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밀양 신안운심문화마을…'時空 초월' 검무가 한바탕 펼쳐지는 날, 그를 기다리던 주막도 열린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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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6   |  발행일 2022-08-26 제16면   |  수정 2022-08-26 07:53
조선 최고 '칼춤' 운심이 잠든 마을

밀양 기생으로 조정 향연땐 늘 차출

마을 골목엔 그녀의 삶 담은 벽화들

2015년부턴 '운심검무축제'로 기려

영남대로 내다뵈는 뒷산 묘 가는 길

평생 사모한 관원 기다린 그녀의 주막

[주말&여행] 경남 밀양 신안운심문화마을…時空 초월 검무가 한바탕 펼쳐지는 날, 그를 기다리던 주막도 열린다
밀양 신안운심문화마을. 18세기 밀양 출신 기생으로 칼춤 솜씨가 당대 으뜸이었다는 운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벽화 골목을 조성하고 그녀를 기리는 '운심검무축제'를 열고 있다.

'가볍게 걷다가 도약함이 마치 땅을 밟지 않는 듯하다. 보폭을 늘였다 줄였다 하여 남은 기운을 다한다. 무릇 치고, 던지고, 나가고, 물러나고, 위치를 바꾸어 서고, 스치고, 찢고, 빠르고, 느리고 하는 동작들이 음악의 장단에 합치되어 멋을 자아낸다. 이윽고 쨍그랑 소리가 나더니 검을 던지고 절하였다. 춤이 끝난 것이다. 온 좌석이 빈 것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다. 음악이 그치려는지 여음이 가늘게 흔들려 소리를 끌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朴齊家)가 검무를 구경하고 쓴 검무기(劍舞記) 중 한 구절이다. 단박에 내리읽고 나니 한바탕 춤을 추고 난 듯 심신이 녹지근해진다. 실제로 검무를 본 사람들은 어땠으랴. 그는 글의 말미에 이렇게 부연해 두었다. '근세에 검무를 추는 기생으로는 밀양의 운심(雲心)을 일컫는다. 이들은 그의 제자이다.'

◆신안마을에서 만난 여인의 초상

신안마을은 옥교산 줄기가 남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에서 동쪽을 향해 앉은 마을이다. 마을 바로 앞에 경부선 철도가 놓여 있고 그 너머로 밀양강, 국도, 중앙고속도로가 자리한다. 영남대로 변의 마을이다. 옛날에는 역원(驛院)이 있었다 한다. 조선 말기에 고을 원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매우 피곤하여 원집에서 잠시 쉬었는데 매우 편안했다고 하여 '신원'을 '신안'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한 여인의 초상이다. 노란 저고리에 연보랏빛 치마를 입고 가슴에 손을 모아 미소 짓고 있다. 여인은 영조 때인 18세기 중엽, 조선의 화류계를 주름잡고, 오상고절의 선비들 마음도 사로잡았던 밀양 출신의 기생 운심이다. 그녀는 검무에 있어 조선 최고였다고 한다. 운심은 응천(凝川, 지금의 밀양)의 교방에 입교한 뒤 스스로 학습하여 창작하고 연마해 칼춤을 추었다고 한다. 두 개의 날카로운 칼을 양손에 사뿐히 쥐고 여러 가지 동작을 묘사하는 검무가 운심의 특기였다. 조정에서 큰 행사나 향연이 있을 때면 그녀는 검무의 일인자로 선발되어 한양으로 갔다.

밀양 선비 태을암(太乙菴) 신국빈(申國賓)은 '응천교방죽지사'에서 '호남 장사꾼 모시 베는 눈처럼 희고 송도상인 운라 비단 몇 냥이던가? 취하여 전 두 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건 운심의 칼춤과 옥낭의 거문고라, 또 스물여덟 연아(煙兒, 운심을 이름)가 장안에 가자 춤 한 번에 가을 연꽃 보는 눈이 서늘하여, 청루 앞에 안장 얹은 말 수두룩하게 오릉의 소년들이 바쁘게 다녔다지'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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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를 추는 무녀의 모습이 담긴 신윤복의 '쌍검대무'와 김홍도의 '평안감사 향연도' 등을 마을 안길에서 볼 수 있다.

