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수수께끼 상자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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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4   |  발행일 2022-08-24 제26면   |  수정 2022-08-24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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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판문점에서 북송을 거부하면서 몸부림치는 북한 어부들의 3년 전 사진과 동영상을 일전 통일부가 공개하자 여론이 비등해졌고, 인제 검찰이 대통령기록관과 전직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다. 탈북 의도가 있었으면 열댓 명의 사람을 죽인 중죄인이라도 북한으로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현 정부와 도피 중인 자들에 불과했으므로 돌려보냈다는 전 정부 인사들의 주장이 공방을 벌이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양쪽 주장만 보도되고 있는 이유는 사건의 중요 장면이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북한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관련 증거를 본 일도 없으니 그들이 16명의 목숨을 뺏고 도주 중이었는지 아니면 그들이 대한민국으로 귀순할 뜻을 정말 밝혔는지, 남한에 사는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인권과 자국민 보호라는 헌법의 해석론이 아니라 '수수께끼 상자'를 더듬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실질은 젖혀두고 그 양태만 보자면 시기와 방식에서 단서가 나올 수 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3년 전 북한 어부의 송환 문제가 터져 나왔다. 통일부는 종전 태도를 백팔십도 바꿔서 그들을 돌려보낸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이례적으로 사진과 동영상까지 공개했다. 그 장단에 국정원도 변죽을 울리고 언론은 일제히 관련 기사를 대량 생산하고 있는데, 양과 방향을 감안하면 현 정부가 칼자루를, 전 정부가 칼날을 마주 쥐고 있는 형국이다. 가만히 보면 2년 전 서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한 공무원 사건도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종전 정부의 결정을 뒤집는 진술이 해양경찰청에서 나왔다. 해경은 졸지에 매국노가 되었고 전 국정원장들은 피고발인 신분이 되었다. 뭐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행하는 '국가폭력'은 은밀히 행해지고 그 실행자인 공무원은 자신의 행동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국가폭력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다. 총상 피해자는 있지만 발포 책임자가 없고 고문 피해자는 있지만 고문기술자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나타난다. 그래서 70~80년대 긴급조치, 계엄, 반공법 등의 죄목으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셀 수 없는 많은 사건에 대하여 자신이 한 짓이라는 고백을 한 공무원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건의 북한 관련 사건에 대해 자신의 공무집행이 위법했음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자복한 공무원들의 용기를 절대 가벼이 볼 수는 없겠다. 비극의 뫼비우스의 띠가 인제 끊어진 것인지 혼돈스럽고, 좌우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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