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2] 상생의 길, 철길 숲…수십만 그루 나무 벗삼아 아이들 웃음소리가 철길 위를 달린다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2-07-11   |  발행일 2022-07-11 제11면   |  수정 2022-07-1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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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숲(Forail)'은 숲을 뜻하는 'Forest'와 기찻길을 뜻하는 'Rail'을 합해 만들었다. 총 길이는 4.3㎞로 어울누리길·활력의 길·여유가 있는 띠앗길·추억의 길 등 4개 구간으로 이어진다.

기차가 달리지 않는 기찻길이다. 그 길에 사람이 걷고 자전거가 달린다. 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이 그늘을 넓힌다. 분수가 시원하게 대기를 적시고 멋진 조형물들이 성큼 다가온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이 길은 동해남부선이었다. 경주 부조역을 떠난 기차가 포항 남부 효자역을 거쳐 포항역까지, 포항 시내를 가르며 달렸다. 그 시간이 100여 년이다. 2015년 4월, 도심에 있던 포항역이 고속철도(KTX) 신설과 함께 외곽지인 북구로 이전했다. 역들은 문을 닫았고 기찻길은 할 일을 잃었다. 가로등도 없고 인적도 없었다. 그런 철길이 2018년 숲길로 변신했다. 16만4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산책로를 만들고 편의시설과 휴식 공간·놀이 공간도 조성했다. 철길 숲이다. 이제 기차가 달리지 않는 기찻길에 평온한 활력과 청량한 호흡이 가득하다.


효자역서 옛 포항역 인근 서산터널까지 
폐철길 이용해 만든 총 4.3㎞ 도시숲
동아시아 최초로 英 그린플래그 인증

'불의 정원' 용광로처럼 안 꺼지는 불꽃
하늘 향해 곧 발차할 듯한 증기기관차
기찻길옆 나즈막이 줄지은 지붕 등 눈길


◆철길 숲, 어울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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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처럼 머리를 치켜든 증기기관차. 일제강점기 때부터 운행되었던 미카 3형 129호 모형이다.

철길 숲의 영문 명칭은 '포레일(Forail)'이다. 숲을 뜻하는 'Forest'와 기찻길을 뜻하는 'Rail'을 합해 만들었다. 총 길이는 4.3㎞로 어울누리길·활력의 길·여유가 있는 띠앗길·추억의 길 등 4개 구간으로 이어진다. '어울누리길'의 시작은 효자역이다. 효자역 앞에는 두 개의 선로가 있다. 하나는 끊어져 철길 숲이 되었지만 옆의 철길에는 여전히 열차가 오간다. 동해선의 지선인 괴동선으로 포스코로 향하는 화물열차들이다. 괴동선은 효자역에서 분기해 잠시 어울누리길과 나란히 달린다. 그래서 본격적인 '어울누리길'의 출발점은 효자교회 앞 효자동 당산목인 팽나무다. 당산목 앞에 '철길 숲'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석이 있다.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괴동선과 철길 숲은 안전담장을 설치하고 구릉을 조성해 분리해 놓았다.

위풍당당한 팽나무 당산목을 에둘러 산책로가 나아간다. 금세 말간 얼굴의 비석 하나를 만난다. '학생 전희 효자비(學生 田喜 孝子碑)'다. 전희는 근세 조선 시대 연일면 임강촌(臨江村)에 살았다는 효자다. 효자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효행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그는 학문과 덕망도 높아 효공거사라 불렸고, 부모님의 시묘(侍墓)살이를 할 적에는 호랑이가 그의 곁을 지켰다고 전한다. 전희의 효행은 조선왕조실록과 지역의 역사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효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효자각이 내려지고 이 마을을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효자각은 허물어지고 비석만 남았지만 높다란 비신은 저릿하게 맑다.

당산목에서 조금만 나아가면 철길이 보인다. 아이가 아장아장 철길을 걷는다. 철길은 산책로와 나란히 놓여 있기도 하고 산책로와 하나 되기도 하고 꽃밭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곳곳에는 옛 동해남부선 선로에 사용되었던 신호기와 건널목 차단기·철도 제어 관련 박스 등이 남아 있다. 산책로 옆으로 물결 모양의 '댄싱 프로미너드'가 리드미컬하게 흐른다. 자전거나 인라인을 위한 길이고 아이들에게는 재미난 놀이동산이다. 레일을 따라 효자교 아래를 지난다. 다리 아래는 거대한 거울이다. 해가 지면 조명이 더해져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효자교 위에 오르면 철길 숲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어울누리 숲'을 지난다. 기존의 양호한 수림대를 활용한 숲이다. 자매원 건널목을 건넌다. 역무원이 근무하던 건널목 신호장은 포레일 이용자들을 위한 안내센터와 화장실이 되었다.

◆불의 정원과 활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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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철길 숲 조성 공사 중 천연가스가 분출하면서 생겨난 '불의 정원'. 포항제철소의 용광로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은 철강도시 포항의 이미지와 합쳐져 명물이 되었다.

