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브로커' 미혼모 소영역 이지은 "노골적이지 않은 연출법 좋아…캐릭터 위해 상한 머릿결은 유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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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4   |  발행일 2022-06-24 제39면   |  수정 2022-06-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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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첫 상업영화 칸 수상작이라 기뻐
선배들 확실한 연기톤 덕분에 캐릭터 몰입
가수 활동할 때 몰랐던 소속감 크게 느껴
절제된 표현법 내가 추구하는 연기 스타일
'머릿속으로 미리 상상한 후 새 인물 만들기'
노래 쓸 때 작업방식 연기에도 그대로 적용"


'데리러 오겠다'는 짧은 편지 하나만을 남기고 베이비 박스 앞에 아기를 놓고 사라진 미혼모 소영. 이튿날 다시 돌아온 그는 아기를 잘 키워줄 적임자를 찾아주겠다는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의 여정에 함께 따라나선다. 아기를 두고 간 이유도, 돌아온 이유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히지 않은 채다. 칸 영화제 수상작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천착해 온 가족의 서사 안에서 엄마의 존재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그리고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조합에서도 소영을 연기한 이지은은 방점이 됐다. 전에 없이 깊은 눈빛과 미묘한 디테일로 캐릭터에 녹아든 그는 고레에다 감독으로부터 "내가 쓴 대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다"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첫 주연작으로 칸 레드 카펫을 밟은 이지은에게도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된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아직 접하지 못한 예비 관객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며 "서로 다른 가치관과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만나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 '브로커'라는 영화에 대한 감상이 서로 다른 관객들에게 그것 또한 큰 의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칸에서 돌아온 그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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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칸에 다녀온 소감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참여할 모든 영화가 이런 기회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칸에 갔고, 내 인생의 첫 상업 영화이다 보니 여전히 떨리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칸에서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내가 칸에 있는 건지 한국에 있는 건지 모를 정도였는데, 송강호 선배의 수상 소식만큼은 정말 소름이 돋을 만큼 생경한 경험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고,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신기했고 또 기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나의 아저씨'를 인상 깊게 본 후 캐스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의 캐스팅 제안을 받고 순간 스친 생각은 뭐였나.

"'완전 대박이다'라고 생각했다. 캐스팅 제안을 받기 1년 전쯤 감독님과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 감독님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를 때였다. 그런데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빨리 제안을 주셨는지 정말 궁금했다. 감독님의 작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결을 지녔다. 때문에 이 작업이 있기 전부터 (연기)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감독님의 작품들을 섭렵했다.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어렵거나 무겁지 않게 시선을 유지하고,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 연출 방식도 좋았다. 그런 감독님과의 작업 기회가 왔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고, 좋은 선배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기대감도 컸다."

▶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소감이 궁금하다.

"감독님은 힘들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일관된 모습으로 평상심을 유지하는 모습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부담감과 책임감이 상당할 텐데 전혀 티 내지 않고 안심시키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감사하기까지 했다. 선배들도 확실한 톤이 있어서 내가 현장에서 믿고 따라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항상 더 집중하게 되고 글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놀라웠던 건 모두가 굉장히 차분하고 여유롭고,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현장에 내가 함께 속해 있는 게 신기했고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히피스러운 복장과 메이크업도 눈길을 끈다. 무대에 설 때처럼 본인의 의견이 반영됐나.

"프로덕션 초기 미팅 단계에서부터 분장, 의상팀 실장님들이 구체적인 의견을 주셨다. 마침 지난해 'LILAC' 앨범 활동이 끝나자마자 촬영에 들어간 상황이라 잦은 스타일링으로 인해 헤어가 많이 상해 있었다. 염색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얼룩덜룩하게 지저분해져 있었고 빗질이 안 될 만큼 푸석푸석했다. 그런데 실장님이 그걸 다 살려서 가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앨범 활동 중에 체중이 너무 많이 빠져버려서 그게 걱정이 됐는데, 오히려 감독님은 소영이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니까 야윈 모습도 괜찮다고 하셨다. 생기를 되찾는 지점부터 잘 먹으면 된다고 하시면서."(웃음)

▶아픔이나 어둠을 간직한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많이 표현하는 것보다 절제하는 쪽의 연기가 나와 맞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감정을 바로 드러내기보다는 한번 속으로 생각하는 편이라서 연기적으로도 그런 인물들을 표현하는 게 편하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의 지안과 '브로커'의 소영을 보면서 내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보다는 감독님이 캐릭터를 잘 구축하고, 잘 이끌어 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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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와 차별된 연기의 매력을 든다면.

