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노동시장 개혁의 선결과제

  •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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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6   |  발행일 2022-08-26 제22면   |  수정 2022-08-26 06:49
대기업 이익독점·임금독주
중소기업의 건강위협 요소
대통령 인수위에서 약속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
관련제도 정비가 선결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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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객원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6월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선을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의 핵심으로 명시했다. 현행 주 52시간제에서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근로시간을 노사합의로 월 단위로 확대하는 총량관리단위의 확장과 정산기간의 확대, 연공급 비중을 줄이고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확산이 개혁방안의 골자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2018년도 대기업과 공기업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했고, 2021년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확대 적용됐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이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이다.

2019년 2월 발표한 한국경제원의 조사(2017년 매출액 600대 기업 대상)에 따르면 57.9%의 기업이 포괄임금제를 도입 중이며 IT 산업에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60% 이상이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 외 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모든 종류의 수당을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산정방식으로 1970년 대법원 판례에 의해 인정되기 시작했다. 근로자에게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면 아무리 연장근로를 하고 야간근로를 하더라도 더 일한 만큼 수당이 계산되어 더 받는 게 아닌 미리 약정된 임금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규모가 큰 기업의 대부분은 이미 자체 근태·인사·노무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어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처럼 형편이 어렵거나 갓 창업한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인건비 후려치기"의 방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한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총량관리단위를 확장하거나 정산기간을 1년으로 확대한다면 이들 근로자의 피해도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주 52시간제 실시 이후 노동계에서는 줄곧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해 왔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포괄임금제 규제를 약속했지만 임기 마지막까지 규제 지침마저 내놓지 못했다.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기업 중 포괄임금제 폐지를 반대하는 기업은 70%에 이르는데 이들은 포괄임금제의 무작정 폐지는 기업을 어렵게 만들고 시장에 혼란을 가중할 우려가 높다고 주장한다.

한 사회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기본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 대기업의 이익 독점과 임금 독주는 중소기업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다. 우리 경제는 0.3%의 대기업이 전체 영업이익의 57%를 가져가고 99%의 중소기업이 25%를 가져가는 구조다. 2020년 대기업 평균 보수는 529만원, 중소기업은 259만원으로 이미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의 기초체력인 중소기업의 생존기반을 다지는 궁극적인 길은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성과를 적정하게 공유하고, 중소기업은 이 성과를 근로자와 합당하게 나누는 것이다. 증가한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올려준다. 금년 인수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를 설치하여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결을 위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 대기업이 납품대금 조정협의에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기로 약속했다. 이것이 선결과제다. 또 근로시간 유연화와 포괄임금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다. 개혁이랍시고 준비 없이 한 제도만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질곡에 빠지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온다. 그들이 중소기업 사장이든 근로자든 우리 사회의 다수라는 데 문제가 있다.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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