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 명주 생산지…기능성 양잠업·관광 활성화로 '제2의 도약'

  • 김일우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박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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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27   |  발행일 2022-07-27 제22면   |  수정 2022-07-27 07:45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4] 상주 양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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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은척면 두곡리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뽕나무가 있다. 상주 양잠업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 나무는 202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고대부터 농경문화가 꽃핀 경북 상주는 조선시대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렸다. 벼와 목화·누에고치를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이 재배했기 때문이다. 산업화로 인해 목화 재배 농가는 사라졌지만, 누에고치는 여전히 명맥을 이어나가며 삼백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에를 길러 비단실을 생산하는 양잠을 빼놓고선 상주의 농업을 이야기할 수 없다.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4편에서는 쌀에 이어 상주의 양잠업(養蠶業)을 소개한다.

예부터 '삼백의 고장'이라 불리며
품질 좋은 명주 생산지로 이름나
뽕나무 잘 자라는 기름진 땅 덕택
한국서 가장 오래된 뽕나무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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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곤충체험학습관 앞에 위치한 잠령탑.

◆상주 양잠업의 시작

양잠업은 뽕나무를 이용해 누에(나비목에 속하는 곤충)를 길러 누에고치에서 생사(生絲)를 뽑아내는 것을 뜻한다. 누에치기라고도 한다. 누에는 실을 토해 몸을 감싸는 집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누에고치다. 이 누에고치는 명주실의 원료가 된다.

양잠업의 발상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고서 '잠경(蠶經)'에는 4천650년 전 황제 헌원씨의 원비 서능씨가 누에를 길러 옷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국의 고서 '단군세기(檀君世記)'에는 4천300년 전 누에를 쳤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누에치기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삼한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옛날 사람은 자연 발생적으로 산과 들에 자라있는 뽕나무를 이용해 작은 규모로 누에를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인위적으로 뽕나무를 심어 큰 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양잠업을 적극 권장했다. 고려 헌종 19년(1029)에는 집마다 뽕나무 묘목을 밭머리에 15~20그루씩 심으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조선 제7대 왕 세조(1455~1468년) 때는 가구별로 뽕나무 심는 양과 뽕나무를 베었을 때의 처벌기준을 담은 '종상법'과 잠업기술서인 '잠서주해'를 만들었다.

1900년부터는 국가에서 누에씨를 생산해 농가에 직접 보급했다. 상주 양잠업에 관한 기록도 1910년쯤부터 나온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생사와 비단 수출을 위해 한반도에서 누에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잠업을 적극 장려했다. 상주는 당시에도 양잠업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이처럼 양잠업에서 상주가 주목받은 것은 상주가 예로부터 뽕나무가 잘 자라는 자연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경북 서북쪽에 위치한 상주의 서북지역은 소백산맥이 우뚝 솟은 산악지대이며, 동남부지역은 낙동강 유역을 따라 형성된 기름진 평야지대다. 5월 평균 기온은 18℃, 6월 평균기온은 25℃, 8월 평균기온은 26℃, 9월 평균기온은 20℃ 안팎이다. 또 연평균 강우량이 800~1200㎜로 뽕나무가 성장하기에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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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테마파크 안 함창명주박물관에는 한복 등 비단과 관련된 다양한 물품 등이 전시돼 있다.

상주 기후는 누에치기에도 적합하다. 누에치기는 뽕나무의 생산뿐만 아니라 온도와 습도 조절 등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누에가 정상적으로 자라기 위해 온도는 20~28℃, 습도는 70~80%가 적당하다. 상주의 5~6월 기온은 봄 누에치기에 알맞고, 8~9월 기온은 가을 누에치기에 좋았다.

