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이 "글쎄(요)"를 가장 많이 쓴 까닭은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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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11   |  발행일 2022-07-11 제26면   |  수정 2022-07-11 06:47
도어스테핑을 둘러싼
과도한 부작용 우려들
단순한 질문답변 아닌
함께 고민하는 순간들
중단은 국민 불신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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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야당은 물론, 일부 여권 인사들도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심지어 언론계에서조차 횟수를 줄이거나 방향을 좀 틀어보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유는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고 △도어스테핑 내용이 다른 정책 이슈를 덮으며 △윤석열 대통령의 화법이 너무 거칠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되묻는다. 문재인 정부까지 구중궁궐에 권력자가 앉아 있던 시절엔 어땠나. 대통령이 참모를 통해서 낸 메시지는 정제된 건가, 아니면 설계되거나 가공된 건가. 정답은 "뭔지 알 수 없다"다. 권력자의 입을 국민이 쳐다볼 수도 없으니 참모진이 치밀한 정치적 계산을 통해 완성한 워딩이 '대통령의 메시지'로 포장되곤 했다. 청와대 시절엔 불리한 정책 이슈가 발생하면 대통령의 선동성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물타기를 하거나 덮어버리곤 했다. 이전 대통령들은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길 꺼렸을 뿐 아니라 어쩌다 그런 기회가 있어도 잘 짜인 각본대로 대답하면 되기에 '세련된' 화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도어스테핑이 새삼 도마 위에 오른 건 지난 5일 문답 때문이다. 기자가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진 사퇴, 박순애 교육부 장관 임명 진행을 놓고 '부실 검증' 아니냐고 물었다. 윤 대통령은 불쾌한 듯 "전 정권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세요. 자질이나 이런 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새 정부 인물 중 검사 출신이 많다는 질문을 받자 "과거엔 민변 출신으로 아예 도배하지 않았느냐"고 받아친 바 있다. 아마 정치인 대통령이었다면 '자진 사퇴' 문제에 "새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완비되기 전에 지명된 탓도 있는데 이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출범했으니 차츰 나아질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을 거다. '검사 과잉'도 "일의 성과로 판단해 달라"가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치 레토릭을 구사한다고 해서 다음엔 인사를 제대로 할까. 다시 실패하면 또 다른 레토릭을 찾아내면 그만이다.

차라리 윤 대통령의 어법이 진정성은 더 있다. 참모들이 '문재인 정부 5년간 야당 반대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된 장관급 이상이 34명으로 역대 최다였다'라는 등의 팩트를 입력시켰기에 나온 답변이다. 물론 기자 앞에서 그걸 소화하는 윤 대통령의 능력이 아직 미숙한 건 사실이다. '검사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동의한다. 다만 그런 문제는 경험이 쌓이면 점차 해소된다. 그걸 견디지 못하고 '언론접촉 변화'를 건의하는 참모가 있다고 한다. 큰일 날 소리다. 청와대 시대 마감과 용산 시대 개막의 상징인 도어스테핑을 이 정도 벽에 부딪혔다고 축소하거나 폐지한다면 대통령이 지도력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는 결과를 낳는다. 다른 국정 분야의 능력마저 의심받게 된다. 임기 초반인 대통령이 앞으로 뭘 한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국민도 많아질 거다. 동아일보가 5월11일부터 7월8일까지 24차례 있었던 도어스테핑에서 윤 대통령이 사용한 단어의 빈도를 파악했다. '우리'(30회), '문제'(28회), '생각'(25회), '국민'(24회), '대통령'(22회) 등이 많았는데, 이 단어들 보다 두 배 이상 쓴 말은 '글쎄(요)'였다. 분명하지 않은 태도를 나타날 때 사용하지만, 어려운 일을 같이 생각해 보자고 할 때도 쓰는 용어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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