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민어(2)...부위별 다른 소스·양념, 12가지 맛 '즐거운 음미'

  • 이춘호
  • |
  • 입력 2022-07-29   |  발행일 2022-07-29 제34면   |  수정 2022-07-29 08:05

2
민어는 활어보다 얼음으로 잘 빙장해 질 좋은 선어 상태가 됐을 때, 부레·껍질·뱃살·꼬리·몸통별로 먹어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된장, 그리고 그 옆에 천일염이 스며든 참기름, 이밖에 생새우(물걸이)무침, 황석어젓, 각종 해초류, 마지막엔 무안산 자색양파 등이 가세해야 제대로 된 민어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토박이들은 그중 민어의 공기주머니인 부레를 제일로 친다.

목포에는 민어 전문점이 여럿 있다. 삼화, 포도원, 하당 옥정, 골목, 민어나라, 대성, 용당골, 청자, 풍어관, 중앙, 영란 등이 눈길을 끈다. 홍어는 그래도 전국으로 많이 흩어졌는데 아직 민어만은 목포권에 와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대구도 최근 슬금슬금 민어타령을 읊으려 하는 것 같다. 사실 대구에서는 민어란 어종을 제대로 아는 식도락가를 찾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달서구 죽전동 '만덕횟집'은 특이하게 선어가 아니라 현지에서 활어 상태의 민어를 공수해 와 팔고 있다. 아무튼 목포의 웬만한 식당에서도 미리 주문하면 맛있게 먹도록 민어를 잘 장만해준다.

50년간 영업 딸이 가업, 목포 영란횟집
비법 담긴 막걸리초장에 푹 찍어 먹어
별미 반찬 한상…토박이 찾는 용당골

일제강점기 시대 최대 어장 임자도
'부욱~' 짝 부르는 소리내는 큰 부레
내장-젓갈, 알-어란·찜, 부레-횟감
밥 싸먹다 논 팔았다는 맛 민어 껍질
남은 뼈는 푹 고아 맑은 탕으로 끓여


2-1
민어껍질.

◆목포는 민어다

관광객에게 가장 많이 노출된 식당은 '영란횟집'. 기자는 이번 민어기행 전, 5년 전에 숨은 미식가 중 한 명인 최기동 목포시의원의 안내를 받아 그 가게에서 민어회를 맛본 적이 있다. 물컹한 영남권 활어회에 길든 내게 졸깃하면서도 떡 져 보이는 민어 육질은 매년 하절기만 되면 내 미뢰를 사정없이 강타하곤 했다.

영란횟집은 1969년 문을 열었다. 2014년 작고한 1대 여사장 김은초에 이어 맏딸 박씨가 가업을 이었다. 여기 오면 민어 요리의 기승전결을 다 맛보게 해준다. 민어 살은 쑴벙쑴벙 투박하게 썰어 양배추 위에 얹어 낸다. 세 종류의 장(된장·간장·초장)이 회를 에워싼다. 회는 이 집만의 비법이 담긴 막걸리초장에 푹 찍어 먹어야 된다.

하지만 워낙 전국구 맛집이다 보니 관광객으로 흘러넘친다. 토박이는 요즘 덜 붐비는 '용당골' 등으로 간다. 우리도 거기로 갔다. 메뉴판을 봤다. 민어 코스 요리가 10만원이다. 회, 초무침, 전이 세트로 나온다. 이밖에 병어회와 병어찜 그리고 병어와 비슷하게 생긴 '덕자'도 회와 찜으로 맛볼 수 있다. 더 감동은 게미가 진동하는 별미 반찬이다. 이건 대구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포스다. 젓갈에 절인 생새우무침, 이게 이날 밤 내게는 단연 최고였다. 부레 한 점을 그것과 함께 씹었다. 비로소 게미가 어떤 식감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황석어젓은 목포의 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가사리, 톳 등 별별 해초가 각기 다른 맛을 보이며 접시에 누워 있다. 민어의 각기 다른 부위, 그걸 간장과 초장에 찍어 먹는다는 건 반칙이다. 부위별로 소스를 달리해서 먹는 즐거움을 어떻게 필설로 다할 수 있을까? 특히 병어는 토종 된장으로 먹어야 된다. 그래서 '병어는 된장빵'이라는 말도 파생됐단다.