"소속감이다. 물론 가수일 때도 스태프분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팀 단위로 움직이지만 영화는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나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고, 나는 그 임무만 바라보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웃음) 송강호 선배가 '어떤 결과와 상관없이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건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라고 한 말이 정말 가슴에 와닿았다. 칸 수상 후 뒤풀이 자리에서도 '고맙다'고 하시더라. '모두가 제 역할을 잘 해줬기 때문에 영화가 좋은 평을 받고, 나도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선배 개인이 그간 쌓아온 경력과 작품에 기여한 부분이 어마어마하게 큼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모두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바로 소속감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싱어송 라이터로 공연과 앨범 작업을 사실상 총괄해왔고, 많은 히트곡에는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실었다. 반면 연기는 주로 간접경험이다 보니 작품을 준비하거나 접할 때 아무래도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을 것 같다.

"곡과 가사에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투영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앨범에는 여러 트랙들이 있다. 드라마나 소설처럼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을 마치 내가 겪어 본 것처럼 쓰고 표현할 때가 사실 수적으로는 더 많다. 나의 이야기만 쓰다 보면 분명 한계점이 생긴다. 연기를 할 때도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이지만 경험한 것처럼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판타지를 가미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낸다. 곡을 쓰면서 자주 사용했던 이 방식이 연기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했던 신이 있었나.

"강동원 선배와 함께 찍은 관람차 신이다. 실제 관람차 안에서 찍었기 때문에 장소가 비좁았고 제한된 인원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해가 질 때가 배경이라서 관람차 돌아가는 타이밍과 적절하게 시간적 안배를 해야 했다. 관람차가 한 번 돌고 나면 해가 지기 때문에 선배와 나에게 각각 하루씩 테이크가 주어졌다. NG라도 나면 다음 날 많은 인원들이 다시 와서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 그게 심적으로 많이 부담됐다. 대사량도 많고 감정조절도 필요했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눈물이 고였던 장면이지만 감정에 너무 몰입하면 자기 연민으로 비칠 수 있겠다 싶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단호하게 표현했는데, 감독님도 내 생각과 감정을 믿어주셨다."

▶소영의 대사 '태어나줘서 고마워'도 감정을 두드리는 대사인데, 직접적인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 고레에다 감독의 스타일과 비춰봐도 특별한 지점이다.

"관람차 신과 더불어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었다. 촬영할 때 현장도 굉장히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불이 꺼진 방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해서 어떤 목소리 톤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준비해 간 다른 버전도 있었지만, 한 번에 오케이가 났다. 감독님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다. 감독님이 나에 대한 확신이 있으시니 '나도 좋다'라는 마음으로 믿고 따라갔다."

▶가수 아이유가 이지은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이지은이 아이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 이지은과 아이유를 크게 분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냥 이지은'은 참 일반적이고 특이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나를 좀 더 돋보이게 만드는 개성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서로에게 공통적으로 '많이 감사했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가수와 배우로 본격적인 2막을 펼치게 됐다. 앞으로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나.

"나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일 욕심도 타고났고 일 복도 타고났다. 그래서 종종 머쓱한 일도 많이 한다. (웃음) 일단 해야 하는 일들 위주로 잘 해내고 당분간 일을 너무 크게 벌이지 않을 생각이다. '브로커'만 해도 나에겐 과분할 정도로 큰 역할이다. 그만큼 모두가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이 부분에서 감동이 크다. 그 믿음에 보답하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오래오래 노력할 거다. 이병헌 감독의 '드림'도 앞두고 있으니 30대를 시작한 올해는 나에게 특별한 해가 될 것 같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 EDA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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