검무는 상고시대 수렵이나 제사, 전투 등에서 무기를 가지고 춤을 추는 데서 유래되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의 전통춤이다. 현재 진주, 통영, 호남, 경기, 궁중, 평양 등 각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데 그 중 조선 최고의 검무로 불리는 것이 운심에 의해 전해지는 밀양검무다. 밀양검무는 두 명의 무용수가 양손에 장검을 들고 날렵한 춤사위로 공격과 방어를 하는 무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18세기 신윤복의 그림인 '쌍검대무'나 김홍도의 '평안감사 향연도' 등에서 그러한 검무를 추는 무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규장각 교리를 지낸 성대중(成大中)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운심은 밀양 출신 기생으로서 서울에 뽑혀와 칼춤 솜씨가 당세의 으뜸이었다'고 했다. '동국진체(東國眞體)'로 유명한 서예가 백하(白下) 윤순(尹淳)은 운심에게 '너의 칼춤이 나에게 초서(草書)의 원리를 깨닫게 할 수 있겠느냐'며 운심의 비단치마 위에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써줬다. 18세기 말에 검무를 추는 한양 기생들은 대개 그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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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심과 관원의 벽화. 운심은 밀양 관기로 있을 때 사대부 출신의 한 관원을 깊이 사모했다고 한다. 한양으로 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나지 못했지만 평생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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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한 벽화 앞에서 빵긋 웃게 된다. 밀양검무를 배우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인 듯하다.

◆죽어 묻혔으나 그녀의 춤은 이어진다

기생이라 가족과 일가친척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신안마을에는 운심의 묘가 실존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운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벽화 골목을 조성하고 2015년부터 그녀를 기리는 '운심검무축제'를 열고 있다. 골목에는 산수화도 있고 신윤복의 그림과 김홍도의 그림도 있다. 포도송이가 담을 넘어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렸다. 대추나무, 감나무, 구지뽕나무, 사과나무, 석류나무 등 온갖 열매가 자라고 뽕나무, 이팝나무, 상수리나무, 음나무 등은 저마다 키를 달리하여 녹음을 드리운다. 길가에는 백일홍, 프렌치메리골드, 사철베고니아, 닥풀, 봉숭아, 낮달맞이꽃, 능소화, 피튜니아가 곱게 피어 벽화가 있는 골목길은 청아한 풍류가 넘친다.

골목길 모퉁이에 운심과 한 남자가 나란히 서 있다. 운심은 밀양 관기로 있을 때 사대부 출신의 한 관원을 깊이 사모했다고 한다. 그 관원도 운심을 사랑했다. 하지만 기생과 양반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심은 궁궐로 불려갔다. 그가 보고 싶을 때면 지병을 핑계 삼아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내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50여 세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오래전 다른 고을로 전출을 간 뒤였다. 운심은 영남대로 변 신안원 근처에 주막집을 내고 오가는 관원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십수 년이 지나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운심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 제자들과 벗들에게 '관속(官屬)들이 왕래하는 역원 근처 길가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녀는 사모한 관원을 평생 잊지 못했다.

[주말&여행] 경남 밀양 신안운심문화마을…時空 초월 검무가 한바탕 펼쳐지는 날, 그를 기다리던 주막도 열린다
운심의 묘로 가는 길에 주막이 있다. 그녀의 검무가 시공을 뛰어넘어 한바탕 펼쳐지는 축제의 날에 그녀가 그를 기다렸던 주막도 문을 연다.

신안마을 뒷산에 운심의 묘가 있다. 묘로 향하는 길 중간에서 주막을 만난다. 주막 앞에는 거대한 왕버들 세 그루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주막은 축제가 열리는 날 문을 활짝 연다고 한다. 그녀의 검무가 시공을 뛰어넘어 한바탕 펼쳐지는 날, 그녀가 그를 기다렸던 주막도 문을 여는 것이다.

지금 주막 앞에는 풀꽃이 수북이 자라나 있다. 그녀는 영남대로가 내다보이는 자리에 안장됐다. 무덤에 벌초를 해주면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고 처녀 총각이 혼인을 하게 되며 가정에 행운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와 매년 누군가에 의해 벌초와 성묘가 이뤄졌다고 한다. 제법 컸던 봉분은 2003년 태풍 매미 때 대부분 유실됐다. 지금은 '밀양검무보존회'가 벌초를 한다.

밀양검무는 일제강점기 밀양 권번을 중심으로 전승되었고 권번의 폐쇄 이후에는 시내 동문 안 여관을 중심으로 맥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광복 이후 밀양검무는 단절의 위기를 맞았고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복원작업이 시도되었다. 밀양 출신 무용가인 김은희에 의해서다. 1992년에 선보인 밀양검무의 복원에는 박제가의 검무기와 지역 원로 예인들의 조력이 컸다고 한다. 지난해 말 다시 한번 선보인 밀양검무는 신윤복의 그림 '쌍검대무'에 나타나는 도상학적 형상의 재현에 방점이 있다고 한다. 밀양검무 복원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춤과 음악과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한 시대의 예술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로 나가 24번 국도 밀양, 청도 방향으로 간다. 밀양대교 건너자마자 오른쪽 안인리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안인로를 타고 약 1㎞ 정도 직진하다 신안지하차도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신안마을 골목길 지나 마을 회관으로 갈 수 있다. 안인로에서 200m 정도 더 가면 신안마을 표지석이 있다. 좌회전해 철길 아래를 통과해 들어가면 곧바로 신안 마을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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