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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가는 7월 말이나 8월 초가 되면 잡풀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며칠만 그대로 두면 잡풀은 금방 텃밭을 잠식하여 뒤덮어 버릴 것만 같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야 하는 작물과 달리 잡풀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란다. 그 강한 생명력에 경외심을 가지다가도 나날이 호기롭게 뻗어가는 잡풀의 기세에 주눅이 든다.
성품이 정갈한 이웃 할머니가 있다. 아침마다 호미를 들고 밭에 가면서 "잡풀 때문에 힘들어 농사 못 짓겠다"라며 푸념이다. "할머니, 잡풀은 적당히 뽑고 그냥 좀 놔두셔도 돼요"라고 하면, "잡풀을 왜 놔둬? 잡풀 때문에 작물이 자라야 말이지"라는 반응이다. 농부들은 왜 이토록 잡풀을 반드시 없애야 할 원수나 적으로 여길까. 잡풀과 공생하면서 작물을 가꿀 수는 없을까.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늘 품고 있는 의문이다.
논밭의 잡풀을 뽑는 일을 김매기라 한다. 어린 시절 농번기 때 김매기로 바쁜 부모님 얼굴은 집보다는 논밭에서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잡풀은 농부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작물과 잡풀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생명을 낳고 키우는 것은 땅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 땅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농부는 작물만 살리고 잡풀은 뽑아 없애야 한다. 농부인들 힘들게 잡풀을 뽑고 싶겠는가. 거두고 먹여야 할 식구가 없다면 농부도 땅과 같이 잡풀도 그대로 놔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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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풀 억제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덮기'
텃밭에서 거둔 작물 부산물 활용 추천
잎을 딴 후 남는 줄기 이랑에 던져두면
토양 수분 유지와 병해충 방지에 도움
작물 싹틀 때·모종 뿌리내릴 때 빼곤
잡초가 웬만큼 자랄때까지 놔두기를
농사는 잡풀과 병충해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병충해 방제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농약이 나왔듯, 잡풀을 억제하고 농작물을 키우려는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그 가운데 비닐과 같은 인공재료를 이용하여 잡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거나 억제하는 덮기(멀칭)는 가장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덮기는 잡풀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토양의 수분을 유지하고 병해충을 방지하여 작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
물론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자 하면서 비닐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젠가는 비닐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의 힘만으로 작물을 키워볼 요량이지만, 아직 비닐을 대체할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대신 내 나름대로는 가급적 비닐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작물을 키우려고 많은 궁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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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
텃밭의 규모가 작다고 할지라도 덮기 재료로 쓸 수 있는 작물의 부산물은 많다. 상추와 쑥갓 등 채소류는 잎을 따고 난 후 남는 줄기를 이랑 사이에 던져두면 된다. 문제는 옥수숫대와 고구마·호박 줄기다. 대공과 줄기가 굵고 질감이 거친 작물의 부산물은 쌓아두어도 쉽게 썩지 않고 처리가 쉽지 않다. 많은 농가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말린 후 불을 때서 없애는데 화재의 위험이 있으므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텃밭이 마을 안이나 가까이에 있는 경우에는 연기나 냄새로 이웃에게 불쾌감이나 피해를 줄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소각은 권장할 방법이 아니다. 그 대신 텃밭에서 거둔 작물 부산물과 잡풀을 덮기 재료로 활용하면 텃밭 가꾸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옥수숫대는 익은 옥수수를 따고 나서 줄기의 중간 부분을 꺾어 바닥에 버리고, 나머지는 전지가위로 밑동까지 적당한 길이로 잘라 덮기 재료로 사용하면 된다. 이때 옥수수는 뽑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겨울을 지나면서 뿌리는 땅속에서 썩어 분해된다. 옥수수 뿌리를 뽑은 상태에서 퇴비로 만들려면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아 애를 먹는다. 여러 방법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밑동까지 자르고 뿌리는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힘도 들지 않고 저절로 거름이 되므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고구마와 호박 줄기는 한곳에 쌓아두기보다는 거둔 다음 전지가위로 짧게 잘라 이랑 사이나 텃밭 울타리 밑 가장자리를 덮어 발로 꾹꾹 눌러 밟아두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절로 풍화되고 썩어 훌륭한 거름이 될 뿐 아니라 잡풀이 자라지 않게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정원 잔디를 깎은 부산물이나 잡풀도 훌륭한 덮기 재료다. 작물을 심은 이랑을 덮어두면 잡풀이 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 모든 방법은 잡풀이 자라지 않게 하여 작물의 성장을 돕고 보호하면서 가급적 자연재료를 활용하여 텃밭농사를 짓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텃밭에서 거둔 모든 것은 텃밭으로 되돌려 주라는 것이다. 채소 부산물과 잡풀을 버리거나 태우지 말고 텃밭 거름으로 활용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땅이 기름지고 작물도 튼실하여 병충해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전원생활을 꿈꾸면서도 실행하기를 머뭇거리는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텃밭 농사가 힘들지 않으냐고, 성가신 풀을 어떻게 다 뽑느냐고. 우리 머릿속에는 풀은 뿌리째 뽑아 없애버려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실제 이웃 농부들의 텃밭을 보면 작물만 가지런히 심겨 있고,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하다. 심지어 텃밭 가장자리에 있는 잡풀 한 포기마저도 용납하지 않는다. 제초제를 뒤집어쓰고 노랗게 마른 잡풀을 볼 때마다 '저들도 귀중한 생명인데'라는 안타까운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잡풀 뽑기가 가장 필요한 시기는 봄이다. 씨를 뿌려 싹이 틀 때와 모종을 심어 뿌리가 땅에 활착하여 작물이 자라기 시작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 잡풀을 뽑아줘야 한다. 이 시기는 작물보다 잡풀이 빨리 자란다. 적절하게 풀을 뽑거나 제거해 주지 않으면 작물이 제대로 크지 못한다. 필요할 때 농부가 적절하게 개입하지 않고는 농사지을 수 없으니 잡풀 제거는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잡풀이 농사에 백해무익한 것만은 아니다. 잡풀은 땅의 습도를 유지해 주고, 썩어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 뿐 아니라 각종 병해충을 예방하는 등 잘만 활용하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작물이 싹틀 때와 모종이 뿌리내릴 때 외에는 잡풀이 웬만큼 자랄 때까지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다. 잡풀이 너무 어리면 뽑기도 성가시고 완전하게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자라면 호미나 손으로 뽑거나 낫으로 쓱쓱 베어 작물 사이에 덮어두면 잡풀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잡풀 관리의 관건은 깡그리 뽑아 없애기보다는 그 기세를 꺾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크로폿킨의 이 말처럼 잡풀은 더 이상 억제와 제거가 아니라 작물의 생장을 돕는 협력과 연대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텃밭을 모든 생명체가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공존과 상생의 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 만물 가운데 존귀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는가. 농부는 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 생명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농사의 가치는 생명을 죽이기보다는 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농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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