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심이 관심으로' 변사사건 용의자에게 빠져든 형사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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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39면   |  수정 2022-07-0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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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순 없어요."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는 별다른 동요 없이 평소처럼 노인 요양보호사 일을 수행한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외려 경찰 신문 과정에서 미소를 띠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이 사건의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그런 서래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한다. 최연소로 경감의 자리에 오를 만큼 유능한 그는 단정하고 예의 바르지만 범인을 잡는 일에 최선과 진심을 다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묘한 끌림을 멈출 수가 없다. 서래 역시 자신에게 친절한 해준에게 호감을 느낀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사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호기심과 동질감이 함께 싹튼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매혹과 관능, 폭력과 금기를 주된 언어적 장치로 활용해 왔던 그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은근한 절제와 미묘한 암시로 서사의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채운 작품이다. 사랑 이야기지만 묘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문어체의 대사와 블랙 코미디적인 상황 묘사가 복고적 분위기의 섬세한 미장센과 어우러져 한층 품격있게 완성됐다. 시퀀스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다채로운 화면 구성도 매혹적인데, 인물의 상상을 시각화하는 과감한 줌인과 줌아웃,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듯한 독특한 시점 샷과 부감 샷은 기존의 영화적 문법을 넘어서는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카메라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변사 사건의 용의자인 서래와 그녀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해준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간다. 드러내기보단 감추고, 말로 표현하는 대신 표정과 시선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서래가 한국말에 서툰 중국인이라는 설정이 매혹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보는 내내 무엇이 진실이고 진심인지,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쉽게 정답을 내릴 수 없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두 사람의 사랑 방식에 절로 이끌린다. 언제나처럼 은근하고 미묘하게, 스스로 다가와서 관심을 갖고 매력을 느끼게끔 관객을 유도하는 박찬욱 감독의 노련미가 또 한 번 빛나는 순간이다.

두 인물 사이 촘촘히 쌓여가는 감정의 미세한 포착과 매 장면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미장센의 조화는 보는 내내 눈부시다.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복잡다단하고 주도면밀한 캐릭터를 섬세한 눈빛과 표정으로 담아낸 탕웨이와 박해일의 상투적이지 않은 연기가 충분한 힘이 됐다. 장르의 관습에서 벗어난 고전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화법의 '헤어질 결심'은 관객을 서서히 그리고 깊게 빠져들게 만드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 안에서도 분명 새롭고 신선한 뉘앙스의 영화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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