민어요리는 장만해 테이블에 내주는 요리사보다 그걸 특정 소스와 양념과 결부해 새로운 미각을 발견하는 미식가의 감각에 더 무게중심이 실린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먹지 않는다. 자기만의 먹는 법이 있다. 그게 토박이와 관광객의 차이다. 여느 도시의 뻔할 뻔 자인 초장~고추냉이~간장의 케미, 민어회 앞에서는 왠지 기가 죽을 것 같다. 나는 다시 해초류를 곁들여 껍질을 먹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민어탕, 뽀얀 국물 속에 담긴 민어 통뼈가 언뜻 닭백숙을 연상시킨다.

5
송도위판장 입구에 들어선 민어 코스 전문 식당들.

◆민어의 추억

한국 수산지에 따르면 목포 근해 태이도, 금강, 군산 근해, 압록강 입구가 주요 어장이었다. 그런데 수온이 변해 지금은 임자도 근해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 특히 태이도는 민어 파시가 섰던 임자면 하우리 앞 섬이다. 인천 굴업도와 덕적도 인근에도 민어 어장이 형성돼 파시가 형성됐다. 임자도 해역은 수심 10~20m에 먹이 생물로 가득한 모래바닥이 마치 울진 왕돌잠처럼 깔려 있어 민어에게 최적의 산란지다. 민어는 새우를 가장 좋아하는데 임자도 바다는 새우도 풍부하다. 식물 플랑크톤이 서식하는 신안 갯벌은 민어를 대표 특산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갯벌 가운데 신안 면적은 전체의 85.5%(1100.86㎢)를 차지한다.

요즘 임자도가 민어 때문에 난리다. 코로나 때문에 3년 쉬었던 섬 민어 축제가 오는 29~30일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어섬으로 불린다. 잡히기는 임자도 근처, 팔리는 데는 바로 옆 지도읍 송도위판장이다. 잡히고 팔리고 소비되는 게 한 포인트에서 다 이뤄진다.

대광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하니 은빛 민어를 본뜬 5m 민어상을 세워놓았다. 지난해 3월 임자대교가 개통돼 임자도는 육지로 둔갑했다. 대광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서쪽으로 차로 5분 달리면 전라도 3대 파시(波市·생선 시장)로 명성을 날렸던 하우리항이 나온다. 1930년대부터 바다 위나 모래밭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이 성행했다.

일제강점기 민어가 많이 잡혔던 어장으로는 신안군 임자도 어장과 옹진군의 굴업도 어장을 꼽는다. 굴업도는 일찍 민어가 사라졌지만 신안군 임자도는 지금도 주민들의 민어잡이가 이어지고 있다. 김 위원은 이 내막을 소상히 정리한 적이 있다. 임자면 하우리에서 작은 배를 타면 태이도에 도착한다. 주민들이 '타리섬'이라 부르는 곳이다. 특히 '뭍타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신안군 임자도의 대광해수욕장과 이어진다. 타리섬은 섬타리와 뭍타리로 나누어져 있다. 모두 임자도 남쪽 하우리에 속했던 섬이다. 한때 섬타리는 8가구가 살았고 초등학교 분교가 있기도 했다. 그리고 뭍타리에도 1가구가 살았었다. 마지막까지 섬타리를 지키던 주민이 하우리로 이사를 하면서 무인도로 바뀌었다. 광복 후 임자도에서 민어를 가져가던 일본인이 사라졌다. 그 후 민어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우리와 섬타리에 가득했던 사막 같은 모래를 유리회사에서 가져가면서 사라졌다.