상주 은척면 두곡리에는 양잠업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나무가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척면 뽕나무'다. 수령이 최소 360년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뽕나무다. 높이는 12m, 가슴 높이의 둘레는 2.7m에 이른다. 뽕나무 재배를 권장했던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재위 1623~1649년) 때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양잠업은 1962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1962년 당시 정부에서 '잠업증산 5개년 계획'을 15년 동안 추진하며 한국 양잠업은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싼값에 생사가 수입되고, 노동 집약적 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 양잠업은 급속히 쇠퇴했다. 상주의 뽕밭 면적도 1970년 2천557㏊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렇게 스러져가던 양잠업은 1990년대 중반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누에로 단순히 명주실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건조누에, 수번데기, 동충하초, 오디 등을 생산하는 기능성 양잠업이 발달했다. 이로써 양잠업은 의약품, 의료용 신체조직, 화장품, 약재, 기능성 식품 등 다양한 시장을 새로 열었다. 2009년에는 '기능성양잠산업육성 및 지원법'이 만들어져 양잠업 지원의 법적 토대도 갖춰졌다.

산업화로 양잠업 쇠퇴 길 걷던 중
명주실 전통 생산방식 지켜가면서
의약품 등 기능성양잠업 전환 박차
명주테마파크 등 관광사업도 '인기'


◆양잠 중심도시 상주

지난해 상주의 양잠업 농가는 73가구, 뽕밭 면적은 27.8㏊, 양잠업 생산량은 7만5천53㎏이었다. 이 가운데 오디(뽕나무 열매) 생산량은 6만9천310㎏으로 양잠업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누에고치 생산량은 2천393㎏에 그쳤다. 이제는 명주실을 뽑는 것은 양잠업의 극히 일부가 됐다.

그런데도 상주는 여전히 국내에서 명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다. 상주 함창읍에는 아직도 50가구가 전통 방식으로 명주를 만들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명주는 매년 10만필에 이른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명주의 절반가량이 함창에서 나온다. 함창에서 생산된 명주는 품질이 매우 좋아 한복(韓服)의 옷감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함창은 신라시대부터 양잠 주산지로 유명했다. 당시 전국 최대 규모로 명주를 사고파는 시장인 '명주전'이 열리기도 했다.

양잠업을 하기 좋은 환경을 바탕으로 상주는 국내 양잠업 중심도시로 우뚝 서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상주에는 양잠업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춘 농가가 많다. 뽕나무 재배부터 누에치기 등 다른 지역보다 양잠기술이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상주시는 전국 최대 양잠업 주산지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상주시는 지난 10년 동안 함창읍 교촌리를 중심으로 국내 최대 양잠업 관련 인프라를 구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완공한 명주테마파크(면적 11만1390㎡)다. 명주테마파크 안에는 명주 테마광장, 체험관, 판매시설, 가공 및 생산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이듬해에는 명주테마파크에 함창명주박물관도 문을 열었다. 부지면적 2만8311㎡, 건물면적 791.73㎡ 규모다.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체험전시실, 영상실, 명주공예품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또 베틀, 명주다리미 등 양잠업과 관련한 유물 188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코로나19 확산 전에만 하더라도 매년 1만3천명~1만7천명이 다녀갔다.

상주 시내에 있던 경북 잠사곤충사업장도 명주테마파크 안으로 이전했다. 부지면적 13만9천㎡, 건물면적만 7천582㎡에 달한다. 잠사곤충사업장은 우량누에씨를 생산·보급하고 누에유전자원 계통 보전, 애누에 공동사육 공급, 뽕밭 관리, 동충하초 종균 공급, 유용곤총자원 산업화, 기능성양잠산업 시험 및 연구개발, 누에곤충 체험학습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명주테마파크 안에 한국한복진흥원도 문을 열었다. 경북도와 상주시가 전통 섬유산업 활성화와 한복 문화 진흥을 위해 부지면적 1만9천438㎡, 건물면적 4천935㎡ 규모로 지었다. 한국한복진흥원은 한복전시홍보관, 융복합산업관, 한복전수학교 등을 갖추고 있다.

상주시는 명주테마파크 일대를 한복산업 클러스터로 만들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우선 올해 9억5천만원을 들여 한국한복진흥원 한복문화 활성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상주시는 이 사업을 통해 전통복식 산업 활성화, 한복문화콘텐츠 공모전, 우리 옷 100선 콘텐츠 개발, 한복 메타버스 구축 등을 준비하고 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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