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중국산이 점령하고 시위용 전락…지역 생산업체들 "태극기 인식 개선되길"

  • 이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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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3 15:09  |  수정 2022-08-13 16:19  |  발행일 2022-08-15 제1면
광복절 앞두고 살펴본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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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13일 광복절을 앞두고 대구 상화네거리에 설치한 50여개의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려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영남일보DB

12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북구 칠성시장 건물 2층엔 낡은 사무실들 사이로 '국기사'라는 작은 간판이 적힌 사무실이 있었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은 '칠성 국기사'로 수십 년전부터 게양용·가정용 태극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지만, 평일 낮임에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인근의 한 깃발 판매업체 사장 A씨는 "칠성 국기사 사장님이 나이가 많아 얼마 전 세상을 떠나고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문을 닫은 걸로 알고 있다"며 "대구의 유명한 태극기 전문 생산업체였는데, 이젠 더 이상 지역에선 태극기 전문업체를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사장님들이 모두 60~70대에다 사양길로 들어서고 있으니 이어갈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77주년 광복절을 맞았지만 태극기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태극기 생산 업체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그 자리는 어느새 단가 낮은 태극기를 생산하는 중국 업체가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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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에서 태극기를 비롯한 깃발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김영길(70)씨와 김성환(41)씨가 태극문양을 소개하고 있다. 이자인기자



이런 상황에서도 매일 태극기를 만들며 그 의미를 전하는 사람들이 지역에 있다.
김영길(70)씨는 대구 동구 불로동 한 업체에서 40년째 태극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지역에서 거의 최초로 컴퓨터 자수 방식으로 태극기를 제작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산 태극기가 판치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지역 영세업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씨는 "매일 태극기 미싱을 박다 보면 태극기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태극 문양을 그리는 순서도 있고 규격도 있어서 직접 만드는 것과 중국산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만들 때마다 국기의 소중함을 매번 느낀다"라면서도 "문제는 단가가 낮은 중국산 태극기가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것인데, 게양용·가정용 태극기는 대량 주문을 해도 대구엔 만드는 업체가 없다보니 외부에서 사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태극기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김씨 외에도 지역 내엔 프린트나 컴퓨터식 자수 방식으로 깃발을 판매하는 도·소매상들이 적지 않다.
최근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로 행사가 줄어들면서 이들은 이중고도 겪어야 했다.

대구 중구에서 깃발을 판매하는 박모(50)씨는 "이 일에 몸 담은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지난 2년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태극기는 주로 공휴일과 연초에 많이 나가는데, 2년 동안 수입이 절반 이상 떨어지면서 기계를 돌릴 일이 없으니까 가게도 잠정 운영했다"며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상황이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깃발 제작업체 대표 김성환(41)씨도 "최근 행사를 갔었는데 대형스크린에 국기를 띄워놓고 '국기선양'을 하더라"면서 "예전 같았으면 깃발을 세워뒀을 텐데, 시대가 많이 변했구나 싶어서 다소 씁쓸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최근 태극기의 의미가 정치적으로 소모·변질 되면서,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는 데 대해서도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중구에서 태극기를 제작하는 배모(66)씨는 "사실 태극기에 대해 인식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태극기 부대' 등 각종 단체들이 정치적 이유로 많이 사용을 하는데, 문제는 시위 같은 데서 사용할 때 태극기를 깔고 앉고 휴식을 취했다가 갈 때는 쓰레기통에 그대로 넣고 간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래진 대한민국국기홍보중앙회 회장도 "태극기가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게양율이 10% 이하로 뚝 떨어지는 등 태극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는 건 큰 문제"라면서 "국민들이 태극기를 떳떳하게 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태극기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자인기자 jain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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