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최선의 선택·최고의 사랑'을 위한 한 여성의 진정한 자아찾기

  • 윤용섭
  • |
  • 입력 2022-08-26   |  발행일 2022-08-26 제39면   |  수정 2022-08-26 08:19

2022082201000641300025391

29세의 의학도 율리에(레나테 레인제브)는 다소 충동적인 자신의 결정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최고의 성적을 증명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의대에 입학했지만 실체가 분명한 의학을 통해선 늘 목수가 된 듯한 공허한 느낌만 받을 뿐이다. 문득 자신의 열정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었음을 깨달은 그녀는 다시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포토그래퍼에서 작가로 삶의 궤도를 재수정하며 여전히 부유하듯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사이 40대 성공한 만화가 악셀(안데스 다니엘슨 리)과 만나 그의 삶에 안착한 듯 보였던 율리에는 차츰 나이 차로 인한 가치관의 괴리를 실감한다. 결국 그를 떠나 비슷한 나이대의 카페 직원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와 새롭게 사랑에 빠진 율리에. 착하고 배려심 많은 그는 율리에의 만성적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최선의 선택, 최고의 사랑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자기 삶에서조차 구경꾼인 것처럼 느끼는 율리에의 자아 찾기다. 그녀의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극적인 삶을 소설 형식의 12개의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원제는 '세상 최악의 인간(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인데, 그녀가 끊임없이 방황하며 마주한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했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율리에는 공허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늘 갈구하면서도 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만남이 종식된 이후 보이는 양상도 비슷하다. 삶의 진전이 없다는 익숙한 불충족감에 다시 사로잡힌다. 자유가 너무 지독한 탓이다.

로맨스 영화로 단순히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감정적 깊이와 화법이 돋보인 영화는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상투적인 구성을 성정치학적 각성까지 아우르며 대담하게 풀어간다. 율리에가 에이빈드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그에게 달려가는 장면에선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정지된 구성으로 또 다른 판타지를 구현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모든 것을 멈추고 내 연인과 다른 시간 속에 있었으면'하는 바람을 이 장면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독창적인 이야기는 물론, 늦여름 오슬로의 저물녘 풍광까지 뛰어난 감각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영화다. 율리에를 연기한 레나테 레인스베는 이 작품으로 2021년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장르:로맨스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