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7] 구룡포항…잔잔한 바다, 낮잠 든 항구·달큰함 펄떡이는 횟집거리·100년 시간 거스르는 골목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2-08-17   |  발행일 2022-08-17 제22면   |  수정 2022-08-1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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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어업기지로 떠오른 구룡포는 지금도 계절마다 전국 최고의 특산품이 생산되고 거리는 온갖 먹거리로 넘쳐난다.

항구의 반드러운 바다에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다. 턱을 치켜세우고 돌진하듯, 일제히 뭍을 향한 배들 때문에 저 너머의 큰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항구를 둘러싼 거리는 비할 데 없이 벅적한다.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골목이 있고, 별별 날것들이 순진하게 헤엄치는 횟집들이 있고, 커다란 대게로 외벽을 장식한 즐거운 가게들이 있고, 과메기나 물회와 같은 달큰하고 비린 이름들이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항구마을 고유의 억양과 온갖 고장의 악센트가 뒤섞여 펄떡이는 활기가 넘쳐난다. 고개를 들면, 하루 종일 바다를 내다보는 집들과 마주한다. 그들 너머에 비로소 큰 바다를 보여주는 언덕이 있다. 구룡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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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횟집거리에서 눈길을 끄는 커다란 대게 조형물. 전국 유통물량의 절반 이상이 구룡포산 대게다.

◆구룡포항

신라 진흥왕 때의 일이다. 잔잔하던 바다에 갑자기 큰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열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졌고 바닷물은 이내 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폭풍우가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고 한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바다가 구룡포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 깊은 소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이 동해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들이 승천한 이후 조선시대까지 구룡포는 대체로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되자 일본인의 조선 출어가 본격화되면서 조용한 어촌마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가가와현의 어업단 80여 척이 고등어 떼를 따라와 구룡포에 눌러앉았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구룡포 앞바다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고 갈퀴로 쓸어 담을 만큼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어구를 버려야 무사히 항구로 돌아올 정도였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돈다. 이에 일본인 수산업자인 '도가와 야사브로'는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추진했다.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든 것이 1923년.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왔다. 방파제를 쌓아 생긴 새로운 땅에는 일식가옥이 빼곡히 들어섰다. 약 10년 후인 1932년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숫자는 287가구 1천161명에 이른다. 당시 구룡포항 주변에 조선인 민가는 겨우 3채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구룡포에는 대게·오징어·청어·꽁치·미역·대구·가자미·전복·고래 등 어장이 어마어마하다. 계절마다 전국 최고의 특산품이 생산되고 거리는 온갖 먹거리로 넘쳐난다. 횟집거리에서 독보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다. 전국 유통물량의 절반 이상이 구룡포 산 대게라 한다. 새롭게 개발한 대게빵도 덩달아 인기다. 오징어도 구룡포의 특산물이다. 구룡포항의 오징어는 경북도 내 어획고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2007년에 구룡포 일대는 과메기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과메기는 꽁치나 청어를 해풍에 말린 것으로 겨울 구룡포는 과메기와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산물 위판장 주변 길가에는 '과메기 물회 거리'가 조성돼 있다. 50여 개의 횟집이 줄을 서 있는 '과메기 물회 거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음식테마거리 2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년 11∼12월에는 구룡포항 아라광장을 중심으로 과메기를 시식하고 판매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일제강점기 최적 어업기지로 떠올라
1923년 방파제 쌓고 부두 만들어져
대게·오징어·꽁치·고래·가자미 등
계절마다 전국 최고의 특산품 생산

일본가옥 보존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흔적 가득
과메기 본고장답게 '문화관' 들어서
전시홍보관·특산물판매장 등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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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일본인이 살던 집들이 남아있는 골목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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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공원에서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서로를 휘감고 있는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인 가옥 거리