건널목을 건너면 '기억의 숲'이 시작된다. 불꽃이 보인다. 환영이 아니라 진짜 불이다. 이 불은 2017년 숲 조성 공사 중 천연가스가 분출하면서 생겨났다. 도심 한복판에서 천연가스라니! 하늘로 치솟은 불길에 시민들은 크게 놀랐다. 불은 진화작업에도 꺼질 줄 몰랐다. 비가 오는 날에도 활활 타올랐다. 일주일, 한 달, 그렇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계획은 수정되어 '불의 정원'이 만들어졌다. 불이 타오른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제철소의 용광로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은 철강도시 포항의 이미지와 합쳐져 명물이 되었다. 불의 정원을 지나면 폭포와 분수대가 있는 암벽 위에 머리를 치켜든 증기기관차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운행되었던 미카 3형 129호 모형이다. 하늘을 향해 곧 출발할 것만 같은 검은 미카는 이곳에 기차가 다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대잠고가차도에 다다른다. 차도 아래는 '한터마당'이다. 널찍한 공간에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보드를 타는 청년들이 묘기를 부리고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한다.

여기서부터 '활력의 길'이다. 철길 숲을 중앙에 두고 한쪽은 급경사의 산지, 또 한쪽은 복잡한 도심지다. 그래서 길은 조금 좁아지지만 큰 조형물들이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커다란 사람이 열심히 걸어간다. '내일로'라는 작품이다. 그가 향하는 길이 광장으로 열리면서 '만남'이라는 작품과 마주한다. 이용덕 작가와 포스코 근로자들이 협업해 만든 작품으로 철판 200장을 쌓아 올려 조각했다. '만남' 뒤에는 음악과 함께 바닥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분수에 폭 젖은 아이들이 물방울처럼 뛰어다닌다. 음악분수 뒤로 오벨리스크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햇살을 가르고 있다. '신 철기 시대'라는 작품으로 철에 문명을 덧대어 새로운 철강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바람을 담았다. 오벨리스크의 가슴에 포항에 있는 철강기업들의 마크가 새겨져 있다.

음악분수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길이 좁아진다. 꽃에 물을 주는 소녀 천사와 피노키오 등 숲속의 조형물들이 동화처럼 펼쳐진다. 숲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도 있다. 갑자기 차가운 안개가 쏟아진다. '쿨링 포그시스템'이다. 폭염과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쿨링 포그시스템'은 음악분수대에서 어린이공원까지 100여m와 놀이터 2곳에서 자동으로 작동된다. 초록 숲에 퍼지는 안개는 환상적이다. 가파른 산이 약간 느슨해진다. 산자락에 그린웨이 생태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길가에 과거 이 지역을 다스렸던 현감과 관찰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이동고가차도가 보인다.

◆더 멀리, 푸르게 자라나는 철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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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함께 바닥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음악분수는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준다. 분수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띠앗길'은 이동고가차도에서 용흥고가차도까지 1.2㎞ 길이다. 평균 너비 5m 이내의 협소한 공간으로 주민과 직장인을 위한 산책공간으로 계획되었다고 한다. 슬레이트 지붕의 낮은 집들이 기찻길 옆으로 이어진다. 커뮤니티 공간인 쌈지마당도 군데군데 자리한다. 오래된 풍경 속에 철길 숲은 서정적으로 자리해 있다. '추억의 길'은 용흥고가차도에서 구 포항역을 거쳐 서산터널까지 1.4㎞ 이어져 있다. 구옥과 새로운 건물들이 낯설지 않게 공존하고 좁고 아늑한 길에 키 큰 나무들이 인상적인 길이다. 여기까지가 철길 숲 4.3㎞다. 끝이 아니다. 철길 숲은 2011년에 완공된 서산터널에서 우현동 유성여고까지 구간의 도시 숲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는 효자역에서 연일읍 유강리 상생인도교까지 이어지는 2.7㎞ 구간에 철길을 따라 숲과 산책로를 만들었다. 유강리에서 우현동까지 전체 철길 숲은 9.3㎞에 이른다. 포항시는 유성여고에서 장성·환여·두호동까지 숲길을 확장할 계획이다. 그러면 남으로는 형산강에, 북으로는 영일대해수욕장과 맞닿게 된다.

포항 철길 숲은 포항의 도심·해양·산림이라는 3대 축을 녹색 네트워크로 연결해 산업화시대에 형성된 도시구조를 지속 가능한 녹색 생태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한 '그린웨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그 핵심에 철길 숲이 있다. 특히 철길 숲은 '환원'을 기본개념으로 설정하고 시간과 문화·생태·인프라의 환원이라는 4가지 세부개념에 맞춰 설계되었다. 그 결과 철도 100년이라는 역사가 녹아 있는 문화공간이자 도시의 동맥이자 허파로 기능하는 녹지공간으로 완성됐다. '포항 철길숲'은 지난 4월 영국정부 산하 환경단체인 KBT(Keep Britain Tidy)에서 시행하는 그린 플래그(Green flag) 인증을 받았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공원 및 녹지관리의 모범사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것이다. 동아시아 최초다. 지금도 수십만 그루 나무들이 푹푹 숨을 쉰다. 나무들의 깊은 호흡 속에서 아이들은 훨훨 달리고 철길 숲은 쑥쑥 자란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포항시. 철도통계연보, 한국철도공사, 2009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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