다. 의혹을 규명하려는 검찰총장은 물론 감사원장(최재형)을 몰아내려 했다. 그런 행태에 실망한 대다수 국민은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다. 새 정권은 힘이 없을 때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 이게 정치보복인가, 신(新)적폐청산을 위한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의 작동인가.
송국건 정치칼럼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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