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8] 구룡포의 바다, 석병에서 삼정리 주상절리까지…'시커먼 아우성'…용암 분출되는 그 순간 보는 듯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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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2   |  발행일 2022-08-22 제11면   |  수정 2022-08-30 07:47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리 주상절리 지대. 이곳에서는 방사형·부채꼴 등 다양한 방향의 절리가 관찰되지만 가장 우세한 것은 사선의 주상절리다. 지금 막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되는 바로 그 순간을 보는 듯하다.
작열하는 태양에 재가 되어버릴 것 같은 계절에도, 칼바람에 베이고 눈동자마저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씨에도, 평온히 바라볼 수 있는 가까운 바다가 보물처럼 내 기억 속에 숨겨져 있다. 물론 종 모양이나 별 모양의 작은 꽃들이 따뜻하고 신선한 공기 속에서 마른 향기를 채우는 시절이 가장 좋다. 그 바다에는 초승달 모양의 소박한 모래사장과 귀엽게 종알대는 자갈해변이 있고, 아흔아홉 개의 뾰족한 골짜기를 만드는 갯바위들의 숲이 있고, 무성한 솔숲과 바람을 바라보는 바위섬이 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땅끝이 있다. 그곳은 한반도 최동단이라는 석병리에서 삼정리 주상절리로 이어지는 구룡포의 바다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 석병리
여행객 많아져 없던 펜스 생기기도
국토지리원서 '한반도 최동단' 인증

삼정리 너른 길 모두가 과메기 덕장
덜 알려진 해변은 쉬쉬하며 찾는 곳
단애 아래로 주상절리 비경 드러내
사선모양 우세 속 다양한 형태 관찰


◆석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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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바닷가에 병풍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석병리라 불린다. 석병(石屛)은 돌병풍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촬영했다.
구룡포읍의 북쪽 끝은 석병2리다. 석병리의 본 마을로 나루터가 넓다고 하여 '범진' 혹은 '범늘'이라고도 한다. 정말 내항이 널찍하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가는 방파제 초입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툭 떨어져 있다. 주변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성혈(性穴)바위'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성혈은 고대인이 만들어 놓은 바위 구멍 그림이다. 청동기 시대 이후의 유적으로 주로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졌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에서는 알구멍·알바위·알터·알미·알뫼 등으로도 부른다. 고대인들은 바위에 홈을 내고, 홈에 작은 돌을 굴려 구멍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작은 홈이 탱자 혹은 달걀 크기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작은 돌을 굴리며 풍요와 다산과 안전과 장수를 빌었을 것이다. 바위에 무수한 구멍이 있다. 긴 시간 바닷바람을 맞은 구멍은 깨진 달걀처럼 흘러내린 모양새다. 오래 운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에 바짝 붙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해안선은 완만하고 좁은 해안에는 자갈이 많다. 오른쪽으로는 짙은 솔숲이 길게 따라온다. 마을에서 멀어지는 것을 알려주는 외딴집들과 녹으로 얼룩진 창고들을 이따금 지나친다. 바다에는 오랜 세월 동안 모서리가 부드러워진 바위들이 널려 있고 좁은 길가에는 작은 풀들이 가득하다. 파도 소리로 가득한 고요한 이 길은 무척 쓸쓸하고 사랑스럽다.

수년 전 이 일대는 군부대였다고 한다. 어느 날 부대는 떠났고 오토캠핑장이 들어섰다. 정자가 서 있는 살짝 굽이진 길을 돌면 소나무 숲속에 캠핑장이 보인다. 곧 바다로 뻗어 나간 갯바위와 반도의 땅 사이에 콘크리트로 밭 전(田)자를 그린 양식장이 나타난다. 먼 갯바위 위에 지구본 모양의 동그란 돌탑이 동그마니 서 있다. 저곳이 땅끝이다. 돌탑에는 '한반도 동쪽 땅끝, 동경 129° 35' 10", 북위 36° 02' 51", 포항시 구룡포읍 석병리'라고 새겨져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세운 것이니 땅끝이 분명하다. 석병(石屛)은 돌병풍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 바닷가에 병풍 같은 바위가 있는데 끝이 뾰족하게 솟아 아흔아홉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양식장 앞에서 바닷길은 끊긴다. 끊어져 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바다에 아흔아홉 골짜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륙으로 에돌아 석병1리 두일포(斗日浦)로 향한다. 잠시 바다를 등진다 해도 서운하지 않다. 길 양쪽으로 향기롭고 목가적인 들이 펼쳐져 있다. 두일포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이름이라 한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말(斗)을 엎어 놓은 것 같고, 마을 앞의 나루터가 일(日)자형을 이루고 있어 두일(斗日)이라 했다 한다.