아라광장 앞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백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던 집들이 남아있다. 일본풍을 물씬 풍기는 이 골목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포항시는 2010년부터 지역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방 이후 몇 채 남아있던 일본 가옥과 원형이 보존되어 있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을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부를 쌓은 사람이다. 그의 집은 100년 전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2층 목조건물로 내부에는 일본인의 생활상과 구룡포의 역사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2011년에는 근대역사관을 중심으로 28채의 가옥을 정비해 커피숍과 추억의 상회·우체통·일본의상 대여점 등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오래전 드라마인 '여명의 눈동자'와 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등을 촬영했다. 특히 '동백꽃 필 무렵'의 영향력은 대단히 커서 때때로 일본인 거류지의 느낌보다 '동백이 동네'의 감성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백이의 가게 '까멜리아'는 드라마 이후 카페가 됐다. 내부는 '동백꽃 필 무렵'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원래는 마을 주민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용되던 '문화마실'이었고, 80여 년 전에는 누구나 묵고 싶어 할 정도로 좋은 여관이었다. 까멜리아 오른쪽에는 드라마 이름을 본뜬 동백서점이 있다. 서점 창문에 노규태 군수 후보의 홍보 포스터가 여전히 붙어 있다. 이외에도 '동백점빵' '동백 상회' '구룡포에 과메기가 필 무렵' 등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거리 가운데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백여 년 전 언덕 위에는 신사가 있었고 계단 양편의 돌기둥에는 신사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 돌기둥의 이름들은 시멘트로 덮였고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영일군수 김우복·영일교육감 임종락·제일제당 구룡포통조림공장 하사룡·이판길 등. 단기 4276년(1943) 7월에 세웠다는 기록도 보인다. 언덕 위는 구룡포공원이다.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서로를 휘감고 있는 구룡포 전설의 용 조형물이 있고, 도가와 야스브로 성덕비가 시멘트를 뒤집어쓴 채 서 있다.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분들과 6·25전쟁 때 산화한 호국 영령을 기리는 충혼탑과 충혼각 그리고 구룡포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당이 자리한다.

◆아라예술촌과 과메기 문화관

충혼각 옆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아라예술촌'이 나타난다. 구룡포의 생활문화센터로 도예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있고 각종 전시와 공연, 소규모 발표회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과메기 문화관이 있다. 주차장도 넓고 잔디밭도 넓다. 원래 이곳에는 구룡포 동부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1946년 개교한 학교는 2011년 폐교되었고 그 자리에 과메기 문화관이 들어섰다.

과메기 문화관은 포항의 자랑인 과메기의 품질관리와 홍보를 위해 건립되었다. 1층에는 기획전시관과 다양한 체험 교실 그리고 과메기를 비롯한 포항의 다양한 특산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 및 시식할 수 있는 특산물 판매장이 있다. 2층에는 과메기 연구센터와 진짜 물고기를 만날 수 있는 해양체험관, 심해를 경험할 수 있는 가상해저영상체험관이 있다. 3층에는 문화관의 주 테마관인 과메기 홍보관이 있다. 과메기 유래와 역사·과메기 덕장·과메기 주점·과메기 산업 등 과메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과메기의 본고장인 구룡포읍의 유래와 역사도 이곳에서 접할 수 있다. 펭귄, 북극곰 등과 함께 북극을 체험해 보는 증강현실(AR) 존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다. 4층에는 각종 놀이 공간과 카페, 야외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벽면에 '어화만대(漁花滿臺)'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물고기를 부르는 배들의 빛이 밤마다 가득 꽃으로 만발한다'는 뜻이다.

지난밤 꽃으로 만발했던 배들은 항구에 기대 오수에 들었다. 항구를 둘러싼 거리는 속살거리는 듯 준동한다. 소담스러운 바닷가의 집들은 저마다 고운 색깔의 지붕들을 맞대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리고 비로소 너른 바다에 눈길이 멎는다. 먼 옛날 한 마리 용이 피 흘리자 잔잔해진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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