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학위의 권위

  •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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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29   |  발행일 2022-08-29 제29면   |  수정 2022-08-2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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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얼마 전 일본의 대문호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개인사를 다시 한번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모처에서 특강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느라 그가 남긴 편지와 수필 등을 찾아 읽다가 1911년에 있었던 문부성(일본의 교육부)과 소세키 사이에서 벌어진 박사학위 사퇴(거절) 사건에 특별히 눈길이 갔다. 요즘 박사학위를 둘러싸고 연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는 수많은 논쟁의 여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에 얽힌 박사학위 사건의 전말을 여기에 간단히 적자면 다음과 같다. 그는 문부성 제1회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유학까지 다녀올 만큼 장래가 촉망되던 엘리트 영문학자이자 도쿄제국대학의 교수였으며, 소설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이런 소세키에게 당시 문부성은 그간의 업적을 평가해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문부성은 이러한 일을 추진하면서 당사자인 소세키에게 사전에 의사 타진을 전혀 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하루 전날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보낸다. 그때 소세키는 지병인 위궤양이 생사를 넘나들 만큼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 중인 상태였다. 부인을 통해 문부성의 통지를 전해 들은 소세키는 당시 문부성 전문 학무국장에게 편지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며 학위는 사양하겠다는 의사를 정중히 밝힌다. 그러나 문부성 전문 학무국장은 소세키에게 박사학위는 이미 발령이 완료된 상태라 마음대로 사양할 수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뜻을 재차 보내온다. 이러한 문부성의 다소 권위적인 태도에 분노한 소세키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거듭 사퇴 의사를 천명하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양자 간에는 미묘한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이른바 박사학위를 둘러싼 양자 간의 팽팽한 기 싸움이 벌어진 것인데, 이 기 싸움은 마지막까지 결착이 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었지만, 소세키는 그 후로도 계속 자신이 문학박사로 불리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는 왜 그토록 완강하게 박사학위를 거부했을까? 문부성이라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당시 소세키가 도쿄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어보면 그는 박사제도라는 것 자체가 공(功)보다는 폐해가 더 많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학문이란 본디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이 모두 박사가 되려는 목적으로 학문에 임하다 보면 자칫 그것이 사회적인 출세나 영달의 수단이 되거나 학위의 유무에 따라 학자를 차별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그는 학위제도가 학문의 우열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여, 학문의 진리탐구라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일부 엘리트 학자들의 전유물로서 특권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정경유착은 물론이고 학자와 국가권력이 결탁하는 것을 굉장히 혐오했고, 국가가 개인에게 휘두르는 권력이나 일체의 권위적인 것에 대해서도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문부성 당국자에게 박사학위 사퇴 의사를 전하는 서신에서도 그는 '자신은 지금껏 그저 나쓰메 아무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나쓰메 아무개로 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시대적 상황이나 제도, 학계의 풍토 등이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백 년 전 일본작가의 박사학위 거절 사건을 접하다 보니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남발되고 있는 박사학위의 권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많은 학자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철주야 학문에 매진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학문이 진리탐구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개인의 출세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 모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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