해안선을 따라 집들이 들어서 있다. 바다에 면한 집들은 높직한 돌담장을 가졌다. 아무렇게나 오린 색종이처럼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이 시멘트와 일체가 되어 있다. 담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두꺼워지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무척 견고해 보인다. 그처럼 굳건한 담장에 대문 없는 집이 수두룩하다.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어젖힌 집들이다.

대문이 없던 집에 출입금지 펜스가 생기기도 했다. 요즘 이 마을에는 찾아오는 여행객이 많다. 이곳에서 몇 해 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촬영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살던 집이 이 마을에 밀집해 있다. 마을 중턱의 빨간 벽돌집은 혜진의 집이다. 집 앞에서 포구와 빨간 등대가 내려다보인다. 작은 평상이 있는 집은 홍반장 두식의 집이고 옥색 지붕에 외벽을 타일로 장식한 예쁜 집은 감리할머니 댁이다. 실제 주민들이 살던 집을 빌려 촬영했다고 한다. 대문 기둥에 주민의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삼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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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주인공인 홍반장의 집(위쪽)과 감리 할머니의 집 등이 마을에 밀집해 있다. 실제 주민들이 살던 집을 빌려 촬영했다.
삼정리 초입은 길이 제법 넓다. 넉넉한 길은 삼정3리에서 삼정2리까지 이어지는데 겨울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삼정리는 구룡포의 이름난 과메기 덕장이다. 마을의 너른 길은 모두 과메기 덕장이 된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가 주재료였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서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하는데 '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 하여 과메기가 되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청어가 알을 낳으려고 해안을 따라 몰려오는데 수억 마리가 대열을 이루어 바다를 덮을 지경'이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해마다 겨울이면 청어가 제일 먼저 영일현으로 몰려오는데 잡은 청어는 나라에 먼저 진상하고 난 후 각 고을에서 청어를 잡기 시작한다. 잡히는 청어가 많고 적음에 따라 그해 풍년을 점쳤다'고 한다. 영일현이 포항이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던 청어 떼가 포항 앞바다에서 제일 먼저 잡히는데 그때가 제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맛난 청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청어 생산량이 크게 줄어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이제는 관목 하지도 않는다. 꽁치의 몸을 세로로 갈라 덕대에 걸쳐 놓는다. 석병에서 잡고 삼정에서 말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정리 어느 곳에서나 과메기 덕장을 찾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3리의 덕장은 가장 집중적이고 장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지금과 같은 계절에 덕장은 텅 빈다. 텅 빈 채로 넉넉하고 고즈넉하다. 길을 따라가다 돌연한 활기가 느껴지고 소나무 울창한 바위섬 하나가 보인다면 삼정2리다. 섬은 관풍대(觀風臺), 바람을 보는 곳이다. 삼정리 사람들은 삼정섬이라 부른다.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면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고 한다. 삼정3리와 2리가 통째로 본마을이다. 신라 때 삼정승이 살았다고도 하고 삼정승이 날 만큼 지세가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정1리는 삼정해변이 펼쳐진 곳이다. 본마을과는 하천으로 분리되어 있다. 옛날에는 하천이 자주 범람해 '범진(凡津)'이라 불렀다 한다. 삼정해변은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라 아는 사람들만 쉬쉬하며 찾아오는 곳이다.

◆삼정리 주상절리

삼정해변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면 길은 훌쩍 상승하면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애 아래로 비경을 드러낸다. 삼정리 주상절리 지대다. 신생대 제3기, 6천500만년 전부터 170만년 전 사이의 어느 날, 이곳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분화구를 박차고 튀어나온 용암이 흘러넘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용암은 굳어 바위가 되었다. 용암이 굳으면서 수축에 의해 생겨난 암석의 틈이 절리(節理)다. 기둥 모양으로 발달하면 주상(柱狀)절리, 나무판과 같은 모양으로 발달하면 판상(板狀)절리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방사형·부채꼴 등 다양한 방향의 절리가 관찰되지만 가장 우세한 것은 사선의 주상절리다.

벼랑을 내려가 거친 암석의 해안에서 주상절리를 바라본다. 아물아물 내려다보는 것과 정면으로 보는 것에는 역시 차이가 있다. 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지금 막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되는 바로 그 순간을 보는 듯하다. 사선의 용암 너머로 구룡포 해수욕장이 보인다. 사운거리는 달 같은 해변이, 이 단애와, 이 시커먼 아우성들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환히 빛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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