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불을 지른 두 여인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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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6   |  발행일 2022-08-26 제15면   |  수정 2022-08-26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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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1926년 8월26일 나도향이 세상을 떠났다. 겨우 24세의 새파란 청년이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나도향은 천재단명, 가인박명 등의 관용어가 회자되는 데에 한몫을 했다.

나도향이 남긴 소설 중 '벙어리 삼룡이' '뽕' '물레방아'가 특히 유명하다. 이 세 작품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는 단언에는 비문학적인 증거도 있다. 셋 다 영화로 제작되었다.

'벙어리 삼룡이'의 본래 제목은 '벙어리 삼룡'이다. 나도향은 '벙어리 삼룡'을 1925년에 발표했는데 이듬해 병으로 타계했다. '뽕'과 '물레방아'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 아주 젊은 나이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나도향이 안타깝게 요절을 한 것이다.

소설 속 벙어리 삼룡의 죽음도 눈물겹다. 오생원네 충직한 종 삼룡은 화마에 휩싸인 집에 뛰어들어 주인을 구한 뒤, 이어 새아씨를 들쳐 업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미 늦어 지붕 위로 올라간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 전력이 있는 새아씨는 사실 그때도 불에 타 죽을 심산이었다. 새아씨가 예전에 자살을 도모했을 때 사고를 막은 사람도 삼룡이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그녀의 생명을 살려내었다. 하지만 삼룡 본인은 자신을 아껴준 새아씨를 지켜내었다는 사실에 만족하여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숨을 거둔다.

나도향은 불이 저절로 났는지, 아니면 누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방화라면 그럴 요인을 가진 인물이 새아씨뿐이니 그녀의 행위로 추정될 만하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안점은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는 선량한 두 인물이 유독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같은 1925년 현진건도 집에 불을 지르는 소녀의 비극적 삶을 담은 소설 '불'을 발표했다. 주인공 순이 역시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짓을 한 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늙은 남편의 학대와 폭행에 억눌려 살다가 마침내 집에 방화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나도향도 현진건도 묘소가 남아있지 않다. 두 사람의 묘소는 모두 '개발' 과정에서 없어졌다. 혹독했던 제국주의시대는 물러갔지만 두 사람 모두 독립을 못 보았고, 어느덧 긴 세월이 흘러 조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로 올라섰다.

하지만 인구는 줄어가고 고령화는 극심해져 나라 전체에 불이 난 꼴이다. 걸출한 두 분 작가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오늘날 어떤 소설을 쓰실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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