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블록버스터·스타캐스팅…극장가 흥행공식 시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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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5   |  발행일 2022-08-25 제15면   |  수정 2022-08-2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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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의 흥행공식이 사라진 걸까. 여름시장을 겨냥한 네 편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기대와는 다른 저조한 흥행 성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평균 제작비 200억원이 넘고 스타 캐스팅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관객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다. '한산'이 유일하게 679만명(23일·영진위 입장권통합전산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뿐이다. 반면 개봉 9주 차에도 흥행세가 꺾이지 않은 '탑건2'와 M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미니언즈2' 등은 박스오피스 상위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이유가 뭘까.

여러 영화 보던 과거 분위기 사라져
팬데믹 기간에 세 차례 관람료 인상
영화 한 편 값에 OTT 한 달 이용 가능
넷플릭스 성공에 관객 이탈 가속화
중박영화 사라지는 양극화 심화될 것


◆볼 영화만 골라서 본다

영화 관계자들은 극장이 코로나19의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 다시 상승 무드가 형성된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 4월 말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억눌렸던 관객의 영화 관람 욕구가 일순간 폭발했고,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극장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가 흥행의 첨병 역할을 했고, 그 바통을 이어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극장이 되살아났다는 희망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여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 상업 영화 네 편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산업은 언제부턴가 관성에 이끌리듯 규모를 키우고 같은 시기에 경쟁을 벌였다. 이른바 성수기라 불리는 시즌이면 기다렸다는 듯 대작들이 쏟아졌다. 결과론이지만 지금까진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기존의 흥행 공식이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스타급 흥행 감독과 배우들로 진용을 짰지만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예전 같으면 이 중 천만 영화 하나쯤 등장해도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명량'(1천761만명)의 후속작 '한산' 역시 전작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800만명을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외계+인'의 성적표(153만명)는 더 암담하다. 힘들게 2백만명을 넘긴 '비상선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1주일 간격의 순차적 개봉이라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크게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로의 파이를 빼앗은 결과가 됐다.

복수 영화를 선택하던 과거 분위기는 그만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침체한 경제 상황 탓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볼 영화만 골라서 한 편만 본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더 꼼꼼하게 사전 정보를 살피고 재미를 보장하는 영화만 챙겨보게 된 것이다. 극장 관람료 상승 역시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대형 멀티플렉스 3사의 관람료는 팬데믹 기간 동안 무려 세 차례 관람 요금을 인상했다. 현재 인당 영화 관람료는 1만4천∼1만5천원 수준이다.

◆깐깐해진 대중의 소비 형태

영화는 나름의 이유로 대중의 욕망을 대변한다. 대중상업영화로서 관객의 즐거움을 향해 설계된, 복잡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 영화가 대체로 좋은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영화는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대의 무의식에 스며든다. 앞서 소개한 네 편의 영화는 소재, 시대 배경, 장르 모두 완전 다른 작품들이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업영화로서의 본질에 나름 충실한 영화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변수가 작용한 걸까.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다소 어두운 부분이 부각된 주제와 이야기가 과거와는 달리 코로나로 지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흥행과 영화 완성도의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연약할 수 있다"며 "팬데믹 기간 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 성향이 강해졌다는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소비적인 측면에서 영화 한 편 볼 관람료면 대부분의 OTT 플랫폼 서비스를 한 달간 이용할 수 있다. 최신 영화의 업데이트 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에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보고 싶은 영화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OTT가 자체 제작한 시리즈와 영화들도 재미와 완성도가 높은 편이라 굳이 극장 영화만 고집할 필요도 없게 됐다. 가성비를 따져 봤을 때 극장용 영화와 OTT 콘텐츠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면 관객이 극장에 가서 지갑을 열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D.P.'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등 성공한 콘텐츠의 등장은 관객의 이탈 속도를 그렇게 가속화했다.

문제는 이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다.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된 대작이 아니면 투자도 제작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당연히 영화 시장을 단단하게 지탱해 줄 중급영화와 독립영화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스크린 독과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결국 다시금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시대를 읽는 신선한 구성과 이야기라는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이 흥행이라는 샴페인을 먼저 터트릴 수 있다. 김광원 대중문화평론가는 "극장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중박 영화가 사라지는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며 "극장은 큰 스크린으로 소비될 콘텐츠 위주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지만, 작은 영화도 대작 영화가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로 틈새를 파고든다면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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