김준 위원이 민어의 본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민어는 큰 부레를 가지고 있다. 부욱~ 부욱~ 소리를 내는 것은 짝을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부레를 이용해 바닥으로 또는 수면 가까이 오르내린다. 산 채로 배 안 물칸에 넣어두어도 뒤집혀 오래 버티질 못한다. 해서 잡자마자 아가미에 칼을 꽂아 피를 빼낸 다음 얼음에 묻어 보관한다. 선도가 좋을 때 피를 빼야 선어를 내놓을 때 깨끗하고 숙성이 되어 식감도 좋다. 민어잡이 배 냉장고는 민어숙성창고다. 그물로 잡은 것보다 낚시로 잡은 것이 더 비싸다.

민어는 크게 12가지 맛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내장은 젓갈, 알은 어란이나 찜, 쫄깃하고 고소한 부레는 횟감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등살, 꼬리살, 뱃살, 늑간살 등 부위별로 해체한다. 무엇보다 담백하고 고소한 뱃살과 다져서 나오는 갈빗살이 먼저 안주로 나온다. 물론 큰 민어일 때 가능하다. 이때 꼭 챙겨야 할 것이 붉은 살을 살살 걷어내고 나면 남는 껍질이다. 껍질에 밥 싸먹다 논을 팔았다는 민어껍질이다. 남은 뼈는 푹푹 고아서 맑은 탕을 끓인다. 탕 중 으뜸이라는 민어탕에 부레가 생명이다. 경상도에서는 보신탕으로 복달임(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 풍습)을 했다면 목포권에서는 민어로 한다. 홍어애국에 애가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듯 민어탕에도 부레가 들어가야 한다. 비늘 말고 버릴 게 없다.

옛 개성 양반이 복달임으로 임자수탕을 즐겼다면 서울 양반은 민어 요리에 탐닉했다. 큼직한 민어 한 마리를 올려 놓고 회를 뜨거나 찜·탕을 끓여 푸짐하게 먹었다. 지금도 '복더위엔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란 말이 전해진다. 조선조 궁중에서는 '민어감정'이라 하여 민어로 고추장찌개를 끓여 그 감칠맛을 즐겼다.

2022072901000727800030784
일제강점기 민어 파시 광경. 임자면 타리섬 앞 현재 대광해수욕장 인근.
3
신안군 지도읍 송도위판장 앞 포구. 민어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다. 제철에는 남해안권에서도 원정을 온다.

◆고서 속 민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민어(民魚)'라 기록돼 있다. 전라도에서는 민어보다 '민애'라 해야 친숙하다.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법성포는 '홍치', 완도는 '불둥거리'라 했다. 서울 상인은 크기에 따라 민어, 상민어, 어스래기, 가리, 보굴치 등으로 구분했다. 민어의 고장 임자도에서는 큰 놈은 '돗돔', 중간은 '민어', 작은 것은 '통치'라 불렀다. 전남지방에서는 큰 놈을 '개우치' 소금에 절여 만든 특대 민어의 수컷을 '수치', 암컷을 '암치'라 했다.

어장은 완도·진도·태이도(苔耳島)·칠산탄(七山灘)·격음열도·인천·진남포·연평열도·압록강이고, 가장 주요한 어장은 목포 근해 태이도, 금강과 군산 근해 및 압록강 기수욕이다. 태이도는 고래로 민어의 산지로서 유명하였고 우리나라 사람은 각종 재래식 어구로써 어획하고 있었는데, 1906년에 일본 어민이 태이도에서 안강망을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둔 뒤 이를 전하여 들은 안강망 업자들이 속속 들어와서 그 어선 수가 40여 척에 달하였다고 하였다.

특히 조기와 민어는 비슷하다. 중국의 고문서에서는 민어를 석수어, 즉 큰 조기로 본 경우가 많았다. '승정원일기(承宣院日記)' 영조 4년 무신(1728) 7월13일자를 보면 '선혜청을 주관할 때 이러한 폐단을 자세히 알고서 바꾸어 바치는 규례로 아뢰어 변통하고자 하였으나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어와 조기로 말하면, 조기가 부족하면 민어로 바꾸고 민어가 부족하면 조기로 바꾸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광둥성에서는 민어 부레를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가 유명하다.

대담=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춘호 음식전문기자

정리·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도움말 =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 연구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