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동대구로 '히말라야 횡단보도'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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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3   |  발행일 2022-06-23 제23면   |  수정 2022-06-23 20:49

[영남타워] 동대구로 히말라야 횡단보도
변종현 편집국 부국장

만약 횡단보도에도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아마도 이곳은 '히말라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동대구로 영남일보 사옥(영남타워) 1층 현관문을 나서면 곧장 횡단보도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어느 대로(大路)에나 그만한 횡단보도는 깔리는 법이지만 대형 건물 주출입구와 사실상 바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 놀라움을 안겨 준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이 횡단보도가 놓인 첫날 점심시간, 영남타워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의 감탄사를 들려 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와~. 현관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탄성이 자동적으로 터져 나왔고, 동공은 족히 두 배는 커졌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이 횡단보도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두 번째 놀라움은 횡단보도를 따라 양쪽으로 아주 가까이 히말라야시더가 늘어서 있다는 점이다. 북유럽 어느 숲길을 걷는 감동이라 하면 너무 '오버한다'고 타박할지 모르겠다. 원래부터 자리하고 있던 히말라야시더 사이로 횡단보도를 냈기 때문이긴 하지만 마치 숲속으로 난 길을 걷는 듯한 야릇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함께 걸어도 혼자 걷듯 해야 하고, 반대편에서 다시 한번 건너와 봐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약 2분에 한 번꼴로 1분가량 열리는 이 횡단보도 위로, 아주아주 운이 좋으면, 까치와 까마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도 목격할 수 있다.

총 12차로(3개 가로수 구간 포함)인 동대구로를 가로질러 걷다 보면 세 번째 놀라움과 마주하게 된다. 다른 곳과 달리 횡단보도 중간 지점쯤에서 고개가 좌우로 돌아가는 걸 막을 수 없는데, 길게 뻗은 대로가 선사하는 뷰(View)는 속을 다 시원하게 한다. 오가는 차량이 드문 시간이면 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양쪽으로 위로, 줄지어 서고 치솟은 히말라야시더는 잿빛 아스팔트마저 그림으로 만든다. 사족이지만 독재자의 지시로 닦고 식재된 동대구로와 히말라야시더가 후대에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 또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횡단보도가 설치된 건 2021년 11월1일이다. 80대 할머니 한 분이 대낮에 무단 횡단하다 차량에 치여 숨진 지 6개월 만이었다. 사고지점은 수년 전부터 무단 횡단하는 이들이 많아 횡단보도 설치 건의가 잇따랐던 곳이다. 운전하다 보면 히말라야시더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어르신으로 인해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당국은 여러 이유를 대며 횡단보도 설치에 인색했다. 급기야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뒤늦게 움직였다. 이 횡단보도에 '히말라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이유는 비단 히말라야시더 때문만은 아니다. 유명을 달리한 할머니가 걸었던 그 길은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것만큼 고통이고 두려움이지 않았을까.

영남일보 연중 캠페인 '인도(人道)를 돌려주세요'가 독자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운전자도 내리면 보행자가 되지만 차량은 오히려 더욱 괴물이 돼 가는 현실에서 보행권을 되찾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면도로에선 으레 사람이 차를 피하고, 그러지 않으면 어김없이 클랙슨이 울린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기다리고 있어도 못 본 채 질주한다. 이 폭력적 거리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히말라야 횡단보도'는 차도(車道)에서도 사람이 먼저이고, 보행권이 우선돼야 함을 웅변하는 상징이다. 전국에 교통문화관광지로 알릴 수 있게 이곳에 할머니를 기리는 조형물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변종현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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